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미국에서 살 것인가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미국 교포 형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너는 미국 가면 잘 살 거야.” 나의 어떤 면을 보고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랑 20년 넘게 형·동생으로 지내면서 농구도 하고 골프도 하고, 서로 경조사 챙기고, 술도 자주 마셨다. 일은 같이한 적이 없지만, 사무실도 근처이고, 결국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 내가 어떻게 일하는 지도 잘 아는 형님이다. 일주일이면 5일은 회식이네 접대네 하는 핑계로 술을 마시러 다니고, 어디 경조사 있다고 하면 빠지지 않고 쫓아다니고, 당구장이든 노래방이든 정말 최선을 다해서 치열하게 노는 내 모습은 참으로 한국에 특화된 중년 회사원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한다. 미국 생활이 매우 심심하다고, 한국에 있을 때부터도 이 형님이 여러 번 이야기해 주었고, 우연히 출장 일정이 맞아서 미국에서 만나서 같이 골프를 하거나 식사하면서도 미국 생활이 별거 없음을 알려준 적이 몇 번 있다. 그런데 그 형님이 내가 미국 생활에 적응 잘할 것으로 예측을 한 것이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미국 생활은, 내가 상상한 그대로는 아니지만, 그리고 출장을 다니면서 봤던 그 모습과도 좀 달랐지만, 여전히 훌륭했다.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날씨는, 비싼 생활비를 내면서 살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일 년 365일 중에서 300일 정도는 눈 부신 햇살과 맑은 날씨이니 이런 환경에서 살면서 인상을 쓰고 다닐 아무런 이유가 없다. 출퇴근하는 고속도로에서 눈만 살짝 돌리면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태평양 해변이 눈에 들어온다. 집에서 10분만 가면 US 오픈 골프대회를 개최한 토리파인스 골프장이 있고, 그 주변의 절벽을 도는 산책로에서 바라보는 태평양의 석양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거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물개들이 일광욕을 즐겨서 일 년 내내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라호야 해변이 나온다. 우리 부부가 주말을 함께 보내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집 근처 컨트리클럽에서 지인들과 골프를 하고 식사를 하는 것인데, 골프장도 집에서 10분 거리라 항상 여유가 있다. 컨트리클럽에 딸린 피트니스 센터에 가면 수영이든 테니스든 원하는 대로 즐길 수 있다.
이런 자연환경과 한가로운 생활에 매우 쉽게 젖어들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오후에 퇴근할 때까지는 한눈팔지 않고 온 힘을 다해서 일에 집중한다. 그리고 퇴근하면 회사 일은 잊고 나만의 저녁 시간을 보낸다. 아들 녀석이 학교 다닐 때는 숙제도 봐주고 하느라 여전히 뭔가 바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고, 디저트를 먹으면서 TV를 보고, 여력이 있으면 영화를 보거나 책을 더 보고, 아니면 그대로 빈둥거리다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다음날 출근 전에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분야를 공부하거나 아니면 짬을 내서 글을 좀 쓰기도 한다. 그리고 출근하면 다시 회사원 분위기로 들어가는 것이다. 주말에도 골프를 치는 토요일, 혹은 밀린 장을 보는 일요일 내내 한가하다. 이렇게 아무런 이벤트가 없는 하루하루가 어떻게 보면 오히려 꽉 찼기에 내실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이 별로 없고 온전히 우리 두 부부가 같이 하루하루를 지낸다.
그 교포 형님도 참 신기해했던 것이 있었다. 미국 유학 한번 갔다 온 적도 없는 내가 꽤 유창하게 영어를 한다는 부분이었다. 그건 제가 타고난 머리가 좋아서 그런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같이 웃었지만, 이 형님이 내가 미국 생활에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한 것은 아마 내 영어가 꽤 괜찮은 수준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워낙 나랑 친하게 오래 봐온 사이라, 내 성격이 꽤 적극적이고 어디 가서도 찌그러지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시니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낯설고 물선 미국에 가서도 주눅이 들지 않을 거라 믿으셨을 거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은 꽤 다양한 형태와 조합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난 미국에 온 첫해부터 지금까지 내내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을 많이 받았다. 하루하루 일상생활을 하면서 마주치는 모든 일들이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식당에서 음식 주문도 그렇고, 미국 병원에 가서도 그랬다. 초창기 이민 관련 서류 때문에 관공서를 몇 번 간 적이 있었는데 손에 땀이 젖을 정도로 잔뜩 긴장했었다. 그래서 여전히 병원도 한국 병원을 찾고, 자동차도 한국 정비소에서 고치고, 골프도 한국 사람들하고만 친다.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돌아갈 수도 있지만 회사 생활은 돌아갈 곳도 피할 곳도 없다. 영어를 잘한다고 하지만 그건 한국 사람 치고 잘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나도 그냥 다른 미국 사람들처럼 자기 역할하라고 뽑은 것이지, 내가 한국에서 온 지 5년 된 이민자라는 것은 아무런 변명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쌓아온 자신의 업무처리 방식과 성과에 대한 기준이 있으니, 미국에 와서도 대충대충 일을 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근데 그 업무가 내가 더 늦게까지 남아서 더 열심히 한다고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라서 힘들다. 물론 그렇게 해서 보완이 되는 부분도 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자료도 찾아보고 준비도 철저히 해서 회의에 들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전부 말로 일해야 하는데, 이건 마치 머릿속에는 경부 고속도로가 있어서 아이디어가 쌩쌩 달리는데, 입에서부터는 2차선 국도라서 차량 정체가 일어나는 느낌이다. 그 형님이 예상한 것과는 조금 다르게, 이런 부분이 생각보다 내 자존감에 영향을 많이 미쳤고, 그래서 결국은 보스로부터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까지 받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에 와서 보다 잘 적응하고 즐겁게 생활하면서 사회생활에서도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는 어떤 성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딱 한 가지를 꼽자면, 좀 어려운 일이 있어도 쉽게 주눅이 들지 않는 긍정적인 성격이 아닐까 한다. 한국에서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많이 겪는다. 당연히 미국에 와서도 모든 게 계획대로만 풀릴 수는 없다. 영어에 리질리언스(Resilience)라는 조금 어려운 단어가 있다. 우리말로도 회복 탄력성이라는 뭔가 알쏭달쏭한 말로 번역이 된다. 힘든 일을 겪더라도 용수철처럼 다시 튕겨 오르는 힘을 말한다. 미국에 와서 살면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일을 가끔 겪는다. 그때 찌그러지지 말고 견뎌내는 힘이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