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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Mar 16. 2016

민사고 수석이 전하는 초중고 시기별 공부

초, 중, 고, 대학, 대학원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습득해야 할까요


학생들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학부모님들은 열과 성을 다해 여러 가지 정보를 찾으며 공부를 시킵니다. 하지만 정작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등 각 레벨에 따른 학교의 목적이 무엇이고 학생들은 각 학교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달성해야 하는지 큰 그림 없이 공부하는 학생과 학부모님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를 요리에 비유해서 이해하시기 쉽게 각 시기 학교 공부의 목적은 무엇인지 굵직한 흐름을 살펴보고 이러한 흐름에 맞춰 공부를 하고 있는지, 또 시키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같이 가져보고자 합니다.
제 프로필과 이전 글이 궁금하시면 '민사고 수석이 본 공부의 목적과 미래 사회' 를 클릭하여 참고해 주세요.



I  초등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초등학교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기초 교육을 실시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단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요리에 비유하면 한국에서는 한식의 기초를 배우는 것이고, 중국에서는 중식의 기초,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음식의 기초를 배우는 거죠. 각 나라 별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바람직한 사회인의 모습과 세계 속에서 자국의 캐릭터를 강화하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적인 사회인의 방향성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국가에서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기본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 바로 초등학교입니다. 그래서 각 국가가 미래를 위해 어떤 능력을 강조하고 기대하고 있는지 초등학교 과목과 수업시간의 비율을 보면 대강 감을 잡을 수 있기도 합니다.


<2013 초등학교 시간 배당 기준입니다. 비율이?>


초등학교는 가장 기초적인 것을 배우는 곳이므로 요리에 비유하자면, 요리를 위한 도구와 재료들이 무엇이 있는지를 배웁니다. 칼이 있고, 냄비가 있고, 도마가 있고, 이것들이 어디에 쓰는 것들인지를 습득합니다. 또 음식을 어떻게 놓는 것이 예쁜지 등의 감성의 기초도 배웁니다. 공부라면, 한글을 배우고 숫자를 배우고 기본적인 사칙연산사회의 기본 형태 등을 배우죠. 음악 미술 등의 감성 교육도 실시하고요. 이렇게 요리를 하기 위한 기본 재료 - 공부를 하기 위한 기본 도구를 배우는 시기가 초등학교입니다.


<채치고 다지기 전에 칼을 잡고 도마놓고 깍둑썰기를 먼저 배우는 시기입니다>


이렇게 배운 재료와 도구들로 기본적인 요리를 만들어 보기도 합니다. 글짓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발표도 합니다. 물론 요리라고 할 만한 것은 아직 만들 수 없죠. 결과물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가 배운 것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손에 익히고 느끼며 사고력을 발달시키기 위함입니다. 이런 과정이 없다면 그냥 단순히 '칼은 재료를 써는 데에 쓴다' 정도로 알고만 있지 실제로 당근을 주고 썰어봐라 하면 힘을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얼마만 한 두께로 썰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창의적 체험활동, 토론식 수업, 발표식 수업, 표현하기 등을 배우고 실행하는데요 사실 초등학교 때는 알고 있는 재료와 도구가 얼마 없기 때문에 이러한 커리큘럼도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재료와 도구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익히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재료를 5가지 알고 있는 아이와 20가지 알고 있는 아이의 요리 수준이 차이 날 수밖에 없듯이 좀 더 많은 것을 익혀야 하는 시기인 거죠. 위의 시간 비례에서도 보면 총 수업 시간 중 창의적 체험 활동은 약 10% 정도를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인 내 아이가 만든 결과물이 왜 이 정도밖에 안되지 라고 생각하는 단계가 아니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무엇을 배웠고 느꼈는지가 더 중요한 시기입니다.


