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면역의 기억

몸 안의 만성 전쟁

by 타자


젊었을 때 감기에 걸리면 며칠 앓다가 금방 나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감기가 오래간다. 예전에는 며칠이면 끝났을 것이 일주일, 열흘을 간다. 백신을 맞아도 효과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는데도 독감에 걸린다.



이것은 기분 탓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면역 체계가 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순히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면역 체계의 노화



면역 체계는 두 가지 주요 부분으로 나뉜다. 선천 면역과 적응 면역.



선천 면역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방어 시스템이다. 피부, 점막, 특정 면역 세포들이 침입자를 비특이적으로 막아낸다. 적응 면역은 특정 병원체를 '기억'하고 맞춤형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이다. T세포와 B세포가 핵심 역할을 한다.



나이가 들면 두 시스템 모두 변화한다.



선천 면역은 반응이 느려지고, 만성적인 '저등급 염증' 상태가 된다. 적응 면역은 새로운 병원체에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특히 흉선(thymus)—T세포가 성숙하는 기관—이 사춘기 이후 지속적으로 위축된다. 20대에 이미 상당 부분이 지방 조직으로 대체되고, 노년에는 거의 기능하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T세포 생산이 줄어든다. 이미 가지고 있는 T세포로 버텨야 한다. 문제는 이 T세포들도 늙는다는 것이다.



면역 기억의 역설



면역 체계가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개 좋은 일이다. 한 번 홍역에 걸리면 평생 면역이 생긴다. 백신이 작동하는 것도 이 기억 덕분이다.



그러나 역설이 있다. 오래 살수록 면역 체계는 더 많은 것을 '기억'하게 된다. 수십 년간 마주친 수많은 병원체들에 대한 기억 세포가 쌓인다. 문제는 면역 체계의 공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억 세포가 많아지면, 새로운 위협에 대응할 '순진한(naive)' 세포의 자리가 줄어든다. 젊은 면역 체계는 새로운 적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늙은 면역 체계는 과거의 적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 차서, 새로운 적에 대응하는 능력이 제한된다.



이것이 노인이 새로운 감염이나 새로운 백신에 잘 반응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면역 체계가 약해진 것이 아니라,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이다.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



2000년,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클라우디오 프란체스키(Claudio Franceschi)는 노화 연구에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염증성 노화(Inflammaging)'다.



프란체스키가 주목한 것은 노인의 몸에서 만성적으로 높아져 있는 염증 수치였다. IL-6, TNF-α, CRP 같은 염증 표지자들이 노인에게서 지속적으로 상승해 있었다. 급성 감염도 없고, 특별한 질병도 없는데, 몸 전체가 미약하지만 지속적인 염증 상태에 있었다.



프란체스키는 이것을 노화 자체의 특성으로 제안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은 만성적인 저등급 염증 상태로 이행한다. 이것은 열이 나거나 아픈 것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조직을 서서히 손상시킨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첫째, 노화된 세포들이 염증성 물질을 분비한다. 분열을 멈춘 노화 세포(senescent cell)는 죽지 않고 남아서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내보낸다. 이것을 '노화 관련 분비 표현형(SASP)'이라 한다.



둘째, 장 투과성이 증가한다. 나이가 들면 장 점막의 기능이 떨어져, 장내 세균의 부산물이 혈류로 더 많이 들어온다. 이것이 면역 반응을 자극한다.



셋째, 면역 조절 능력이 감소한다. 젊은 면역 체계는 염증을 일으켰다가 적절히 '끄는' 능력이 있다. 노화된 면역 체계는 이 조절 능력이 떨어져, 염증이 꺼지지 않고 지속된다.



염증성 노화의 결과



만성 염증은 단순히 불편한 것이 아니다. 노화 관련 주요 질환들의 공통 기반이 된다.



심혈관 질환: 만성 염증은 혈관 벽을 손상시키고, 동맥경화를 촉진한다.



당뇨: 염증은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한다.



알츠하이머병: 뇌의 만성 염증이 신경 퇴행과 연관된다.



암: 만성 염증 환경은 암세포 성장에 유리하다.



근감소증: 염증성 사이토카인은 근육 분해를 촉진한다.



프란체스키의 통찰은 이 다양한 노화 관련 질환들이 사실은 같은 뿌리—만성 염증—를 공유한다는 것이었다. 개별 질환을 따로 치료하는 대신, 기저의 염증을 다스리면 여러 질환을 동시에 예방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편집실에 쌓인 필름



영화 편집실을 상상해보자. 수십 년간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필름이 쌓인다. 과거 작품의 필름들, 사용하지 않은 장면들, 아웃테이크들. 처음에는 정리가 되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편집실이 점점 복잡해진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려 해도, 과거의 필름들 사이에서 필요한 것을 찾기가 어렵다. 작업 공간이 좁아지고, 효율이 떨어진다. 게다가 오래된 필름들이 산화되면서 불쾌한 화학물질을 내뿜는다. 편집실 공기가 탁해진다.



면역 체계도 비슷하다. 오래 살수록 과거의 '기록'이 쌓인다. 새로운 작업에 쓸 공간과 자원이 줄어든다. 노화된 세포들이 염증성 물질을 내뿜으며 전체 환경을 악화시킨다.



오래 살아온 증거



그러나 다른 관점도 있다. 면역 체계에 축적된 기억은 우리가 수많은 도전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수두, 청소년기의 독감, 성인기의 수많은 감기들. 매번 면역 체계는 싸워 이겼고, 그 승리의 기록이 남았다. 기억 세포 하나하나가 이겨낸 전투의 훈장이다.



만성 염증도 역설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면역 체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완전히 침묵하는 것보다는, 과잉 반응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 물론 조절이 필요하지만, 아예 반응하지 않는 것보다는.



프란체스키 자신도 이 점을 인정했다. 염증성 노화는 문제지만, 동시에 장수한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100세까지 사는 사람도 염증성 노화를 겪는다. 다만 그것과 공존하는 법을 찾았을 뿐이다.



염증과 함께 살아가기



염증성 노화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관리할 수는 있다.



지중해식 식단,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관리는 염증 수치를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적 연결과 목적 의식도 염증 감소와 연관된다.



흥미롭게도, 오메가-3 지방산, 폴리페놀, 커큐민 같은 식품 성분들이 항염증 효과를 보인다. 이것들은 알약으로 먹는 것보다 음식에서 자연스럽게 섭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향이 있다.



면역 체계의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그 속도와 양상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젊은 면역 체계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노화된 면역 체계와 현명하게 공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다음 화에서는 호르몬의 변화에 대해 알아본다. 갱년기를 넘어, 우리 몸의 화학적 메신저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탐구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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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olich-Žugich, J. (2018). The twilight of immunity: emerging concepts in aging of the immune system. *Nature Immunology, 19*(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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