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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Sep 10. 2016

미국에서 배운 스타트업 이야기 1 - 부탁을 질문으로

부탁이 아니라 질문하라.






요즘 혁신적이고 개성 있는 기술과 아이템을 가지고 도전적으로 창업을 하는 '스타트업(Start-up)'이 실리콘 밸리를 필두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제는 잘 알려진 개인택시 서비스 Uber(우버)나 개별 숙박 플랫폼 Airbnb(에어비앤비) 등도 스타트업으로 시작하여 지속적인 투자 유치와 성공적인 경영을 통해 크게 성장한 기업들이고,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으로 자금을 모아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제작하여 판매하는 Kickstarter(킥스타터)나 Indiegogo(인디고고)의 많은 회사들도 대부분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죠. 한 마디로 '대세'라 불릴만합니다. 


'16. 8월 Kickstarter 에서 135만 달러의 펀딩에 성공한 스마트 줄자 Bagel. 제 민사고 후배님이 만들었습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를 통해 한국과 미국에서 스타트업 교육과 인큐베이팅을 경험하고, 많은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 창의 컨설팅 분야에서 일을 했으며, 직접 저의 사업도 운영하면서 기업과 스타트업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과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문화가 비슷한 듯 은근히 다른 부분이 많음이 느껴졌는데요, 그 차이를 잘 이해하고 장점으로 활용한다면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문화가 더 탄탄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름대로 고민한 내용을 적게 되었습니다. 스타트업 창업가나 기존 기업가, 창업을 꿈꾸는 모든 분들께 한 번 생각해볼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길 바라며, 오늘의 이야기 '부탁과 거절의 자유' 를 시작합니다.




I  부탁의 어려움

전에 한 기업가에게서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판을 잘 짜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업을 할 때 결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으며, 필요한 분야의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적재적소로 구성하는 것이 경영자에게 무엇보다 요구되는 능력이라는 이야기였죠. 그래서 사업에 있어 네트워킹은 매우 중요하고 자연히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이제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에게 있어 이는 정말 중요한데, 나의 사업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적절한 사람(right person)들을 찾는 것이 스타트업 성공의 열쇠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부탁'할 때 아무래도 조금 어렵다고 느껴지는 건 저만의 생각일까요? 부탁을 할라치면, 상대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거절당하면 껄끄럽지 않을까, 부담되는데 거절하기 어려워 억지로 한다고 하는 건 아닐까 등의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뭔가를 부탁할 때에는 예의 있게 '실례지만, 혹시 이러이러한 것을 해 주실 수 있나요?'와 같은 표현을 쓰기 마련입니다. 특히 비즈니스 이메일을 보낼 때는 정중한 표현에 더욱 신경 쓰게 되고요. 쉽고 과감하게 부탁을 하는 분들도 종종 계시지만, 많은 경우 부탁을 인사처럼 쉽게 전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정중한 영어 이메일 작성법 블로그와 책이 인터넷에 넘칩니다.




I  부탁과 거절의 가벼움

미국에서 경험했던 스타트업 문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이 '부탁과 거절의 가벼움'이었습니다. 쉽게 자주 부탁하고 수락 혹은 거절하며, 실질적으로 일이 작동하게끔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우리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저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이, 제가 있었던 미국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기관인 Tech Ranch Austin 의 CEO 도 저를 비롯한 한국 기업가들에게 '부탁 혹은 요청할 것이 있으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강조하며 눈만 마주치면 '내가 뭐 해줄 건 없느냐'라고 묻기 일쑤였어요. 실제로 우리나라 기업가들이 부탁과 요청에 다소 과하게 예의 바르다고 느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죠. 


제가 있었던 Tech Ranch Austin. 앞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 CEO인 Kevin Koym.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차이는 한 마디로, '일의 객관화'였습니다. '나와 일의 분리'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일과 관련하여 어떤 것을 부탁하거나 요청할 때 그것을 요청하는 주체가 '나'가 아니라 '일 자체'라는 것이 차이점으로 느껴졌는데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식입니다. 




1  I  일의 주체가 나인 상태의 부탁과 거절

일단 우리에게 익숙한 부탁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주체가 나인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부탁을 한다면 다음과 같은 익숙한 문장이 등장할 겁니다.