<학교에서 실시하는 창의적 과학활동의 예시>


이것이 부족하다 생각하여 더 많은 응용력과 사고력을 위해 여러 가지 학원과 과외 학습을 시키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저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목적을 가진 학습보다 자유로운 놀이를 통해 생각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 초등학교 때, 특히 저학년 때는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창의력을 기르기 위한 놀이 학습 프로그램' 은 창의력을 기르기 위한 방향으로 밖에 생각이 발전하지 못하지만, 놀이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다양한 변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황에서 내가 알고 있는 사고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마구 생각하며 그물처럼 사고의 방향이 다양화됩니다. 초등학생들의 뇌와 사고는 아직 매우 미완성이고 어디로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기 때문에 의도된 다양성보다 정말 다양한 일이 벌어지는 놀이 상황에서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상할 수 없이 뻗어있는 뇌의 뉴런. 이 것이 만들어지는 시기 입니다>


제 경험 하나로 부연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쯤 이었을 겁니다. 레고를 가지고 놀다가 문득 목적된 결과물이 아니라 (아마 소방서 만들기 시리즈 레고였을 겁니다) 헬리콥터를 만들고 싶어 졌습니다. '자, 이제 소방서 말고 다른 걸 만들어볼까?'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여기서부터 이미 창의력이 발휘되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헬리콥터 몸체를 만들려면 길쭉한 구 모양의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데 레고는 벽돌처럼 쌓는 방식이라 바깥쪽으로 넓어졌다가 다시 안 쪽으로 좁아지는 구 모양의 입체 형태를 만들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긴 시간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힘을 이렇게 주어야 하나, 두 칸이 아니라 네 칸짜리를 써야 하나, 그냥 직육면체로 쌓을까 등등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며 고사리 손으로 레고를 만지작 거리던 기억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때의 기억과 감각이 제가 나중에 대학 건축 전공 수업 시간에 벽돌의 축조 방식을 배울 때 감각적으로 떠오르더라는 겁니다. 놀이를 통해 손으로 익혔던 축조 방식이 감각적으로 벽돌에 대한 이해력을 높여주었던 거죠. 이렇게 사고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많이 뻗어있어 어떤 사고가 어떤 상황에 영향을 미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같이 아직 생각의 방향성이 생기지 않은 백지상태의 뇌라면, 의도한 다양성이 아닌 진정한 다양성을 생각할 수 있는 놀이를 고려해보시라 말씀드립니다. 


< 그 때의 집중력과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



I  중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중학교도 초등학교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요리를 하기 위해서 워낙 알아야 하는 도구와 재료가 많다 보니 쉬운 것은 초등학교 때, 조금 난이도가 있는 것은 중학교 때 배우게 됩니다. 기본적인 사칙연산을 초등학교 때 배웠다면 중학교 때는 방정식이나 함수 등 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개념에 대해서 습득합니다. 요리에 비유하자면, 초등학교 때 칼, 가스레인지가 무엇이고 어떻게 쓰는지 등을 배웠다면 중학교 때는 칼을 아는 상태에서 다양한 믹서의 사용법을, 가스레인지를 아는 상태에서 오븐의 사용법을, 즉, 중급 도구와 재료에 대해 배우는 거죠.


<칼을 쓸 줄 알았으면 이제 다양한 믹서도 배워야죠>


하지만 이때부터 앞으로의 인생에 몇 번 쓰이지 않는 중고급 도구와 재료들 - 방정식, 함수 등 - 을 배우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는데 덧셈 뺄셈만 하면 되지 왜 이차 방정식을 배우는 거예요' 라고 말입니다. 일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얘기는 요리에 비유하면, '요리할 때 칼로 다 할 수 있는데 왜 믹서 사용법까지 알아야 되요' 라는 말입니다. 물론 사용빈도는 낮지만 알아두면 유용하고 요리의 레벨을 크게 높일 수 있는 도구들이죠. 중학교까지는 고급이 아니라 중급 재료 및 도구들을 배우기 때문에 앞으로 직접적으로 쓰일 수 있는 내용들을 배우는 시기라고 판단됩니다. 또 직접적으로 쓰지 않더라도 '아 믹서는 이런 원리구나' 라고 사고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고민보다는 일단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라고 생각하고 배워두면 나쁠 것이 없는 단계인 거죠.


