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 33)
조지아 바로 밑에 붙어있는 플로리다 주로 가 보겠습니다. 미국의 서부는 태평양(Pacific Ocean)에 붙어있고, 동부는 대서양(Atlantic Ocean)과 붙어있죠. 근데 미국 동남부에 멕시코와 쿠바에 둘러싸인 지역을 멕시코 만(Gulf of Mexico)라고 해서 제3의 해안이라고도 합니다. 멕시코 만이 좀 찌그러지긴 했지만 동그란 원형이라고 하면, 원의 오른쪽 아래에 있는 쿠바를 기준으로, 쿠바와 그 위의 플로리다 사이로 대서양과 연결이 되고, 쿠바와 그 아래의 멕시코의 칸쿤을 사이로 카리브해와 연결이 됩니다. 왼쪽 절반까지는 멕시코, 그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그리고 플로리다의 툭 튀어나온 반도로 막혀있는 셈입니다.
플로리다는 17만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으로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면적(22만 제곱킬로미터)보다 좀 작고, 인구는 2020년 조사 기준으로 2천1백54만 명으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입니다. 순수한 백인이 53%, 히스패닉(혹은 라티노)이 26%, 흑인이 17%로 조사되었습니다.
히스패닉(Hispanic)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히스패니쿠스(Hispanicus)”에서 온 말로, 로마 시절에 “히스파니아(Hispania)” 출신의 사람, 즉 지금의 이베리아(Iberia) 반도에서 온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베리아 반도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있고, 스페인(Spain), 스페니쉬(Spanish), 스페냐드(Spaniard)라는 말도 결국은 히스패니쿠스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몰락한 로마의 장군 막시무스가 중동 지방에 노예로 팔려가 검투사로 활약할 때 다른 사람들이 막시무스를 “스페냐드”라고 불렀죠. 막시무스가 실제 그쪽 출신일 수도 있고, 아니면 중동 사람과 다른 서유럽 사람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른 것일 수도 있겠네요.
라티노(Latino)는 남성형 단어이고, 여성형 단어인 “Latina”나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Latin America) 출신의 미국 사람들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남미라고 부르는 것은 지리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나눌 때 파나마 운하를 기준으로 위쪽은 북미 (North America), 아래쪽은 남미(South America)라고 합니다. 반면에 라틴 아메리카는 문화적으로 앵글로(Anglo) 아메리카와 대비되는 기준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은 잘 아시다시피 유럽의 식민 지배를 통해서 서구에 알려진 곳인데요, 이 중에 영국의 문화적 영향을 받은 곳을 앵글로 아메리카라고 해서,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카리브 지방의 바베이도스, 바하마,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토바고 등이 포함됩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북미 대륙의 멕시코를 포함해서 로망스 어군, 즉 라틴어에서 유래한 유럽 언어를 쓰는 나라들(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의 영향을 받은 지역을 말합니다. 대부분이 스페인어를 쓰지만 브라질은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입니다. 제가 전에 일하던 회사에는 루마니아에 연구소가 크게 있어서 가끔 출장을 가곤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루마니아 사람들은, 같은 라틴어 계통의 언어들, 즉 이태리어나 스페인어, 프랑스어 들은 대충 60% 정도 이상은 기본적으로 통한다고 하네요.
미국 인구 조사국에서는 히스패닉과 라티노를 같은 명칭으로 취급하는데, 인종(race)이 아닌 민족(ethnicity)의 개념으로 봅니다.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에 원래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 혹은 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에서 식민지 개척을 통해 들어온 백인, 그리고 독일이나 폴란드에서 넘어온 농업이민, 노예로 팔려온 흑인, 그리고 이 모든 인종의 혼혈이 스스로를 히스패닉(혹은 라티노)라고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단일 민족으로 쭉 이어온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혈통 조사를 해 보면 생긴 것만 봐서는 예측이 되지 않는 피가 많이 섞여 있기도 합니다.