실례지만, 제가 ㅇㅇ일을 하려 하는데 ㅁㅁ작업을 해주실 수 있나요? 
혹시 어려우시다면 이 일에 적합한 아는 분이 계실까요?



이 질문에는 부탁을 하는 '나'와 부탁을 받는 '상대'가 모두 존재합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데 부족함이 많아 그 능력을 가진 '당신'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이러한 요청을 보내는 바입니다~. 라는 뉘앙스랄까요. 일과 내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일의 주체가 나(사람)이기 때문에 이 부탁을 받는 상대도 '나(사람)'에게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아마 거절할 때의 답변은, '이렇게 생각해주시고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그 일을 하기에 이러저러한 한계가 있어 요청하신 일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드리지 못하여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등으로 일에 대한 내용 외에 부탁을 한 주체인 상대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같이 따라갈 겁니다. 그래서 '죄송'하거나 '송구'하거나 '실례'하게 되죠. 일보다는 인간관계가 중심이 되어 사람 대 사람의 전인적이고 감정적인 대화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I  일과 내가 분리된 상태에서의 부탁과 거절

반대로 나와 일을 분리하여 객관화한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한다면, 질문은 아래와 같은 형태가 될 겁니다.


ㅇㅇ 일이 실현되기 위해 ㅁㅁ 작업이 가능한가요? 
혹은 적합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묘하게도 이 질문에서 부탁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일'입니다. 일이 스스로 '일이 되기 위해' 가능한 것을 찾고 있달까요. 상대방(사람)에게 어떤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과 관련한 객관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답변도 현재 상황을 바탕으로 '예' 혹은 '아니오'로 객관적으로 전달하면 됩니다. 긍정적인 답변을 준다면, '네, 가능합니다.', 거절을 한다 해도 'ㅁㅁ 일은 능력 밖의 일이니 불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대신 이러이러한 사람이 그 일을 잘하니 연락을 해보실 수 있겠습니다.'라고 정보를 전달하면 됩니다. 감정적인 송구함이나 관계에 대한 불편함은 배제된 상태입니다. 부탁을 하는 주체와 부탁을 받는 주체, 그리고 일 자체가 각각 분리 및 객관화되어 있어서 일이라고 하는 대상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는 식으로 부탁과 답변이 이루어집니다.




I  부탁과 질문 사이

비즈니스 이메일을 보낼 때 위 두 방식 중 어떤 쪽에 더 가까우신가요? 물론 2번과 같은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위 '정중한' 이메일이라고 했을 때의 느낌은 다소 1번과 비슷하다는 데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1번의 경우처럼 일과 내가 일체화된 상태에서는 부탁과 답변이 '일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하게 되어 다소 어렵거나 불편해질 가능성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 계속 발생하면 자칫 스타트업의 전반적인 퍼포먼스를 저하시킬 수도 있겠죠. 


상당히 자유롭고 축제같은 분위기에서 모임이 이뤄집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스타트업 모임(meetup)과 컨퍼런스에 참여해보니 다들 너무나 쉽게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며 부탁과 도움을 주고받더군요. 처음 접한 미국 스타트업 문화에서 가장 적응 안되고 신기했던 것 중 하나였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눠보니 이러이러한 분야 분들과 잘 아실 것 같은데 혹시 제 사업 관련해서 누구 재밌는 분 있나요?' 라는 말을 한다거나 심지어 질문도 하기 전에, '어, 저 당신 사업 관련해서 아는 사람 있는데 연락 한 번 해보실래요? 제가 알려줬다 하시면 돼요.' 등의 이야기가 마구 오고 갔습니다. 요청이나 부탁이라기보다는 질문과 대화 딱 그것이랄까요. 그렇게 쉽게 부탁과 답변이 오고 가니 더 빠르게 적합한 사람과 조직을 찾을 수 있고 실질적으로 일이 되어간다는 느낌이었죠.


그렇다면 위와 같은 차이점이 왜 발생하며 이러한 점을 자연스럽게 활용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고민해봐야 하는지 두 가지 포인트에서 생각하고 정리해봤습니다.




