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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Feb 07. 2020

외국 회사 면접

단 한 번의 특별한 경험

2주 전에 이곳 샌디에이고 근처의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었습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보낸 것은 아니고, 지인 추천으로 딱 한 군데 면접을 봤는데, 그 회사 인사부에서 수요일 아침 10시 반까지 사무실로 오라고 연락이 오더군요. 원래 이쪽 지역에 사무실이 없었는데, 이번에 소프트웨어 관련 비즈니스를 확장하고자 인력을 충원하느라 새로이 사무실을 얻어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좀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담당 부서 부사장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조그만 회의실에 들어가서 마주 앉게 되었습니다.


면접 보러 가기 전에 꽤 긴장을 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22년간 다니던 회사를 관두게 되고 나서 (https://brunch.co.kr/@tystory/4) 이제부터 어떤 일을 하면서 지낼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 아직 확신이 없던 상황에서, 소식을 들은 옛날 보스의 요청으로 이력서를 보냈고, 한 열흘 정도 후에 인터뷰 약속이 잡힌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인력서를 잘 가다듬지도 않았고, 당연히 인터뷰를 어떻게 해야 하겠다는 준비도 부족했었죠.


막상 인터뷰 날짜가 잡히고 나서 며칠 동안 인터넷을 검색해봤는데 특별히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외국 회사에서 면접을 보는 것에 대한 내용들이고, 특히 한국 사람들 관련 동영상을 보면 거의 엔지니어 포지션에 지원한 사람들 이야기라, 제가 지원하는 분야와는 좀 달라서 참고할 내용이 그렇게 많지는 않더군요. 그리고, 이 회사에 대해서 대충만 알지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제가 지원한 분야의 타이틀만 봐서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업무 내용이나 이런 것보다, 제 포지션의 성격상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부분일 텐데, 제가 어설픈 영어로 버벅거려서, 제 다른 경력이나 장점보다도 그런 부분에서 결격 사유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좀 긴장을 했던 거죠.


그쪽 사무실까지 집에서 차로 대략 30분 정도 걸렸는데, 가는 동안 껌을 열심히 씹으면서 긴장을 풀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특히 스스로에게 '서둘지 말고 천천히 여유 있게 말하자'라고 여러 번 당부를 했습니다. 경험상, 긴장을 하면 말이 빨라지고, 말이 빨라지면 발음이 나빠지고, 그러면서 알고 있던 단어도 잘 생각이 나지 않고 그런 것을 잘 알거든요. 다음번에 다른 글에서 한번 쓰겠지만, 그래서 회사 업무 하면서 외국 친구들이랑 말다툼할 때 정말 고생을 많이 했었지요.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에서 제가 얼마나 영어를 버벅거리는 지도 잘 알고요. 하여튼 그렇게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회의실에 그쪽의 담당 부사장과 둘이 앉게 되었습니다.


패트릭이라는 디트로이트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서로 나이 같은 것은 묻지 않았습니다만 하여튼 저보다는 한참 어려 보이는 친구였는데, 노트북을 열고 제 이력서를 읽는 것 같더군요. 저도 한때 면접 많이 해 봐서 아는데, 사실 바쁜 업무 와중에 정말 정성 들여서 면접 준비하는 사람들 많지 않거든요. 물론 우리 회사에 맞는 사람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접수된 이력서들을 쭉 읽어보고 인사부에 의견을 보내기는 합니다만, 그러고 나면 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막상 시간이 지난 후에 인터뷰 잡히면, 그 인터뷰 장소에서 바로 이력서를 열어서 읽어보면서 질문을 하곤 했었거든요. 면접 보는 사람이 한두 사람도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고, 자기 일들이 다들 많아서 그런 부분도 있고요.


그렇게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길래, 나름 분위기를 만들려고 스몰 토크를 시도했습니다. '내가 20여 년 만에 처음 이력서를 써 보느라 전체적으로 좀 부실할 테니 이해해 달라'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 친구도 웃으면서 '나는 이력서의 형식에는 별 관심이 없고 내용만 읽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요.' 그렇게 해서 이야기가 시작됐고, 제가 전 회사에서 해 왔던 업무에 대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질문이 훅 들어오더군요. '전 직장에서 왜 본인이 레이오프 대상이 된 것 같냐?' 전혀 예상을 못한 질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답변을 준비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회사의 비즈니스가 생각보다 성장이 더디고, 그래서 투자를 좀 줄여야 하는데, 내가 맡고 있던 포지션이 비즈니스 개발 관련 업무라서, 현장에서 실무를 하는 영업 담당자나 엔지니어들에 비해서 오버헤드라고 생각을 한 것 같다.'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노트에 잠깐 뭘 적더니 다음 대화로 넘어갔습니다. 


