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유전자의 프로그램

DNA에 새겨진 생물학적 나이

by 타자


동창회에 가면 신기한 경험을 한다.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인데, 어떤 친구는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어떤 친구는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늙어 보인다. 같은 50세인데 어떤 사람은 40대처럼 보이고, 어떤 사람은 60대처럼 보인다.



달력이 말해주는 나이와 몸이 말해주는 나이가 다르다. 우리는 이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 과학은 이 '생물학적 나이'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비밀은 DNA 위에 새겨진 화학적 표지에 있다.



유전자 위의 스위치들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같은 DNA를 가지고 있다. 심장 세포도, 뇌 세포도, 피부 세포도 동일한 유전자 세트를 품고 있다. 그런데 왜 이들은 완전히 다른 세포가 되었을까?



답은 '후성유전학(epigenetics)'에 있다. 후성유전학은 DNA 서열의 변화 없이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는 현상을 연구한다. 비유하자면, DNA가 악보라면 후성유전학적 표지는 악보 위에 적힌 연주 지시다. 같은 음표도 '세게', '여리게', '천천히' 등의 지시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악이 된다.



가장 중요한 후성유전학적 메커니즘 중 하나가 'DNA 메틸화(methylation)'다. DNA의 특정 부위(주로 사이토신이라는 염기)에 메틸기(-CH3)라는 작은 화학 그룹이 붙는 현상이다. 메틸기가 붙으면 대개 그 유전자는 '꺼진다'. 메틸기가 없으면 유전자는 '켜진다'.



세포가 분화하면서, 필요한 유전자는 켜지고 불필요한 유전자는 꺼진다. 심장 세포에서는 심장 관련 유전자가 켜지고, 뇌 세포에서는 뇌 관련 유전자가 켜진다. 이 패턴이 세포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노화의 서명



흥미로운 것은 DNA 메틸화 패턴이 나이에 따라 체계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부위에서는 메틸화가 증가하고, 어떤 부위에서는 감소한다. 이 변화는 무작위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패턴을 따른다.



2013년, UCLA의 유전학자 스티브 호바스(Steve Horvath)는 획기적인 발견을 발표했다. 그는 353개의 특정 DNA 메틸화 부위를 분석하면 개인의 생물학적 나이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호바스 시계(Horvath Clock)' 또는 '후성유전학적 시계'다.



호바스 시계의 정확도는 놀라웠다. 실제 나이와 평균 3.6년 오차 범위 내에서 생물학적 나이를 예측했다. 혈액, 타액, 뇌 조직, 간 등 어떤 조직에서든 작동했다. DNA 메틸화 패턴만 분석하면, 그 사람이 대략 몇 살인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달력 나이와 생물학적 나이의 괴리



진정한 발견은 그다음이었다. 호바스 시계가 예측한 '생물학적 나이'와 실제 '달력 나이'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어떤 사람은 달력 나이보다 생물학적으로 젊고, 어떤 사람은 더 늙어 있다.



그리고 이 차이가 중요했다. 생물학적 나이가 달력 나이보다 높은 사람(후성유전학적으로 '가속 노화'된 사람)은 심혈관 질환, 암,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이 더 높았다. 같은 65세라도 생물학적으로 70세인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60세인 사람보다 건강 문제를 겪을 확률이 높았다.



더 나아가, 2019년 호바스와 동료들은 'GrimAge'라는 2세대 시계를 개발했다. 이 시계는 남은 수명까지 예측할 수 있었다. GrimAge가 높은 사람은 실제로 더 일찍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 DNA 메틸화 패턴이 노화뿐 아니라 사망의 지표가 된 것이다.



시계를 늦출 수 있을까



후성유전학적 나이는 고정된 것일까, 아니면 바꿀 수 있을까?



연구들은 희망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생활습관이 후성유전학적 나이에 영향을 미친다.



비만은 후성유전학적 노화를 가속화한다. 체질량지수(BMI)가 높을수록 생물학적 나이가 달력 나이보다 높은 경향이 있다. 반대로, 건강한 체중을 유지하면 후성유전학적 나이가 느리게 진행된다.



