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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Mar 15. 2016

경쟁과 협력 - 어떤 것을 가르칠 것인가

마음이 넓으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다?


친구와 경쟁해서 올라서야 공부를 잘할지, 서로 돕고 친하게 지내야 공부를 잘할지, 자녀에게 어떤 방식을 교육해야 하나 고민스러운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이번 글에서는 양쪽의 장단점을 철학과 선진국의 예를 들고 사회적 이념적으로 갑론을박하기 전에 조금은 원론적으로 다르게 접근해보려 합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한 지식 습득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를 바탕으로 경쟁과 협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교수님께서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 정말 맞는 말씀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요, 같은 맥락에서 어른들은 늘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라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말을 귀담아 잘 듣는다'는 내용을 조금 확장해서 생각해 볼까요? 


<남의 말을 잘 듣는다의 의미는?>



I  지식의 습득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에서부터

학생들이 공부를 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언제일까요? 바로 수업 시간입니다. 그럼 학교든 학원이든 과외든 수업 시간엔 보통 무엇을 하죠? 선생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요새 많이 듣는 인강도 마찬가지고요. 스스로 책을 보면서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중요한 지식 습득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공부할 생각 말고 수업시간에 잘 듣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야'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겠죠. 즉, '귀담아 잘 듣는 것' 이 공부를 잘하는 지식 습득의 첫걸음인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공부를 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인 '귀담아 잘 듣는 것'이 그 사람의 성품과 큰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I  남의 말을 잘 듣는 건 마음이 넓은 것

보통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두루 좋아하고 학교생활을 잘 하는 학생들은 남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해주는 아이들입니다. 이런 학생들은 친구도 많고 무리의 리더로 추천되기도 하죠. 이렇게 선생님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아이는 주변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수용도가 높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요, 수용도가 높으면 주위 사람이 나에게 어떤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귀담아듣고 받아들여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생각이 넓고 깊어집니다. 수용도가 높다는 것은 또한 '자기가 적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조금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어렵지 않습니다. 여기서 '자기'라는 것은 나의 기준, 나의 관념, 나의 패러다임 등 내가 생각하는 맞고 틀린 것,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는 것 등을 의미합니다. 자기가 적은 사람은 내 관념과 기준이 적으니 다른 사람의 말을 순수하게 듣게 되어 '아 그렇구나.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수용이 쉬워지는 거죠.


 < 마음이 넓으면 다들 좋아하죠 >


반대로 이기적이어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친구들이 멀리하게 되는데요, 이는 마음속의 수용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 기준에서 판단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고 의심하거나 폄하하게 됩니다. 남이 무슨 이야기를 하면 '내 생각엔 말이야 그건 아닌 거 같애' 라고 생각하며 귀로는 듣는 척 해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죠. 



I  지적 성장은 잘 듣는 것에서부터

자, 위의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대입해 볼까요. 남의 말을 평소에 잘 듣고 이해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학생은 '듣고 생각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이미 숙달되어 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도 자연스럽게 듣고 빠르게 자기 것으로 습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평소에 자기 생각만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던 학생들은 무언가를 듣고 이해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아 수업 시간의 말씀을 잘 듣지 않거나 자기 것으로 수용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속으로 '아 뭐래, 난 저 선생님 목소리 말투 완전 맘에 안 들어' 하고 있다는 거죠)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말을 계속 배척하게 되면 자기에게 흡수되는 정보의 양이 줄어들어 지적 성장이 더뎌지게 됩니다. 선생님을 포함한 주변에서 많은 정보를 주어도 본인이 그것을 수용하지 않고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 이상의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 '자기 기준' 이상의 성장이 어려워지는 거죠.


< 딱 남의 말 안 듣는 표정이죠? >



I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협력의 가치관을 생각해보라

그래서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도록 하고 싶다면, 남들을 밟고 올라서야 하니까 나를 먼저 생각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너를 누르고 내가 올라가겠다는 경쟁의 철학을 가진 아이는 자꾸 나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낮추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남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고 내 기준으로 판단해서 '아닌데 이게 맞는데. 내가 너보다 낫네' 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배우려 하거나 다른 사람의 허물을 타산지석 삼아 나의 부족함을 채우려 하지 않게 되는데, 내가 부족하면 지는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죠. 그런 생각을 가진 아이는 점점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뇌에 들어오는 정보가 적어져 지적 성장이 느려지고 아집이 커지게 됩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결국 ‘나보다 지적으로 우수한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잘 듣고 (혹은 읽고) 수용하는가’ 에 달렸습니다. 협력의 가치를 가진 아이는 남을 말을 잘 들어주고 이해하며 수용하기 때문에 선생님을 포함한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그 아이에게 지적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 거죠. 공자의 논어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子曰: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자왈: "삼인행, 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의역하면, 나를 포함한 세 명이 있을 때 그중엔 나 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에게 그것을 배우고, 나 보다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나 자신을 비추어 보는 거울로 삼으라는 내용입니다. 한 마디로 세상 모든 것들이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협력의 가치관을 가져 남의 말을 잘 듣고 수용하는 아이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뿐만 아니라 우스갯소리로 지나가던 개가 짖어도 그것을 듣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겁니다. 



