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하기에 아름다운 것들
만약 영화가 끝나지 않는다면 어떨까?
처음에는 좋을 것 같다. 좋아하는 캐릭터와 계속 함께할 수 있으니까. 스토리가 영원히 이어지니까.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해진다. 긴장감이 사라질 것이다. 클라이맥스가 의미 없어질 것이다. "어차피 계속되니까"라는 생각 앞에서 어떤 선택도 무게를 잃을 것이다.
영화에 러닝타임이 있는 이유가 있다. 끝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생긴다.
1980년대, 세 명의 사회심리학자—셸던 솔로몬(Sheldon Solomon), 제프 그린버그(Jeff Greenberg), 톰 피스진스키(Tom Pyszczynski)—가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 TMT)'을 제안했다.
이론의 출발점은 이것이다. 인간은 유일하게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는 동물이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존재가 끝난다는 것을 안다. 이 인식은 잠재적으로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TMT에 따르면, 인간 문화의 많은 부분이 이 '존재론적 공포'를 관리하기 위해 발달했다. 종교, 이데올로기, 문화적 세계관은 죽음 너머의 의미나 영속성을 제공한다. 자존감 추구도 같은 기능을 한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이 죽음 불안을 완충한다.
TMT를 검증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수백 개의 '죽음 현저성(mortality salience)' 실험을 수행했다.
전형적인 실험은 이렇다. 참가자 절반에게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당신이 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적어보세요." 나머지 절반에게는 중립적인 주제(치과 방문 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 후 다양한 과제를 수행하게 한다.
결과는 일관적이었다. 죽음을 상기한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적 세계관을 더 강하게 지지했다
자신의 가치관에 동의하는 사람을 더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는 사람을 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자존감을 높이는 활동에 더 몰두했다
죽음 인식이 인간 행동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역설이 있다. 죽음 인식이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2012년의 메타분석은 '죽음이 삶에 좋을 때(When Death is Good for Life)'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연구자들은 죽음 인식이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조건을 탐구했다.
죽음을 깊이 성찰할 때(피상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내재적 목표(관계, 성장, 의미)를 더 추구했다
외재적 목표(돈, 명성, 외모)를 덜 추구했다
건강 행동을 더 많이 했다
가까운 관계에 더 투자했다
죽음 인식이 "그러니까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해보자"로 이어진 것이다.
경제학에서 희소성이 가치를 만든다. 다이아몬드가 비싼 것은 희귀하기 때문이다. 물이 다이아몬드보다 유용하지만, 풍부하기 때문에 싸다.
시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시간이 무한하다면, 시간의 가치는 0에 가까워질 것이다. "나중에 하면 되지"가 영원히 가능하다면, 지금 할 이유가 없다.
시간이 유한하기 때문에, 각 순간이 가치를 갖는다.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이 무게를 갖는다. 끝이 있기 때문에 시작과 중간이 의미를 갖는다.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는 이것을 '죽음을 향한 존재(Being-toward-death)'라고 불렀다. 죽음을 진정으로 인식할 때 삶이 진정으로 시작된다고 했다. 죽음을 외면하고 사는 것은 '비본래적' 존재이고, 죽음을 직시하며 사는 것이 '본래적' 존재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구조를 만든다. 2시간이라는 제한 안에서 스토리가 압축되고, 긴장이 형성되고, 감정이 쌓였다가 해소된다.
러닝타임이 없다면 이 구조가 없다. 언제 긴장하고 언제 이완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클라이맥스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진다. 모든 것이 평평하고 끝없이 이어진다.
삶의 유한성도 비슷한 구조를 만든다. 인생에 장(章)이 있다—어린 시절, 청년기, 중년, 노년. 각 장에 특유의 과제와 의미가 있다. 끝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장이 의미를 갖는다.
상상해보자. 의학이 발전하여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환상적일 것이다. 모든 것을 할 시간이 있다. 모든 곳을 갈 수 있다.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많은 철학자와 작가들이 이 질문을 탐구했다. 보르헤스의 소설 '불멸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모든 인간은 죽는다' 등.
공통적으로 그리는 것은 권태다. 모든 것을 이미 했다. 새로운 것이 없다. 관계도 의미가 희석된다. 영원히 함께할 수 있으니 지금 이 만남이 특별하지 않다. 선택도 의미가 없다. 잘못된 선택을 해도 언제든 번복할 시간이 있으니.
역설적으로, 무한한 시간이 시간의 가치를 파괴한다.
노인들이 젊은이보다 죽음 불안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역설적으로 들린다. 죽음이 더 가까운 사람이 덜 두려워한다니.
TMT 연구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노인들은 죽음과 더 많이 대면해왔다. 부모, 친구, 배우자의 죽음을 경험했다. 이 경험이 죽음에 대한 심리적 방어를 발달시켰다.
또한 삶의 통합과 관련이 있다. 자신의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죽음 앞에서 더 평온하다. "내 삶이 가치 있었다"는 느낌이 죽음의 공포를 완화한다.
영화의 마지막 30분이 다가올수록 매 장면이 소중해진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 모든 장면이 의미를 가져야 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끝이 다가올수록 각 순간의 무게가 달라진다. "나중에"가 없어지면 "지금"이 빛난다.
이것이 노화가 주는 역설적 선물일 수 있다.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슬프다. 그러나 줄어든 시간이 남은 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든다. 한계가 의미를 만든다. 끝이 있기에 지금이 빛난다.
러닝타임이 있어야 영화가 영화가 되듯, 유한성이 있어야 삶이 삶이 된다. 이것이 러닝타임의 의미다.
다음 화에서는 삶의 마지막 편집, 자아 통합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든 조각을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Solomon, S., Greenberg, J., & Pyszczynski, T. (1991). A terror management theory of social behavior: The psychological functions of self-esteem and cultural worldviews.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24*, 93-159.
Pyszczynski, T., Greenberg, J., & Solomon, S. (1999). A dual-process model of defense against conscious and unconscious death-related thoughts: An extension of terror management theory. *Psychological Review, 106*(4), 835-845.
Vail, K. E., Juhl, J., Arndt, J., Vess, M., Routledge, C., & Rutjens, B. T. (2012). When death is good for life: Considering the positive trajectories of terror management.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16*(4), 303-329.
Cozzolino, P. J. (2006). Death contemplation, growth, and defense: Converging evidence of dual-existential systems? *Psychological Inquiry, 17*(4), 278-287.
Heidegger, M. (1927/1962). *Being and Time*. Harper & 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