꽤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인데, 질문을 하는데 전혀 망설임이나 감정적인 부분이 없고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묻더군요. 저도 침착하게 답변을 했고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주변의 친구들한테 많이 들은 이야기가, 미국 회사에서는 레이오프가 워낙 일상적인 일이라서 부끄러워하거나 감출 필요 없고, 다른 회사들도 다 그렇게 레이오프를 해서 새로운 잡 포지션을 만들고 사람을 교체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하므로 크게 상심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제가 당한 일이 전혀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룰 일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솔직히 밝히고 조언도 구하고, 이미 지난 일은 흘려보내고 앞으로의 일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 질문 이후에 또 한동안 소프트웨어 관련 기술이나 자동차 업계 동향이나 이런 이야기를 잘하다가, 한번 더 위기가 왔습니다. 아마 제가 지원한 포지션에서 프로젝트 관리에 관한 실무를 많이 하게 될 것 같았나 봅니다. 저의 프로젝트 관리 실무 경험을 묻더군요. 그런데 저는 필드 엔지니어와 기술 영업을 하다가 한국 개발팀을 맡게되면서, 프로젝트 매니저들을 관리하고 간접적으로 프로젝트의 일정이나 리소스, 손익이나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등을 맡았었지 제가 직접 실무를 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솔직하게, '내가 직접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을 한 적은 없지만 프로젝트 매니저들을 관리하면서 프로젝트 관리의 중요한 포인트들은 파악을 하고 있다. 만약에 업무에 필요한 스킬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의 면접이 끝나갈 무렵에, 받고 싶은 연봉 수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래서 전 회사에서 받던 연봉을 이야기했더니, 이 회사는 좀 분위기가 달라서 스톡옵션도 없고 프로그램 매니저 포지션에는 특별히 성과급이나 보너스도 없는 구조라고 설명을 해 주더군요. 그래서 그냥 알았다고 하고 넘어갔습니다. 사실 제가 인터넷에서 봤던 면접 요령 가운데 한 가지가 연봉 협상에 관한 것인데, 본인이 원하는 연봉을 먼저 밝히지 말고 그쪽에서 얼마나 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그 외에 각종 다른 혜택이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협상을 하라고 하던데, 막상 얼마나 현실적인 조언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제가 스킬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하여튼 저는 그냥 제가 원하는 금액을 이야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열흘 정도 아무런 연락이 없길래 저는 사실 안된 줄 알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두 가지 원인은, 그쪽에서 원하는 실무 경험이 없는 지원자라는 점, 그리고 그 포지션에 비해서 제가 좀 오버 스펙이라 아마도 연봉 수준이 좀 맞지 않았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래서 더 이상의 구직 활동은 하지 않고, 제가 회사 관두게 되면서 생각했던 또 다른 옵션, 즉 창업 쪽으로 더 집중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난 금요일에 이메일로 잡 오퍼가 오더군요. 연봉은 제가 전에 받던 것보다는 좀 적지만 그래도 최대한 맞춰주려고 노력한 것이 느껴질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제가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걱정이 되었던 의료보험 부분이 해결이 된다는 것과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이 된다는 부분이 컸죠. 저희 집사람이야 당연히 제가 이 회사를 가기를 원했고, 주변 친구나 형님들과 의논을 많이 했는데, 다들 일단 잡 오퍼를 받았음을 감사하게 여기고, 취직을 해서 경제 활동을 계속하면서 추후 계획을 짜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10명 넘게 물어봤는데 딱 1.5명 (한 친구는 찬성과 반대 중간 의견이라...)이 창업을 추천하더군요.


주말 동안 고민하고 월요일 밤에 서류들에 사인해서 그쪽 회사에 보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 넘어올 때는 회사 내부의 인사이동이라 그랬는지 이 정도까지 서류 작업이 많지 않았던 기억이고, 오히려 이민 관련된 다른 서류들이 준비할 것이 많았는데, 지금은 영주권도 있어서 신분 문제는 없고 순수하게 회사 취직에 관한 서류인데도 양이 엄청 많더군요. 그리고 약물 검사에 대한 문서와, 실제로 소변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와야 입사가 확정된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거 보니까 이제야 정말로 미국 회사에 취직하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어쨌거나 월요일 밤에 문서 인쇄해서 읽고, 사인하고, 스캔해서 보내고 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거의 새벽 1시에 다 끝내고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제가 했던 이 취업 과정이 일반적인 과정인지 아주 특별한 과정인지 판단을 할 만큼 구직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구글 같은 경우는 6번 이상 면접을 아주 까다롭게 본다고 들었거든요. 근데, 반면에 이 정도 포지션에 내부 임원 추천으로 경력 직원을 뽑는데, 인사부 담당자가 서류 보내라고 한 거 보내고 간단히 통화하고 나서, 그 부서의 부서장이 면접 보고 나서, 결정을 내리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보면, 또 뭐 이렇게 면접 한 번으로 결정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회사에서 제가 참여했던 면접도, 대체로 서류 심사 후 실무 쪽 부서장이 보고 결정을 하는데, 약간 알쏭달쏭하면 다른 사람에게 추가 인터뷰 요청을 하는 정도거든요.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으면 일단 계약직으로 채용해서 업무 성과를 보고 정직원으로 채용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물론 저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부사장급 정도 되는 임원들의 채용 과정은 실무직원 뽑는 것보다 복잡하다고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요.


하여튼 1월 중순의 갑작스러운 레이오프 이후에, 이 회사에 이제 2월 중순부터 출근을 하게 될 테니, 제 짧지 않은 직장생활 가운데 정말로 가장 특별한 한 달을, 뒤늦게 질풍 노노와 같이 보낸 느낌입니다. 뭐 우여곡절 끝에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게 됐지만, 여기서 다시 예전의 생각 없이 시키는 일만 하는 직장 생활로 돌아가서, 제가 이번 일로 배운 그리고 결심한 모든 것들을 허사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지난 25년의 직장 생활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더 즐겁고, 의미 있게, 그리고 진하게 보내는 그런 하루하루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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