I  단, 수용이 바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하나 주의할 점은 수용이라는 것이 남의 말을 무조건 다 듣고 허허허 하는 바보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협력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죠. 전자의 경우는 누가 '나 이것 좀 줄래?' 라고 하면 '허허 그래 다 가져가' 라고 하는 꼴이고, 후자는 '아, 이것이 왜 필요하니? 내가 뭘 도와줄까?' 라고 상대의 상황을 파악하고 마음을 이해하는 겁니다. 밑도 끝도 없이 다 퍼주고 허허허 하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I  경쟁의 가치관 생성 원인

마지막으로 그럼 왜 많은 수의 우리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가를 사회적인 입장에서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의 학부모님 세대인 70년대 생 및 그 이전 세대가 어렸을 때는 경쟁하고 싸워서 이기는 것이 옳은 가치로 인식되습니다. 초등학교 교육은 그 나라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인을 만들기 위한 방향성을 가지기 마련인데요, 70년대 및 이전 세대는 초등학교 때 '힘내라 힘 힘내라 힘 싸워서 이겨라' 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전쟁과 이념의 이슈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열등한 위치에서 국제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을 시작해야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그때는 경쟁해서 이기는 것이 곧 생존 자체를 의미했기 때문에 더 없이 절박했습니다.


<똘이장군 아시나요. 그 때는 싸워서 이겨야 했죠>


그러다가 80년대 생 이후부터 조금씩 '서로 도우면 다 같이 잘 된다'는 협동과 협력의 가치로 교육의 방향성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서로를 끌어내리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 도와서 같이 하는 협동이 더 바람직한 가치로 인식되기 시작한 거죠. 사실 그래서 협동의 가치를 배운 세대가 성인이 되기 시작한 지금, 경쟁의 가치를 배운 윗 세대와의 가치관 차이가 사회적으로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다른 나라는 한 세기 이상에 걸쳐 바뀌는 가치관 변화를 우리나라는 한 세대 안에 하려 하니 세대 별 가치관 차이가 얼마나 클지 예상이 되지요? 사실 세대 간에 서로 미워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예시 중에 하나가 성역할인데요, 이전 세대가 어렸을 때는 엄부자모,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의 가치관을 배웠다면 이후 세대는 남성과 여성의 장점을 모두 갖춘 전인적 인격의 가치관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면도 세대 별로 가치관 차이가 꽤 나는 것을 실감하는 분들도 많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존중되는 가치가 달라지고 그것이 변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생기는 것이죠.


< 사진 한 장으로 설명 되네요 >



I  협력의 가치관

자,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서로 돕는 협동의 가치를 배운 아이는 다른 이의 말을 잘 듣고 수용 및 이해한다.
따라서 협동의 가치를 가진 아이가 수업 시간에 잘 듣고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논리적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고, 성품이 좋고 마음이 넓다고 다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닙니다. 지난 글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공부도 재능과 자질이 관여돼있어서, 세 시간 가만 앉아있을 수 있는 아이가 세 시간 뛰어도 지치지 않는 아이보다 학업을 잘 할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운동은 후자의 아이보다 못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오래 앉아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 등등 천성과 자질이 어느 정도 작용합니다. 단,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잘 듣는 것이 분야를 막론하고 자기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공부를 잘 하게 하고 싶다면 내 기준과 관념을 줄이고 남의 말을 귀담아 잘 듣는 협력의 가치관을 고려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I  정리하면..

절대적으로 경쟁의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은 상대를 낮추고 자신을 높이려 하기 때문에 잠깐 빛을 볼 수는 있으나, 아이들의 교육 목표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성인이 되어 잘 사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주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지적 습득이 줄어 정작 사회인이 되었을 때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주변의 말을 귀담아 들어 시간이 갈수록 지적 성장이 일어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협력의 가치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더 큰 범위에서는 경쟁과 협력이 같은 맥락을 가진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에 관해서는 후에 자세히 풀어볼까 합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오늘의 글은 학업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이고 스포츠 분야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든 본인이 이 두 가치 중 하나만 옳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가치에 대한 장단점도 한 번 고려해보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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