<기억나십니까. 이차방정식>


중학교부터는 수준 높은 아이들의 경우, 제법 성인의 요리를 따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그림도 제법 그리고, 글도 제법 쓰며, 컴퓨터 공부를 열심히 한 아이들은 상당한 수준의 홈페이지나 앱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하지만 자기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에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사고가 다양화되지 않아 훌륭한 것을 보고 따라 만드는 정도만 되어도 높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부터는 초등학교 때 배워서 이미 숙달된 것들에 대해서는 응용력과 창의력을 연습해 보는 것이 좋은데요, 초등학교 때 배운 칼 쓰는 방법이 이제 손에 익었다면, 칼을 다르게 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칼의 크기는 꼭 이래야만 하는가, 나라면 칼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칼이 두개 붙어있거나 다른 도구를 칼처럼 이용할 수는 없을까 등 이미 그 본질을 파악한 도구와 재료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생각 - 발표, 토론, 글쓰기, 실험 등 - 을 통해 사고력을 넓히는 연습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무언가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사고의 방식을 습득하고 실험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안전하게 폈다가 접어서 쓰는 칼. Why not? 의 감각을 익히는 시기>


이를 공부에 대입하면, 논설문 쓰는 방식에 대해 내가 잘 배우고 잘 쓸 수 있다면 이러한 방식으로 독후감을 쓰면 어떨까, 배운 논설문의 구조를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 논설문의 구조를 음악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논거는 서너 개가 적합하다는데 열 개를 쓰면서 효과적으로 쓸 수는 없을까 등을 생각해 보는 거죠. 네, 어렵습니다. 하지만 '배운 것이 전부가 아니라 배운 것은 도구와 재료이고 이것으로 내가 어떤 것을 만들 것인가가 목적이다' 라는 감각을 제공하는 데에는 더 없이 좋은 방법입니다. 자신만의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앞으로의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이기도 하고요. 살짝 말씀드리면, 여러 분야의 융복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자기만의 관점을 만들어 내는 캐릭터가 특목고에서 바라는 인재상이기도 합니다. 특목고 시험도 그러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철학 지문과 고전 문학 지문을 주고 두 글의 공통점을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대중교통 시스템에 대하여 자기의 의견을 기술하고 발표하라 같은 방식입니다. 놀랍죠. 그런데 이런 정도의 실력을 가진 학생은 많은 수가 학문에 뜻이 있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속상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삶의 방향성이 서로 다른 것일 뿐이니까요.



I  고등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고등학교 때는 고급 재료와 도구에 대해서 배우는 부분이 많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익힌 도구와 재료들을 어떻게 손님에게 나가는 요리에 활용하는지 비로소 배우기 시작합니다. 방정식과 함수라는 중급 도구를 익혔다면 이제 고등 도구인 미적분을 배우게 되고, 실제 사회에서의 활용법을 배우는 면에서는 경제수학이나 실용수학 등의 맛을 처음 보게 됩니다. 진짜 사회에 나가서 쓸 수 있는 활용법, 즉, 손님에게 나갈 요리법을 익히는 거죠. 공부를 제대로 열심히 했을 경우 고등학교까지 나오면 이제 각 재료와 도구들을 능숙하게 다루게 됩니다. 언어 해석 능력이 영글어서 경제 신문이나 어려운 글을 읽어도 독해가 가능하고,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으면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여 논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수학 같은 경우 대학교 때 공부할 엔지니어링 언어나 통계 등 진짜 사회에서 활용되는 것을 배움에 어려움 없도록 수학적인 사고력과 논리력이 갖춰져야 하는 거죠.