플로리다는 미 대륙에서 가장 먼저 유럽인들에게 발견된 곳입니다. 1513년에 스페인의 후안 폰세 데 레온(Juan Ponce de Leon)이 플로리다 반도를 발견해서, 마침 부활절 시즌의 스페인 축제인 Pascua Florida (Festival of Flowers)의 이름을 따서 플로리다(La Florida)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죠. 유럽에서 벌어진 7년 전쟁(1756 ~ 1763)이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의 식민지 쟁탈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이후에 스페인이 영국에게 빼앗긴 쿠바나 필리핀의 영국 점령지를 돌려받는 대신에 플로리다를 영국에 넘겨주게 됩니다. 이후에 미국이 영국과의 독립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때 미국 편을 들어준 스페인이 플로리다를 되찾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에 노예 문제, 그리고 원주민인 세미놀 족과의 투쟁에서 스페인이 이 지역을 통제하지 못하자 결국 미국이 플로리다의 서부지역을 병합하고, 결국 스페인은 1821년에 500만 달러를 받고 플로리다를 미국에 넘겨주게 됩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플로리다는 그렇게 인구가 많은 주가 아니었습니다. 1860년에 플로리다에는 14만 명의 인구가 있었는데 그중 44%가 노예들이고, 독립전쟁 전까지 플로리다에는 노예가 아닌 흑인의 인구가 천명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1900년에는 인구가 53만 명이었고 그중에 흑인 인구가 거의 절반이었습니다. 1920년에 97만 명, 1940년에도 1백9십만 명으로 여전히 2백만 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로 옆의 조지아 주와 비교해보면, 여기는 이미 1860년에 백만 명이 넘었고, 1900년에는 2백2십만 명, 1920년 2백9십만 명, 1940년에는 3백십만 명으로 나옵니다.
남부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주였던 플로리다는, 20세기 중반이 되면서 저렴한 물가와 따뜻한 기후, 그리고 에어컨의 보급이 늘어나면서 북동부나 중부의 다른 주에서의 인구 유입이 늘어나고,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 정권을 피해서 쿠바에서 넘어온 이민 인구들이 더해지면서 1950년대부터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일어납니다. 1950년에 2백8십만 명, 1960년에 거의 5백만 명, 1970년에 6백8십만 명, 1980년에 9백7십만 명, 1990년에 1천3백만 명, 2000년에 1천6백만 명, 2010년에 1천9백만 명에 이어서 결국 2020년의 인구 조사에서 거의 2천2백만 명의 주민이 있는 것으로 나와서 남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가 된 것이죠.
플로리다는 미국 정치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는 경합주이기도 합니다. 인구 1위로 미 대선에서 55명의 가장 많은 선거인단 수를 갖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민주당 우세, 38명으로 두 번째로 많은 텍사스는 공화당 우세인데, 플로리다는 29명의 선거인단으로 세 번째로 많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주입니다. 대표적으로 2000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 사이에 표차가 수백표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재검표까지 가는 상황에서 대법원의 판결로 더 이상의 재검표는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부시가 대통령으로 확정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당시 플로리다에서는 나비형 투표용지(Butterfly Ballot)이라고 해서 대통령 후보자의 이름이 양쪽으로 나열되어있고, 그 사이에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 옆에 구멍을 뚫는 식의 희한한 투표용지로, 헷갈리지 않는 제일 첫 칸을 받은 조지 부시에 비해서 헷갈리는 세 번째 칸을 받은 앨 고어가, 실수로 잃은 표만 제대로 받았어도 선거 결과가 바뀔 거라는 말이 있었고, 나중에 학자들과 미디어에서 17만 표를 표본으로 재검표를 해 봤고 이 결과를 갖고 전체 재검표를 했으면 결과가 뒤집혔을 거라는 예측이 나왔죠.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투표 기반의 대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술한 시스템 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플로리다는 그 후, 2008년에는 민주당의 오바마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2.82%의 근소한 차이였고, 2012년에도 오바마의 손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차이가 0.88%로 줄어들었습니다. 2016년의 선거에서는 1.2%의 차이로 트럼프가 선거인단을 가져갔고, 가장 최근의 2020년의 대선에서는 그 차이가 더 커져서 3.36%의 차이로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은 전부 공화당이 차지하고 있고, 연방 하원도 공화당이 16석, 민주당이 11석으로, 경합 주라기보다는 이제는 공화당 우세 주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습니다.
