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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찌니 Apr 30. 2020

타고난 것, 평범한 아이는 동굴 속에서도 잘 자란다.

엄마, 엄마 탓이 아니야, 내가 그냥 이렇게 태어난 거야.


아이가 발달이 늦다는 것을 인정한 이후에도 나를 괴롭히는 끈질긴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자책감이다. 이 자책감이란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기도 하고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서 나를 괴롭혔다. 아이가 아주 사소한 발전적인 행동을 보이면 엄청 기뻐하다가도 남들 다하는 젓가락질에 뭐가 그렇게 기쁜 일인가 싶어 미안함에 아이를 안고 울기도 했다. 같은 또래 아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돌발 행동들을 하면 내가 엄마로서 또 무엇을 잘못하고 있나 자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동안 엄청난 양의 관련 도서를 읽으면서 이론에 집중한 때가 있었다. 국립 세종 도서관에 있는 발달 장애 관련 책들은 거의 다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쩌면 나는 아이의 이런 상황을 공부하기 위해서라기보단 그 많은 이론과 지식 속에서 뭔가 위안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책, 카페, 인터넷 모든 곳에서 아이의 장애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마의 탓이 아니라 아이가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라고……



하지만 오랜 시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자책감은 내 어린 시절까지 소환하면서 엄마가 그렇게 먹지 말라던 불량 식품을 많이 먹어 내 몸에 독소가 쌓여있었나 라며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건강하지 못한 유전자가 형성이 되어 있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임신 중에 있었던 인간관계의 충격 때문인가 하며 아이가 이렇게 태어난 속상함을 누군가에게 화풀이라도 하고 싶은 듯이 그렇게 원인을 찾아 헤맸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생각들을 하며 스스로 가슴에 또 상처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자책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 감정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더 상황은 나빠졌고, 더 이상 이런 생각들이 아이와 나의 삶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센터 벽에 붙어있는 글


센터에 다니면서 많은 엄마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정말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된다. 같은 성향의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대화도 잘 통하고 가끔은 서로 위로도 해주고 그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자폐 성향의 여자 아이를 키우는 A 씨는 남편을 따라 곧 미국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말도 못 하는데 미국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보다 훨씬 용기가 있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그 상황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먼저 미국 생활을 하고 온 나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얻고 어떤 것들을 준비해 가야 할지 차근히 하나씩 정리하는 모습에서 나를 다시 한번 돌아봤다. 그녀가 떠나기 전, 아이들을 센터 수업에 들여보내고 마지막으로 길게 이야기를 했다. 미국에 살면서 여유로움과 자연 친화적인 생활을 하면서 좋았지만, 반면에 너무 조용하고 적막해서 아이가 어렸을 때 지속적으로 자극을 주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가 발달이 더 느려진 것 같다고 울먹이자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언니, 평범한 아이는 동굴 속에서도 잘 자란다고 해요. 언니가 잘못 키워서가 아니라 아이가 그렇게 태어난 거예요.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라며 따끔하지만 따뜻한 말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그렇게 나에게서 자책감을 벗겨주고 떠나갔다. 아이가 감각이나 기타 다른 문제로 힘들어할 때 엄마가 이렇게 낳아서 미안해라며 아이를 꼭 안아준 적이 있다. 그때 아이는 내 두 볼을 손으로 감싸면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달래줬던 기억이 난다.


'엄마 탓이 아니에요'


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자책의 말을 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과거에 얽매여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보단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고 있다. 장애의 원인과 이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와 무엇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아이와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한다.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자책감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한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 세상을 함께 시작한다는 그 마음으로 아이와 나는 두 번째 시작의 출발선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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