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면 전화 통화 피하고 온라인을 선호하는 우리 모두의 고민
미국 와서 3년 남짓 살면서 느낀 건데, 이 나라가 잘 살기는 잘 살지만, 정보통신 분야에 있어서는 정말 한국과 비교를 할 수준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웬만한 일은 인터넷을 통해서 다 해결이 되는데, 여기는 인터넷으로 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아서 불편하게 전화 통화를 할 일이 많고, 심지어 매우 많은 일들이 아직도 실물 우편으로 처리가 되고 있어서, 일주일만 우편함을 비우지 않으면 조그만 우체통이 꽉 찰 정도더군요.
우편으로 일 처리를 하는 거야, 시간 내서 천천히 읽어보고 채우라는 내용 채워서 우체국 가서 보내면 되니까 그렇다 치고, 전화로 하는 일처리는 정말 불편합니다. 예전에도 신용 카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자동 응답 시스템에 전화해서 그쪽 안내에 따라서 몇 번이고 1번 메뉴 눌렀다가 2번 메뉴 눌렀다가 하면서 결국은 해결이 안 돼서 상담원 연결로 넘어가곤 했죠. 요새는 심지어 번호를 누르는 게 아니고, 원하는 업무를 말을 하면 그에 맞춰서 자동 응답 시스템이 다음 메뉴를 알려주는 식이라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 하더라고요.
전화 영어가 어려운 이유는, 다들 잘 아시겠지만, 상대방의 표정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사람이 하는 이야기의 맥락을 얼굴 표정이나 분위기를 보고 짐작할 수 없으니, 정말 순수하게 영어 리스닝 실력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거죠. 게다가 전화 음질이 절대 직접 듣는 소리에 비해서 좋을 수가 없으니, 얼굴 못 보는 핸디캡에 소리도 뭉개지는 상황에서 기를 쓰고 상대방이 하는 소리를 정확하게 알아들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셈입니다.
제가 회사에서 맡은 업무가,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직원들과 하는 일이 많기도 하고, 또 미국이라는 나라가 땅덩어리가 커서, 매우 많은 회의가 전화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미국의 전화 회의 문화를 아주 웃기게 표현한 이 동영상(https://youtu.be/DYu_bGbZiiQ)을 보시면 대략 분위기가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근데 이런 전화 회의에서는 크게 실수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전화 영어가 힘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얼굴과 몸짓을 보지 못하니, 그 대화의 맥락(Context)이나 분위기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잖아요. 근데 회사에서 하는 회의는, 거의 대부분 어떤 내용을 이야기할지 알고 들어오니 그런 부분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되죠. 물론 정말 최소한의 주제만으로 시작해서 자유토론이 된다거나, 심지어는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갑작스레 시작해서 내용을 전혀 모르고 들어가는 전화 회의도 있긴 합니다만, 결국은 회사 업무 이야기이고, 그 안에서 쓰는 용어나 문장들이 내가 파악하고 있는 업무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은 별로 없다는 거죠.
근데 물론 거기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회사의 문화나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대부분 업무 이야기 시작하기 전에 사적인 이야기를 좀 나누면서 워밍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기서는 바짝 긴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디트로이트 쪽 사람 몇 명, 시카고에서 들어온 사람 한 명, 샌프란시스코 몇 명, 그리고 저는 샌디에이고에서 들어간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날씨에 대한 이야기 (이런 것을 Small talk이라고 하더군요)를 한다고 치겠습니다. 이게 겨울이었으니까, 당연히 동부의 추운 날씨로 시작해서 샌프란시스코는 어떻고 샌디에이고는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농담도 하고 뭐 이렇게 하는데요. 디트로이트에 출장이야 다녀봤지만, 그 무렵에 온도가 몇 도 이 면 정상적인 건지 추운 건지, 그때 자동차 관리는 어떻게 하고 집의 보일러는 또 어쩌고 저쩌고, 시카고는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거기는 도대체 날씨가 어떤지, 샌디에이고도 겨울에 추울 때는 새벽에 40도까지도 내려간다고 할 때, 또 어떻게 재미있게 그걸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이런 Small talk가 어려운 이유는 단지 영어가 잘 안 들리는 이유를 떠나서, 미국의 문화가 낯설어서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미국에 와서 3년을 살면서 아직도 적응을 잘 못하는 것이, 이곳의 파티 문화입니다. 저야 주로 비즈니스 리셉션을 겸한 파티에 참석을 몇 번 해 본 정도입니다만, 거기서도 비슷하게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통성명을 하고, 간단히 스몰 토크를 하고, 그리고 서로 비즈니스 이야기 좀 하다가, 적당히 핑계를 대고 다음 자리로 가서 다시 새로운 사람과 그걸 반복하죠. 그러면서, 무슨 경쟁하듯이 그 파티에서 새로운 사람을 얼마나 많이 만나서, 짧은 시간 안에 그 사람에 대해서 파악을 하고, 혹시 서로 도움이 될만한 관계인지 파악하는 거죠.
