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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Feb 06. 2022

능력과 경쟁

미국의 문화

직장인의 능력은 객관적으로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서 공장에서 물리적으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업무라면, 혹은 물류 센터에서 배송품을 분류하는 업무라면, 하루에 처리하는 일의 양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물론 그 외에도 다른 업무 성과가 있을 테니 그게 전부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측정이 가능한 업무 성과가 있지만, 지식 노동자의 경우엔 그 사람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의 양과 질을 측정하고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공정하고 정량적인 평가가 가능한 부분이 영업 성과일 것이다. 맡은 업무가 특정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업무 성과는 일 년 동안 그 고객사를 통해서 만들어낸 매출액으로 결론을 낼 수가 있다. 물론 여기에도 운이라던가 시장의 상황, 혹은 우리 회사의 제품 로드맵이나 여러 가지 본인이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이 있지만, 어차피 세상에 모든 일을 자기가 통제하면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필드 엔지니어들도 업무 대부분이 고객이 우리 제품을 더욱 잘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업무라는 면에서 기술적인 영업 지원 업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업무 성과를 측정하는 방법도, 그 사람이 지원하는 고객사에서 발생하는 매출이라는 단순한 숫자로 측정할 수 있다. 다만 직접 숫자를 다루는 영업 담당자와는 달리,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처지라서 운이 좋아서 좋은 영업 담당자를 만나면 같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재수가 없어서 일 못 하는 영업 담당자를 만나면, 본인이 아무리 똑똑하고 열심히 일해도 영업 실적이 좋지 않게 나올 수도 있으니 불만일 수도 있다. 기술 지원에 대한 고객 만족도를 측정해서 필드 엔지니어의 성과를 측정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것도 객관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고객이 아무리 만족해서 결국 필요한 영업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고객과의 접점이 되는 영업 조직이 아닌 곳에서는, 매출 기여도를 측정하기가 쉽지 않고, 다른 식으로 성과를 비교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개발 엔지니어의 경우에, 그 사람의 성과는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대한 기술적인 기여도가 된다. 업무의 종류가 지식을 기반으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므로, 정량적인 평가는 쉽지 않다. 물론 소프트웨어 개발의 경우 그 사람이 만들어낸 소프트웨어 코드의 양을 측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좋은 품질과 성능을 보장하는 10줄의 코드가, 문제 투성이인 100줄의 코드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코드의 양은 좋은 평가 지표가 되지 않는다. 지식 근로자의 성과의 양과 질은 결국 매니저와 그 사람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소비하는 회사 내의 다른 부서 사람들로부터의 주관적인 평가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 매니저나 엔지니어링 매니저의 경우엔 그것이 더 어렵다. 매니저 포지션에 있는 사람들의 업무 성과라는 것은, 사람과 자원을 얼마나 잘 관리해서 필요한 결과물을 필요한 시간 내에 만들었냐는 질문이 된다.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있기는 하다. 프로젝트 관리자의 경우 그 프로젝트가 일정과 비용 목표를 잘 지켰는지, 엔지니어링 관리자의 경우 그 사람이 맡은 제품이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비용 내에서 출시가 되었는지 등을 보면 된다. 하지만 그런 수치들은 일차원적이고 단편적인 그림밖에 보여주지 못한다. 프로젝트를 제시간에 끝내긴 했지만 이를 발주한 고객이 원하는 것이 아닌 엉뚱한 결과물이 나왔다면 그 프로젝트는 실패한 것이다. 반면에 시간도 더 걸리고 비용도 원래 계획을 초과했지만, 그 과정에서 고객과 원활한 협상을 통해서 요구 사항을 조정하고 결국은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면, 그런 수치와 상관없이 성공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엔지니어링 관리자도 마찬가지다. 출시하기로 한 시간에 칼같이 제품이 나왔지만, 그 제품에 들어가 있는 기능이 영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이 아니라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엔지니어링 매니저만의 잘못이 아니고 마케팅이나 영업 혹은 제품 기획 부서에서 방향을 잘 못 잡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지식 근로자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하기가 어려워서 매니저의 역할이 중요한데, 결국 나의 승진이나 연봉 인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매니저의 나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상사와 부하 직원 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회사에서의 관계는 회사에서 끝난다. 따라서 나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회사에서의 업무에 의해서 판단이 된다. 회사에서의 업무는 맡은 일이나 직책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내 경우에는, 하루 업무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은 회의가 차지한다. 하루에 8시간을 일한다면, 4시간에서 6시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회의가 주요 업무가 된다.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회의는 많지 않고, 아이디어를 의논하고, 비즈니스의 방향을 조율하고, 내 의견을 개진하고, 합의된 결과에 따라서 필요한 숙제를 주고 받는 미팅의 형태가 많다. 내가 주도하는 프로젝트 미팅에서는 물론 업무의 방향을 잡아주고, 일을 분배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은 해결책을 논의하고, 내가 다른 부서와 조율을 해 줘야 할 것이 있다면 처리하는 등의 일을 하게 된다. 회의에서 의견을 개진하던, 숙제를 받던, 혹은 남에게 숙제를 주던 모두 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민자들은 핸디캡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중에 이메일이나 채팅, 혹은 보완 자료를 통해서 진행되는 일들도 많지만, 이렇게 회의가 업무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포지션이라면, 이런 회의에서의 태도와 리더십이 그 사람의 업무 성과에 대한 매니저의 평가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 회사에서 일해 보지 않아서, 한국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어떤 식으로 직원 간에 경쟁이 이루어지는지 잘 모른다. 한국에서 20년 동안 미국 회사의 한국 지사에서만 일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크게 직급 같은 것에 연연해보지 않았고, 회사에서 내 또래의 동료들을 경쟁자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일이 재미있어서 열심히 했고,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다양한 기회가 주어져서 여러 가지 포지션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했고, 그러다가 적당히 때가 되면 진급하고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나 잘난 맛에 사는 나만의 방식이었고, 조직을 맡아 매니저가 되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팀원들을 줄을 세워서 진급이나 연봉을 조정해야 했었다. 자리와 예산이 제한되어 있으니 승진도 한정된 인원에게만 돌아갔고, 그러면 승진에서 탈락한 친구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두가 같이 승진을 못 하면 별 불만이 없는데, 비슷한 경력의 또래 중에서 한 사람만 승진을 하게 되면 나머지 모두 큰 불만을 품는 경우를 많이 봤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면에 나 스스로는, 남들과 비교하면 나만 불행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지켜보기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오히려 미국에 와서 나도 자꾸 남하고 비교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생겨서 불편할 때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일 자체를 즐기면서 회사 생활을 했고, 자신감도 있는 데다 적절한 때에 진급해서 크게 신경을 써 본 적이 없었다. 미국에 와서도 일은 여전히 재미있지만, 한국에서만큼 즐길 수는 없다. 영어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재미있는 일을 맘껏 즐기면서 하기에는 걸림돌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자격지심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한다. 이민자로서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미국 사람들과 비교하면 뭔가 불이익을 받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고민을 하는 것도 같다. 이게 다 자존감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처럼 일을 즐기면서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평가를 받게 되어있고, 또 당장 진급이 되지 않거나 연봉 인상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시간이 해결해 주거나 혹은 다른 기회가 올 거라는 자신감으로 회사 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 회사에서의 경쟁은 남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와 할 때가 가장 생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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