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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Apr 12. 2016

유재석은 왜 잘 되는가

유재석에게서 발견되는 '탈(脫)자아 리더십'


무턱대고 유재석 미담을 늘어놓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조목조목 현상과 사고 방식을 분석하며 접근하려 합니다. 한국 연예계에서 유재석 씨처럼 오랫동안 일인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여전히 시청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 또 있을까요.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연예계를 주름잡았던 수많은 탑 진행자들 - 김용만, 강호동, 이혁재, 박수홍, 남희석, 신동엽, 신정환 등 - 중 슬럼프를 이겨내고 19금 캐릭터를 공고히 한 신동엽 씨 외에는 모두 예전만큼의 위치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1991년에 데뷔하여 26년 간 상승세를 유지하는 유재석 씨와 그의 프로그램의 성공 비결을 저는 '탈(脫)자아 리더십'이라고 명명하려 합니다. 이는 현대 많은 조직에 적용 가능한 개념이며, 이를 회사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지까지 이번 글에서 정리해봤습니다.






탈자아(脫自我)란 자기 자신을 내가 아닌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객관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유재석 씨(이하 유재석)의 진행을 보면 유독 이 탈자아적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그 동안 많이 거론된 인본주의적 사고나 덕장에 대한 분석은 이번 글에선 잠시 미뤄두고 이 새로운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무한도전이나 런닝맨, 해피투게더를 떠올려보면 놀랍게도 유재석의 캐릭터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다른 고정 출연진들을 생각해보면, 박명수, 정준하, 하하, 전현무, 이광수, 김종국 등 자기 색깔이 분명하고 특정 이미지가 떠오르는 캐릭터가 많습니다. 그리고 각 출연진들은 방송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굉장히 공을 들입니다.


여러 출연진들이 등장하는 무한도전. 역전의 용사들


하지만 유재석은 프로그램의 중심인물인 것에 비해 이런 특정 이미지가 다른 출연진만큼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일인자 답게 여타 인물들보다 더 강력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저는 처음에 이런 현상을 보며 '유재석은 다른 사람들의 캐릭터를 잘 만들고 살려주는구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것도 분명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니 유재석의 놀라운 점은 자기를 잊고 '프로그램 전체의 진행과 구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생각 및 행동을 한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위해 출연진과 스탭 및 PD, 심지어 자기 스스로까지 프로그램이라는 장기판 위의 하나의 말처럼 생각하고 운용합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그림으로 알아볼까요.




I  유재석이 있는 촬영 현장은...

이 글을 위해 3D 모델들을 구해다가 3D 이미지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엣헴.


스튜디오에서 무언가를 촬영 중입니다. 여러 명의 출연진들이 나오고 스탭과 PD가 무대 앞에서 이를 촬영하고 있죠. 여기서 유재석을 가운데 소파에 앉아있는 인물이라 가정하고 다른 출연진을 주변 3명이라 생각해 보겠습니다. 출연진들을 파란색으로 표시해보죠.


각자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출연진들의 역할입니다


무대의 각 인물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살려 어떻게 자신을 돋보이게 할지 고민하며 행동합니다. 많은 출연진들이 원샷(혼자 화면에 나오는 것)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오디오가 물리지 않게(다른 말소리 등과 겹쳐지지 않게) 타이밍을 잘 봐가며 적절히 멘트를 치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캐릭터가 겹치면 이에 대한 불만을 장난스럽게 얘기하기도 하죠. (정형돈과 정준하가 무한도전 초반에 뚱뚱하고 먹는 캐릭터로 겹쳤었죠) 이들의 관점은 '자기 자신' 에게 있습니다. 내가 보는 무대, 내가 보는 상대 캐릭터, 내가 보는 스탭들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 강력한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갈등과 재미가 쇼의 주요 테마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이를 중심에서 이끄는 유재석의 관점은 어떨까요. 빨간색으로 표시해보겠습니다.