<2015 고1 수학 교과과정입니다. 헉 소리 나나요>


고등학교가 되면 이제 상당한 수준의 도구와 재료에 대한 습득이 끝납니다. 그래서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도 하면 좋은데요, 훌륭한 요리를 보고 따라 만드는 것을 너머 부족해도 자기만의 방법과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시기입니다. 재료를 이것저것 섞어보기도 하고 이 도구 말고 저 도구를 써 보기도 하고 아예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 보기도 하는 등 정석 활용법을 너머 본질을 파악하고 새롭게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같이 된다면 쓸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100종류의 요리 도구에 대해서 단지 습득만 한 학생의 경우 100가지의 방법을 알게 되지만, 스스로 고민을 해서 두 가지 도구를 같이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한 학생은 100가지를 두 개씩 엮는 방법 - 기억하시나요 이 계산 - 약 5,000가지의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정확히 몇 가지가 나올까요 퀴즈! 정답은 아래에) 


이는 시험 볼 때 점수와도 연결이 되는데요, 배운 하나의 방법만 알고 있는 학생은 막히면 그 문제를 전혀 못 풀게 되지만 여러 방법들을 다양하게 생각해본 학생은 하나의 방법이 막혔을 때 다른 방법들을 동원하여 결국 문제를 풀어내게 됩니다. 이 차이가 작은 것 같지만 나중에는 굉장히 커집니다. 실력 이상의 점수를 받는 학생들이 주로 이러한 사고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중학교 때 도형 문제를 푸는데 막혀서 시험지를 찢어서 삼각형을 직접 만들어 접어보면서까지 기어이 그 문제를 맞힌 경험도 있습니다) 습득하는 교육은 하나씩 하나씩 산술적으로 그 지식의 양이 증가하지만 그것을 응용하는 훈련을 통하면 그 양이 지수 함수로 증가하게 됩니다. 따라서 도구와 재료에 대한 습득이 거의 완성되는 고등학교의 경우 이러한 응용의 방법까지 고려하여 교육한다면 상상 이상의 사고력을 갖추게 됩니다. 중학교 때 이런 교육을 했을 경우, 알고 있는 10가지의 재료 중 두 개를 써서 만들 수 있는 가짓수는 45개로 4.5배가 되지만, 고등학교 때 100개를 알고 있는 상태라면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 수가 4,950개로 거의 50배로 커지게 됩니다. (퀴즈 정답은 4,950개였습니다) 응용력과 다양한 사고력 교육은 이래서 중요합니다. 


<산술증가와 지수증가의 차이. 단리복리와 같죠>


하지만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업은 오히려 중학교보다 응용과 관련한 내용이 더 적어지는 것 같은데요, 습득할 것이 꽤나 많고, 심지어 중학교 공부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이해하는 데 시간이 너무나 많이 필요해지기 때문에 단편적인 습득 자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일단 가치판단은 배제하고 주입형 교육과 토론형 교육의 장단점과 밸런스 등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써 보겠습니다.



I  대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

대학을 가면 비로소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배우기 시작합니다. 요리로 말하면 지금까지 한식의 이모저모를 배웠다면 지금부터는 '난 한식 중에 남도 요리의 대가가 되겠어' 혹은 '난 전골 요리의 대가가 되겠어', 또 '난 중국인도 못 따라오는 중식의 대가가 되겠어' 라고 정하고 그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또 배울 것이 엄청 많아서 습득하는 것만도 만만치 않습니다. 예전에는 대학 가면 자기 공부한다고 하는데 지금처럼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대학에서도 수많은 것들을 습득해야 하게 된 것 같아요. 물론 대학 때는 자유도가 높아져서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골라서 할 수 있게 되지만요.