제가 이런 파티에 처음 갔을 때 제일 불편했던 것이, 의자와 테이블이 별로 없더라는 겁니다. 한 시간 정도만 서서 돌아다녀도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픈데, 아무리 찾아봐도 다들 서서 음식 먹고 술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더라고요. 이제야 좀 이해가 가는 것이, 그런 곳에서는 계속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사람 만나서 이야기하는 자리이니, 의자와 테이블이 별 필요가 없는 거죠. 한국에서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진득이 앉아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서로를 깊이 있게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러다가 2차로 자리를 옮기면 그때야 자리가 좀 섞이면서 다른 사람과 또다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요. 이렇게 새벽에 3차까지 하면, 매 술자리마다 앞이나 좌우에 앉은 몇 명과, 그 사람의 부동산 전세 상황부터 아이들 학교 문제, 좀 더 친해지면 부부 관계의 트러블까지 많은 것을 서로 공유하면서 친해지게 되잖아요.
근데 미국에서는 이렇게 하면 정말로 전형적인 TMI (Too much information)이 되는 것입니다. 남의 사생활에 그렇게 관심도 없고, 본인 사생활도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더라고요. 물론 회사의 동료 관계나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서 좀 더 친해지면 조금씩 속을 열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만,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난 사람끼리 나누는 정도까지 가는데도 한세월 걸리는 것 같습니다. ^^
하여튼 다시 전화 영어의 어려움으로 돌아오면, 결국 이렇게 미국 문화에 대한 경험과 이해 부족이 전화로 하는 영어가 어렵게 느끼지는 주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만, 정말 순수하게 영어가 잘 안 들리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겠지요. 아까 단체로 전화 회의할 때 하는 스몰토크는 그나마 날씨나 스포츠 같이, 저는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맥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근데 일대일로 둘이서 통화할 때는, 그것보다는 좀 더 개인적인 일들로 들어가기에, 더 알아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참 전에 친하게 일하는 미국 직원과 업무 이야기로 통화를 할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이야기가 그 친구가 기르는 개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어요. 근데 처음에 그 친구가 한 이야기를 완전히 알아듣지 못한 상황에서, 'We had to put her down.'이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저는 그 표현을 '개를 (좀 고생해서) 재웠다' 정도로 이해해서 시답지 않은 농담을 했는데, 좀 더 이야기를 해 보니까, 개가 나이가 많고 병이 들어서 힘들어했고, 이런저런 노력을 해도 나아지지 않아서 결국 안락사시켰다'라는 의미였더라구요. 제가 잘못 알아듣고 우스갯소리를 한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사과하느라 진땀을 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제가 배운 교훈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둘 다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막상 실천하기가 쉽지 않아서 아직도 고생하고 있지만요. 첫째는, 회사 직원이던 보험 상담원이던 피자 주문받는 직원이던, 못 알아들었으면 못 알아들었으니 다시 이야기해 달라고 하는 용기를 갖자는 겁니다. 못 알아들으면 창피하고 불편한 정도로 끝나지만, 알아들은 척하고 대화를 이어가다가 더 큰 문제로 번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거든요. 두 번째는, 업무 이외의 분야, 특히 미국 생활의 일반적인 상식이나 문화, 스포츠, 정치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제가 다른 글에서도 밝혔지만, 미국 회사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정치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직원들과의 관계, 특히 윗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편안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업무 이야기만으로는 좀 부족하니, 노력을 해서라도 미국 문화를 이해하고, 이 사람들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뭐 말은 이렇게 합니다만, 정기 구독하는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직도 차고에 차곡차곡 쌓여갈 뿐이고, 맘먹고 하루치 신문이라도 읽을라치면 한 문장에 모르는 단어와 표현이 갈치 먹을 때 가시 나오듯 하고, 내일 슈퍼볼 경기 같이 보면서 노는 파티에 초대를 받았지만, 결승에 올라간 팀을 포함해서 아직도 어느 팀이 어느 지역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에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