빨간색 출연진이 유재석이라 해 봅시다


유재석은 무대 안에 있지만 무대 속에서 자신과 출연진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무대 밖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며 캐릭터를 운용하는 관점을 취합니다. 말하자면, 조감도처럼 공중에서 무대와 촬영세트를 내려다보면서 전체적인 진행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현재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떠한지, 방송 분량이 얼마나 나왔는지, 누가 튀고 누가 말을 못 하고 있는지 등등이 보입니다. 그런 상황에 맞추어 출연진들에게 말을 걸고 조용히 시키고 자기 자신도 그중 한 명으로서 행동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무대 안에 있지만 무대 전체를 내려다보는 사고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분위기가 쳐지면 코믹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고, 주위가 산만해져 있으면 본인이 나서서 멘트를 치며 집중을 시키고, 전반적으로 출연진들이 몸을 사리는 분위기면 유재석 스스로 망가지면서 분위기를 쇄신시킵니다. 또 재미없는 질문이 반복되면 작가에게 사인을 보내 무언가를 더 뽑아내는 질문을 하게 하고,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녹화 중 PD와의 커뮤니케이션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말마따나 '유느님'처럼 전체 촬영 세트와 상황을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한 명 한 명의 역할을 살리고 조절하며 프로그램이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도록 운용합니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유재석의 관점이 다른 출연진들처럼 유재석 본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위의 이미지처럼 '자기에게서 떠나'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겁니다. (거인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다고 봐주세요 :D) 즉, 탈자아의 관점에서 행동하고 있는 거죠. 그 목적은 더도 덜도 아닌, '프로그램이 최고의 결과물을 내는 것' 하나입니다. '당연한 거 아냐? 누가 안 그렇게 행동하겠어.' 라고 생각이 되시나요? 그럼 이 상황을 똑같이 다른 예를 통해 들어보겠습니다. 회사의 상황입니다.




I  회사에서 흔히 일어나는 팀 작업

회사에서 신제품 개발을 위한 팀이 결성되어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팀장과 팀원 1, 2, 3이 있는데, 팀원 1은 기술력이 좋습니다. 팀원 2는 디자인을 잘 합니다. 팀원 3은 홍보 감각이 좋습니다. 팀장은 전반적인 운영 능력이 있다고 합시다.


회사에서 자주 발생하는 팀 작업


많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팀원 1은 기술력을 강조하며 기술이 전면에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본인의 역할이 확실하고 공고해지겠죠. 팀원 2는 디자인을 완벽하게 하고 기술을 그 안에 다 담아주기를 바랍니다. 기술 때문에 디자인이 손상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팀원 3은 개발보다 먼저 이를 어떤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에게 홍보할지를 생각합니다. 홍보 때문에 좋은 제품 말아먹었다는 소리를 듣기 싫습니다. 이 상황에서 팀장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하지만 팀장은 얼른 이 신제품을 화려하게 개발해서 윗 선에 잘 보고하고 판매하여, 자신의 공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회사에 다니는 분들이시라면 지금의 이 스토리 많이 보셨을 겁니다. 자, 이 상황은 위에서 말씀드린 '출연진들이 자신의 캐릭터가 겹치지 않게 강조하면서 원샷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오디오가 물리지 않게 타이밍 봐가면서 치고 들어가려는 상황' 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이를 유재석 팀장이 들어가 있는 상황으로 바꿔 볼까요.




I  유재석 팀장이 있는 팀은?

유재석 팀장이 팀을 운영한다면?


팀장 유재석은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의 성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전체를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자신의 캐릭터와 팀원 1, 2, 3의 특징을 파악하고 각 팀원들이 잘하는 부분이 각각 돋보이게 일을 분담합니다. 개발이 진행됩니다. 팀원 1이 기술 이야기를 계속해서 팀원 2가 지루해한다는 것을 파악하면 팀원 2에게 질문을 던져 그의 의견을 뽑아냅니다. 팀원 3이 개발에는 관심이 없고 홍보 생각만 하고 있으면 개발에 대한 대안들을 만들어 오게 시켜 참여를 독려합니다. 전반적으로 팀원들의 흥미도가 떨어지면 본인이 앞장서 아이디어를 내고 회의를 열어 집중도를 높입니다. 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면 자신이 망가지면서 사기를 진작합니다. 필요에 따라 다른 부서 및 상사와 프로젝트 진행에 대해 상의하고 필요한 것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자, 어떻습니까. 위에서 유재석이 프로그램 진행 상에서 하는 행동을 그대로 회사에 옮겨 담아봤습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팀장을 본 적이 있나요? 보셨다면 좋은 직장 동료를 둔 것입니다. 하지만 쉽게 보기 힘든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탈자아 상태에서 전체의 목적을 위해 팀원(출연진)과 본인, 심지어 외부 인력(스탭과 PD)을 운용하고 구성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 일을 유재석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프로그램이 잘되지 않기가 힘들고,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이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리더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기업, 가정, 사회, 정치, 놀이 등 어떤 프로젝트든 실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I  우리 모두는 어떤 방면에서 리더