운동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사람은 같은 나이의 비활동적인 사람보다 후성유전학적으로 젊은 경향이 있다.



흡연은 후성유전학적 노화를 확실히 가속화한다. 흡연자의 DNA 메틸화 패턴은 비흡연자보다 더 '늙어' 있다. 다행히 금연하면 이 효과가 일부 역전된다.



교육 수준과 사회경제적 지위도 관련이 있다.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경제적 조건이 좋은 사람일수록 후성유전학적으로 젊은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만성 스트레스, 의료 접근성, 생활환경 등 여러 요인의 복합적 결과일 것이다.



같은 원본, 다른 편집



영화 편집실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같은 원본 필름도 편집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된다. 어떤 장면을 살리고, 어떤 장면을 자르고, 어떤 순서로 배열하느냐에 따라 코미디가 되기도 하고 비극이 되기도 한다.



DNA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원본 필름이다. 그러나 후성유전학적 표지는 그 필름을 어떻게 '편집'할지 결정한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도, 어떤 유전자를 켜고 끄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노화 궤적을 그릴 수 있다.



유전자는 대본이다. 그러나 대본 자체가 연극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연출, 연기, 무대 디자인에 따라 같은 대본도 다른 작품이 된다. 후성유전학은 우리에게 연출의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생물학적 나이 측정의 의미



후성유전학적 시계의 발견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노화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노화를 평가하려면 여러 가지 생체 지표를 종합해야 했다. 이제는 DNA 메틸화 하나로 통합적인 노화 지표를 얻을 수 있다.



둘째, 노화 개입의 효과를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특정 약물이나 생활습관 변화가 노화를 늦추는지 확인하려면 수십 년을 기다려야 했다. 이제는 후성유전학적 나이 변화를 추적하여 단기간에 효과를 평가할 수 있다.



셋째, 개인 맞춤형 건강 관리의 가능성이 열린다. 같은 달력 나이라도 생물학적 나이가 다르다면, 건강 관리 전략도 달라야 한다. 후성유전학적 나이 측정은 개인에게 맞춤화된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유전자의 민주주의



후성유전학의 가장 고무적인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는 유전자의 노예가 아니다.



유전자는 중요하다. 장수 유전자를 가진 가계는 실제로 더 오래 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전자가 운명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후성유전학적 패턴은 환경, 생활습관, 경험에 의해 영향받는다. 우리의 선택이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노화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50세에 생물학적으로 60세인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생활습관의 변화를 통해 후성유전학적 나이를 늦출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유전적으로 장수 가계 출신이라도 나쁜 생활습관은 후성유전학적 노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



유전자는 대본을 제공하지만, 어떻게 연기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것이 후성유전학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다.



다음 화에서는 또 다른 노화의 메커니즘, 면역 체계의 변화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 몸의 방어군이 어떻게 늙어가는지, 그리고 '염증성 노화'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참고문헌



Horvath, S. (2013). DNA methylation age of human tissues and cell types. *Genome Biology, 14*(10), R115.



Horvath, S., & Raj, K. (2018). DNA methylation-based biomarkers and the epigenetic clock theory of ageing. *Nature Reviews Genetics, 19*(6), 371-384.



Lu, A. T., Quach, A., Wilson, J. G., Reiner, A. P., Aviv, A., Raj, K., ... & Horvath, S. (2019). DNA methylation GrimAge strongly predicts lifespan and healthspan. *Aging, 11*(2), 303-327.



Hannum, G., Guinney, J., Zhao, L., Zhang, L., Hughes, G., Sadda, S., ... & Zhang, K. (2013). Genome-wide methylation profiles reveal quantitative views of human aging rates. *Molecular Cell, 49*(2), 359-367.



Feil, R., & Fraga, M. F. (2012). Epigenetics and the environment: emerging patterns and implications. *Nature Reviews Genetics, 13*(2), 97-109.


이전 05화5화: 산화라는 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