전체 투표 인구 가운데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층인 흑인(17%)과 히스패닉(24%)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공화당 우세로 기우는 것은, 북부 지역의 백인 농민들이야 원래 공화당 지지층이지만, 의외로 히스패닉들 사이에서도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남미나 쿠바 출신의 이민자가 많은 곳에서, 가장 반 이민적인 정책을 펼치는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것이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민주당이 쿠바와의 화해 정책을 펼치면서, 쿠바의 공산 정권을 탈출한 이민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고, 또 일부 진보적인 민주당 의원들이 남미의 사회주의 정권에 우호적인 발언을 해서 그쪽 출신 이민자들의 표를 잃은 것도 있고 뭐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저랑 전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친한 동료는 홍콩 출신의 미국 이민자인데 아주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입니다. 저는 처음에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본인도 이민자 출신이고, 특히나 중국을 못 잡아먹어 안달하는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것이요. 그런데, 사실 이 친구에게는 중국 정권이 제일 밉고, 그래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면에서 보니까 이해가 가더군요. 정치라는 것은, 참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이 있어서 절대로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해석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플로리다 주의 모양이 기억자 모양인데 인구 밀도를 보면 위쪽 대륙에 붙어있는 곳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고, 반도로 내려오면서, 대서양과 붙어있는 동해안 그리고 멕시코 만과 붙어있는 서해안 그리고 남해안 끄트머리 쪽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플로리다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인 잭슨 빌은 기억자가 수평에서 수직으로 꺾이는 모서리 가장 끝에서 대서양에 붙어있는 도시입니다. 인구는 95만 명인데, 도시의 면적이 1,935 제곱 킬로미터로, 알래스카를 제외하고 미 본토에 있는 도시 가운데 가장 큰 곳입니다. 서울시가 605 제곱킬로미터이니 그것보다 세배에 달하는 크기입니다. 세인트 존스 강과 대서양에 면해있어서 특히 잭슨빌 항을 통한 자동차 수입 및 운송, 물류 관련 비즈니스가 발달했습니다.
플로리다 제2의 도시는 그 유명한 마이애미입니다. 명성에 비해서 인구는 44만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만, 미국에서 세 번째로 높은 스카이라인을 지니고 있습니다. 기준은 500피트(152미터)가 넘는 고층 건물의 숫자인데, 294개를 갖고 있는 뉴욕 시티가 압도적인 1등이고, 125개를 갖고 있는 시카고에 이어서, 마이애미는 59개의 고층 빌딩으로 3위를 차지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 대도시가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데, 공화당 시장을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도시로, 쿠바나 베네수엘라계 히스패닉들의 반공 성향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2002년의 CSI: 마이애미 시리즈로 유명하지만,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한 형사물의 원조는 1984년부터 방영된 마이애미 바이스(Miami Vice)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름 휴양지이긴 하지만, 워낙 마약 관련 문제도 많고, 우범 지대도 있어서 아주 안전하지만은 않은 곳입니다.
그 외에도 인구 38만 명의 탬파, 30만 명의 올랜도 등이 유명합니다. 마이애미의 경우에는 1월 평균 기존이 20도 정도이고, 8월 평균 기온이 최고 33도, 최저 25도 정도라서 일 년 내내 해수욕이 가능합니다. 잭슨빌이나 텔러하시는 1월에 최저 기온이 6도에서 4도까지 내려가기는 합니다. 플로리다의 별명이 선샤인 주이긴 하지만 번개가 많이 치는 것으로 유명하고, 평균 강우량도 가장 높은 곳 중의 하나입니다. 6월에서 11월까지는 허리케인의 피해도 많이 받는 주입니다. 플로리다에는 한인 인구가 5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탬파에 1만 5천 명 정도로 가장 많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