'이건 리더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나랑은 상관없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어떤 순간에서는 리더가 되는 상황과 맞닥뜨립니다. 7살짜리 꼬마 아이도 5살짜리 동생과 손 잡고 걸어가면 그 순간 리더가 됩니다. 이 동생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죠. 중학생들이 축구를 할 때 누군가는 리더가 되고, 학번 후배 여럿을 데리고 서 있는 선배는 그 순간 리더가 됩니다.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러 나간 엄마도 아이들의 리더이고, 가족 행사를 고민하는 아버지도 가족과 친척의 리더가 됩니다.


우리 모두 어느 순간은 리더 입니다


그런데 7살 아이가 동생에겐 관심 없고 내가 먹고 싶은 사탕 사러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으면 동생 손을 놓치게 됩니다. 중학생들이 서로 자기가 골을 넣겠다고 패스하지 않고 드리블만 한다면 경기에서 질 겁니다. 가족 행사를 본인의 기준과 스케줄에만 맞춰 준비하는 아버지는 가족과 친척들에게 원성을 사게 될 겁니다. 리더가 자아를 강력하게 가진 상태에서 자기 입장과 관점만 고수하면 그 프로젝트는 잘못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 기준과 입장에서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편하고 즐겁고 내가 잘 되는 방법같이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그 순간은 이익이 생기고 편하다고 생각될지 모르나 한 발만 떨어져서 보면 전체 프로젝트의 흐름에 역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I  탈자아 리더십은 마음먹기 달린 것

마지막으로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하면, '리더는 탈자아 관점에서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 을 너머 '탈자아 관점에서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이 곧 리더'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의 팀원 1이 자신이 가진 기술력만 생각하지 않고 전체 프로젝트를 바라보면서 '이 부분은 기술이 한 수 접고 디자인의 손을 들어줘야 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프로젝트는 자신의 것이 되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알게 모르게 리더가 되어갑니다.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잠시 나를 놓은 상태에서 그것이 잘 되게 만드는 방향을 고민하면 답은 나오거든요.


자기에서 한 발 떨어져 전체를 봐 봅시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는 부담을 말씀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하하, 정준하, 박명수의 역할을 확실하게 해야 할 때는 확실하게 캐릭터를 강조하고, 단지 그 상황에서 이러한 탈자아 관점을 한 번 떠올려보는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당연히 유재석 외 모든 출연진도 프로그램의 성공을 위한 마인드가 다들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미 프로그램은 종영됐을 거예요. 소위 '일인자'로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유재석의 관점을 설명드리기 위해 유재석 캐릭터에 초점을 맞춰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TV에 나오는 유재석의 행동들을 보면서 깨닫는 바가 많습니다.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을 보면서 즐겁게 웃는 것과 함께 유재석의 탈자아적 리더십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며 한 마디 덧 붙입니다. 유재석 씨가 무한도전에서 입이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하는 것이, '시청자 여러분들께 웃음을 드리기 위해' 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이 프로그램이 10년이 넘도록 최고의 쇼 프로그램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우뚝 서기 위해 행동하면 프로그램이 망하고 나도 따라 망합니다.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내가 성공하게 됩니다. 물론 조직의 성공이 나의 성공으로 오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방송에선가 박칼린 씨가 말한 것이 생각나네요. '사필귀정, 나는 많은 오해를 겪었지만 결국 일은 바로 잡아지고, 3년 정도 걸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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