<나는 어떤 삶의 방향성을 가지게 될까. 보통 대학 때 진심으로 고민하죠>


주의할 점은, 대학에서는 이미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재료와 도구들의 사용법은 최소한 다 알고 있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교육을 한다는 겁니다. 엔지니어링 공부를 한다면 수열, 미적, 함수, 방정식 등의 내용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교육을 하고, 철학 공부를 한다면 긴 글을 빠르고 정확하게 읽고 그 구조와 의도를 파악하여 요약 및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철학 관련 내용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이것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으면 대학에서의 공부를 따라가기가 어렵게 되죠. 요리에 비유하여, '렌즈콩 볶으면서 아티초크를 넣을 텐데 그럼 어떻게 될까요?' 라고 교수님이 진도를 막 나가시는데 렌즈 콩이 뭔지 맛과 효능이 무엇인지 아티초크는 무엇에 쓰는 재료인지 모르고 있다면 난감하겠죠. (사실 수포자라는 것도 이전 중학교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부터 급격히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대학교 공업수학입니다. 위의 방정식을 모르면 어림도 없죠.>


대학에서는, 요리에 비유하면 일반적인 메뉴 등의 원론적인 이론을 너머 자기만의 메뉴, 즉, 독창적인 학문의 방향과 신념을 가진 전문가 = 교수님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 내는 훈련을 받게 됩니다. 이때 여러 도구와 재료들을 이미 잘 습득하고 응용해서 이런저런 사고력을 높였던 학생은 빠르고 쉽게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가르치는 것만 수동적으로 배웠던 학생들은 기존에 있었던 것 밖에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계가 발생합니다. 이전에는 이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점점 창의력을 요하는 사회로 바뀌면서 이런 학생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택하는 전략이 어디에나 통하는 일반적인 고스펙 쌓기가 되는데 이제는 또 오버스펙이 아니라 최적 스펙으로 채용의 경향도 달라져서 고민이 많죠.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만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을 고민했으면 합니다. 세상 누구도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만이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능력과 실력으로 고민하고 살려보는 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참고로 미래 사회의 인재상에 관련한 글은 '민사고 수석이 본 미래형 인재와 공부의 방향성' 글을 클릭해서 참조 해 주세요)


<매일경제의 2016. 3. 14 기사>


또, 대학 때는 성인이 되어 높아진 자유도와 함께, 내가 알고 있는 도구와 재료들을 활용하여 전공 공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실제 경험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이제 성인이라 마음대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전에 거시경제학 수업을 들을 때 (전 건축과였지만요) 교수님께서 '이 서울대생들아, 앉아서 공부만 하지 말고 나가서 이런 거 저런 거 이상한 것들도 좀 해라' 라고 하셨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정말 '거시적인' 통찰력의 교수님이셨죠. 

지금도 저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던 대학 시절의 경험을 꼽으라면 열심히 공부했던 학업보다 로레알 마케팅 대회인 '로레알 브랜드 스톰' 에 참여한 것을 꼽겠습니다.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리서치를 하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 전략을 짜고 팀원들이랑 찌그락 째그락 맨날 부딪히고 프레젠테이션 마련에 영어 발표에 의상 컨셉에 심지어 로레알 발표라고 머리까지 하고 갔습니다. 이 대회 하나가 엄청나게 많은 것을 경험하고 깨닫게 했죠. (엄밀히는 대학원 1학년 때 출전했지만요)


<놀랍게도 검색하니 나오네요. 2007년 로레알 브랜드 스톰. 저는 정 가운데 뒤에서 브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3rd winner 였어요.>



I  대학원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자, 긴 장정의 마지막까지 왔습니다. 그렇다면 석사 박사 과정이 공부하는 대학원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사업적인 면은 제외하고 학문적인 면에서만 기술해 보겠습니다. 대학원을 가면 진짜로 자기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대학에서도 자기 공부를 하지 않았냐고요? 대학에서는 전문가인 교수님께 배우고 그 가운데 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공부했었죠. 요리로 따지면 대가의 요리를 전수받고 이를 어떻게 더 새롭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실험적으로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 보던 시기였습니다. 대학원은 이제 자기 메뉴를 개발하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도구와 재료를 다 쓸 줄 알고 대가의 요리법도 다 배웠습니다. 이제 이를 활용해서 나만의 요리 메뉴나 기법을 스스로 연구하고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때부터가 진짜 학자의 시작입니다. 