1  I  언어의 차이 - Ask 는 질문이자 부탁

먼저 그 나라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언어의 차이입니다. Ask 라는 단어를 대부분 아실 텐데요, 사전을 찾아보면 첫 번째로 '묻다, 물어보다' 라는 뜻이 나오고, 두 번째로 '부탁하다, 요청하다' 라는 뜻이 나옵니다. 우리말에서 '묻다' 와 '부탁하다' 의 뉘앙스는 상당히 다른데 영어에서는 하나의 단어인 Ask 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묻다(질문하다)'는 객관적인 사실이나 정보에 대한 요청 - 밥 먹었어? 그 가게 어디 있어? 등 - 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부탁하다'는 '미안한데', '죄송하지만', '실례합니다만' 등의 표현과 함께 나에게 필요한 것을 상대에게 요청하는 인간관계적 소통의 뉘앙스가 강한데도 말이죠. 


질문과 부탁은 뉘앙스가 다르지만 Ask 라는 한 단어로 쓰입니다.


영어에서 Ask 는 이 두 의미를 모두 가지는데 이는 (거칠게 표현하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부탁'과 '질문'이 크게 다르지 않게 인식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May I ask you something? 이라는 문장이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라는 의미와 '나 뭐 부탁 하나 해도 돼?'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죠. 우리말에서 보면 생소한 일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일을 나와 떨어뜨려 객관화시킨 상태에서의 부탁은 일반적인 질문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능하기도 합니다. 주관적인 부탁을 객관적인 질문으로 인식하는 Ask 라는 단어의 뉘앙스를 잘 이해하면 부탁을 더 효과적이고 수월하게 할 수 있겠죠.




2  I  회사가 곧 나, 내가 곧 회사?

일과 나를 분리시켜 생각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스타트업 등 기업을 하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나 회사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실제로 지분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나를 곧 회사, 회사는 곧 나'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 생각됐습니다. 일은 자연히 나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내'가 일하고 '내'가 책임지고 '내'가 부탁하는 등의 사고와 행동이 나타나게 된달까요. (저도 무의식 중에 그러한 경향이 있고요.) 물론 일과 나를 분리하여 생각한다는 것은 내 일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을 더 잘되게 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놓고 본다는 것을 의미하죠. 내 사업이 소중하고 나의 분신과도 같은 경우가 많지만 일과 내가 너무 가까워 오히려 객관적인 관점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잠시 관조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일이 이렇게 나한테 붙어있으면 한 번 떼어봅시다.




I  부탁이 아니라 질문을 건네보자.

만약 일을 할 때 누군가에게 부탁이나 요청을 하며, 미안한 마음이 들거나 부담이 느껴진다면 위에서 언급한 방식으로 나와 일을 분리하고 객관화시켜 '일이 되게끔 하기 위해 이러이러한 작업이 필요한데 이런 것이 당신은 가능한가요?'라는 질문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요청해보면 어떨까요. 상대방도 나의 기분이나 감정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 없이 일에 초점을 맞춰 답할 수 있게 되어 실질적인 일 진행에도 유리해질 수 있습니다. 


저도 이메일을 쓸 때 가끔 상대를 너무 인식하다 보니 만연체와 화려체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일에 가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나에게서 분리해 나와 상대의 대화 주제로 놓고, 상대의 의견을 묻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해보니 부담도 덜하고 (최소한 미국에서는) 더 자연스러운 대화가 되더군요. 더 부담 없이 네트워킹이 이루어지고 사업을 해나감에 유리한 것은 물론입니다.




I  정리하며...

그렇다고 미국의 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무조건 더 우수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쓴 정중하고 예의 넘치는 커뮤니케이션은 그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주더군요. 예상치 못했던 친절함이라고 느끼고, 성품이 좋은 사람으로 인식된달까요. 이렇게 서로 다른 점을 적절히 융합하면 지금까지 우리나 상대의 문화 어디에도 없던 새로운 레벨의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느 쪽도 과유불급이라는 것만 기억한다면요.







본 글은 저의 주관적인 의견이며 모든 한국과 미국의 창업 교육과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덧붙입니다. 특징적으로 느껴졌던 차이점과 이를 어떻게 활용하여 더 나은 문화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 생각해주시고 같이 의견을 더해가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한국에서 들었던 대표적인 창업 교육은 IGM 세계경영연구원의 IEA 창업기업가 사관학교 3기('15.5월~12월 / http://www.igmiea.org/)였고, 미국에서 들은 인큐베이팅 및 교육은 Tech Ranch Austin 의 Venture Forth 33기('16.6월~8월 / http://techranchaustin.com/)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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