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미신의 과학
당신은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무엇을 하는가?
어떤 사람은 깊은 숨을 세 번 쉰다. 어떤 사람은 손을 비빈다. 어떤 사람은 주머니 속 작은 물건을 만진다. 또 어떤 사람은 화장실 거울 앞에서 "넌 할 수 있어"라고 중얼거린다.
우리는 이런 행동들을 '긴장 풀기'라거나 '루틴'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해지면, 이것은 현대인의 '의례'다. 고대인들이 전쟁 전에 제물을 바치고 주문을 외웠듯이, 우리도 중요한 순간 앞에서 나름의 의식을 치른다.
그런데 이런 의례가 정말 효과가 있을까? 단순한 심리적 위안일까, 아니면 측정 가능한 실제 효과가 있을까?
2016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앨리슨 우드 브룩스 연구팀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는 실험을 설계했다.
브룩스 팀은 참가자들에게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는 과제를 주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기.
실험 참가자들은 닌텐도 Wii의 노래방 게임 '가라오케 레볼루션'을 통해 저니(Journey)의 "Don't Stop Believin'"을 불러야 했다. 게임은 음정과 박자를 측정해 점수를 매긴다. 객관적인 수행 평가가 가능한 것이다.
참가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통제 그룹은 노래 부르기 전 2분간 조용히 앉아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실험 그룹은 달랐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지시를 받았다:
"테이블 위에 종이 한 장을 그리세요. 그 종이에 지금 느끼는 감정을 적으세요. 5초간 세면서 소금을 뿌리세요. 그리고 종이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아무 의미 없는 행동들의 조합이었다. 그러나 연구팀은 이것을 '의례'라고 명명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의례를 수행한 그룹은 통제 그룹에 비해 주관적 불안 수준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객관적 지표였다. 실험 그룹의 심박수가 실제로 더 낮았다. 그리고 노래 점수도 더 높았다.
아무 의미 없는 동작들 — 종이에 뭔가를 쓰고, 소금을 뿌리고, 구겨서 버리는 것 — 이 실제로 생리적 각성 수준을 낮추고 수행을 향상시킨 것이다.
연구팀은 후속 실험을 통해 핵심 요소를 분리해냈다. 같은 행동을 시켜도, "이것은 의례입니다"라고 프레이밍하면 효과가 있었고, "그냥 무작위 행동입니다"라고 하면 효과가 사라졌다.
의례의 마법은 행동 자체가 아니라 '의례'라는 의미 부여에 있었다.
인지과학자 닉 홉슨과 그의 동료들은 2018년 연구에서 의례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예측 가능성의 증가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는 통제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의례는 정해진 순서, 정해진 동작으로 이루어진다. 최소한 '이것'만큼은 내가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 이 작은 확실성이 불확실한 상황 전체를 조금 더 견딜 만하게 만든다.
둘째, 주의 분산 효과다. 불안할 때 우리의 주의는 걱정스러운 생각에 고착된다. '망하면 어떡하지', '다들 나를 비웃으면?', '준비가 부족했나?' —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의례적 행동은 주의를 현재의 구체적인 동작으로 돌린다. 소금을 뿌리는 동안에는 소금에 집중해야 한다. 부정적 사고의 반추를 끊어주는 것이다.
셋째, 통제감의 회복이다. 앞서 3화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간은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느낄 때 패턴을 찾고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의례는 이 욕구를 충족시킨다. 비록 그 의례가 결과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뭔가를 했다'는 느낌 자체가 심리적 안정을 제공한다.
마이클 노튼과 프란체스카 지노는 2014년에 더 무거운 주제로 의례의 효과를 검증했다: 상실과 애도.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인생에서 겪은 상실 경험 —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별, 실직 등 — 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 상실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의례를 행했는지 물었다.
어떤 사람은 고인이 좋아하던 노래를 매년 기일에 듣는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헤어진 연인의 사진을 특정한 순서로 정리해서 상자에 넣는 의식을 치렀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실직 후 매일 아침 정장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하는 척하는 루틴을 유지했다고 했다.
중요한 발견은 이것이었다: 의례를 행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슬픔의 강도가 유의미하게 낮았다. 그리고 이 효과는 의례의 내용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타났다. 종교적 의례든 개인적으로 만든 의례든, '의례를 행했다'는 사실 자체가 치유 효과를 가졌다.
노튼과 지노는 이렇게 썼다: "의례는 상실로 인해 무너진 통제감을 회복시켜준다. 되돌릴 수 없는 것 앞에서, 최소한 '이것'만큼은 내가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여기서 흥미로운 통찰이 도출된다.
수천 년간 인류가 발전시켜온 종교 의례 — 기도, 예배, 제사, 명상 — 는 과학 이전 시대의 '미신'으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그 의례들이 수행하는 심리적 기능은 현대 실험심리학이 검증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행동: 종교 의례든 개인 루틴이든, 효과적인 의례는 정해진 순서와 형식을 따른다.
수행 자체에 의미 부여: 그 행동이 '왜' 효과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행위자가 의미 있다고 '믿는' 것이 핵심이다.
공동체적 수행 시 효과 증폭: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할 때 의례의 효과는 커진다 (이에 대해서는 8화에서 자세히 다룬다).
과학은 종교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 의례가 왜 그토록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이 연구들이 던지는 실천적 메시지는 명확하다.
중요한 순간 앞에서 불안하다면, 의례를 만들어라. 거창할 필요 없다. 손을 씻는다, 물을 한 모금 마신다, 눈을 감고 숫자를 센다, 특정 문구를 중얼거린다 — 무엇이든 좋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의례'로 규정하고, 매번 같은 방식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 의례는 당신의 뇌에 '준비 완료' 신호로 각인된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렸듯, 당신의 몸은 의례 수행에 이완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다.
미신이 아니다. 조건화다. 그리고 그것은 작동한다.
의례가 불안을 줄이고 수행을 돕는다면, 의사결정 상황에서는 어떨까? 불확실한 선택의 순간, 미신적 휴리스틱은 어떤 역할을 할까?
다음 화에서는 말리노프스키가 관찰한 어부들의 날씨 점, 카너먼의 휴리스틱 이론, 그리고 '합리적 비합리성'이라는 역설적 개념을 탐구한다. 때로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미신을 따르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