<학사모와 졸업가운이 무색하지 않은 학자가 되고 싶은 모두들>


학자라 하면 자고로 자신의 의견이 있고 그것에 대한 논거가 있어야 하며 이를 가지고 세상에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석사 과정은 이에 대한 첫 과정이라, 자신의 학문적 의견과 연구 결과를 주장하는 것과 동시에 정확한 논거를 논리적으로 발굴하고 구성하는 것도 매우 중시합니다. 이때부터는 대가인 교수님이 틀리다 말씀하셔도 정확한 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펼치고 반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문은 그렇게 발전하는 것이고요. 박사과정에 가면 비로소 자신의 의견이 강조되고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학문적 결과물을 제시합니다. 또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죠. 자신의 학문적 주장과 연구 결과를 가르치려면 그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요리로 따지면 석사는 신메뉴를 개발하되 지금까지의 도구와 기법 등이 신메뉴에 어떻게 사용되었고 그래서 이것이 어떻게 왜 새로운 메뉴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에 집중한다면, 박사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메뉴를 계속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전문가의 단계가 되는 겁니다. 전 석사까지 이수했기 때문에 박사에 관한 것은 친구나 선배님들을 보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거라 큰 줄기만 파악하고 있는 정도니 대강 이렇구나 라고만 인식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초중고등학교니까요.



I  나는 공부의 큰 흐름 안에 있는지..

비유하여 설명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붙이다 보니 생각보다 긴 글이 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학업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큰 흐름으로 진행됩니다. 교육 기관에서의 공부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하나의 맥을 가지고 진행되기 때문에 사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배운 것이 결국 대학교 및 박사과정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본인이 혹은 자녀가 어떤 과정에 있고 큰 흐름 내에서 그 당시에 습득해야 할 내용을 공부하고 있는지, 또 자신이 어디까지 공부할 것이며 학문에 뜻을 둘지 사회 활동에 뜻을 둘지 등도 이러한 큰 그림과 흐름에서 생각해보면 조금 더 윤곽이 잘 보이시리라 생각됩니다. 나의 자녀에게 너무 어린 나이에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길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반대로 이미 도구와 재료들을 다 습득해야 할 시기에 아직 습득이 덜되어 있거나 하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는 단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만약 고등학교 수학이 너무 어려워 따라가지 못한다면 내가 중학교 수학을 다 알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방학 등을 이용해서 중학교 것을 완료하고 본래의 진도로 돌아와야 합니다. 언어도 마찬가지로 독해와 요약 능력이 떨어지면 중학교 수준으로 돌아가서 다시 연습하고 본래의 진도로 돌아오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무조건 진도를 앞으로 빼고 선행학습을 한다고 시험을 잘 보는 게 절대 아니란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86%가 선행학습을 하면서 다 따라가고 있다면 우리나라 교육이 너무 쉽고 난이도를 더 높여야 한다는 얘기가 됩니다. 누군가는 선행학습을 하지만 못 따라가고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저의 경험 하나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때 학원에서 어떤 글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과제를 내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독후감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방법을 거의 한 가지밖에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썼는데 다시 써보라 하더군요. 다시 썼지만 아는 게 그거 밖에 없으니 비슷한 형태로 써갔습니다. 다시 한 번 너의 의견을 담아서 써보라 했는데 저는 결국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선생님이 의도한 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에게 어울리는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중학생은 되어야 글의 요약 수준을 너머 내용의 본질을 파악해서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나는 이렇게 살겠다 라는 의견이 나오는데 초등학생에겐 너무 일렀던 거죠. 토론 수업도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때 학원에서 토론 수업을 했었는데 대체 뭘 말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만의 의견을 제시하기엔 습득된 정보가 너무 없어서 그것을 가공하여 사회 현상에 대한 내 의견을 제시하기엔 실력이 모자랐죠. 차라리, 이런 현상은 이렇게 저렇게 볼 수 있단다 하는 식으로 가르쳐주고 다른 현상을 대입해보라든지 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혹시 자녀에게 너무 성급한 것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다가 아이들이 눈치만 보면서 부모의 의견을 그대로 따라만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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