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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Feb 06. 2022

눈치 보지 않는 문화

미국의 문화

집사람과 몇 번 이야기를 한 것이 미국 사람들은 참 눈치가 없다는 것이다. 커피를 주문하든 계산대에서 물건값을 계산하든, 그리고 손님이든 점원이든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할 말 다 하고 심지어 별로 급해 보이지 않는 잡담도 하고 볼일 다 보고, 그다음에야 다음 고객에게 차례가 돌아간다. 미국의 개인주의적인 문화에서 비롯된 행동으로 생각하면서 일면 부러울 때도 있다. 내 차례가 돼서 내가 담당자와 필요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 하고 싶은 만큼 하는데, 왜 내 뒤에 줄을 서 있는 다른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는가라는 태도는 논리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그게 잘 안된다. 집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참으로 무심하고 눈치가 없다고 구박받는 나도, 여기 미국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 눈치가 빠릿빠릿한 편이고, 주변 상황을 봐서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행동하게 된다.


나는 배려(配慮)라는 말의 어감이 참 좋다. 국어사전에 보면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쓴다는 의미라고 나온다. 뒤의 ‘려’ 자는 생각하다, 헤아리다 등의 뜻이다. 고려하다, 염려하다 할 때의 그 ‘려’이다. 앞의 ‘배’ 자는 나눌 배, 짝 배인데, 분배, 혹은 배필의 ‘배’ 자와 같다. 다른 사람과 나눌 것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나의 기분과 이익만 보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처지와 마음을 고려해서 마음을 쓴다는 것은 주는 사람도 행복하고 받는 사람도 행복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중요한 행동 양식이라고 하겠다. 미국 사람들도 타인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한다. 미국 와서 금방 느끼는 것이,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갈 때 혹시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있으면 대부분 문을 잡고 기다려준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한다. 운전을 할 때도, 깜빡이를 켜면 거의 모든 차들이 속도를 줄여서 들어올 공간을 내준다. 사거리나 골목길에서도, 차들이 서로 먼저 가라고 양보하는 경우가 많고, 혹시 길에 보행자가 건널목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정지해서 보행자가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배려한다. 


배려는 하는데 눈치는 보지 않는 문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눈치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너무 다른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 신경을 써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방해받는 일도 있다. 요새는 한국도 그런 문화가 많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아직도 장유유서의 유교적인 영향을 받는 세대에서는, 윗사람이 회사에 남아있을 때 먼저 퇴근하는 것이 불편하다. 미국에서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워낙에 출퇴근 시간에 신경을 크게 쓰지 않는 문화인데 최근의 코로나 사태로 더욱 느슨해진 면이 있다. 사무실에 사장님이 혼자 남아있건 부사장님이 늦게까지 일하던, 다들 그러려니 하고 태연하게 퇴근한다. 나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퇴근할 때 꼭 가서 한마디 하는 편이지만, 뭐 이제는 적응해서 그렇게 크게 눈치를 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그랬다. 실리콘 밸리의 일부 회사에서는 거의 한국 회사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들은 바쁘게 일하는데 혼자 먼저 퇴근하면 눈치를 주고 나중에 업무 평가도 낮게 주는 문화가 있는 곳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겪은 회사 문화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눈치나 배려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곳은 아마도 회의 시간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되도록 회의 시간에 이야기를 많이 하기보다는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직급이 올라가고 사회 경험이 쌓여갈수록 그랬는데, 심지어 고객과의 미팅에서도 우리 제품 설명을 하는 것보다는, 고객들이 어떤 고민이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해해야 그다음의 대화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었다. 직원들끼리의 회의에서도 아래 방향으로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가능하면 다른 직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좀 다르게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듣기의 중요성은 미국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다른 것은, 침묵을 금이라고 생각하는 동양의 문화에 비해서, 여기서는 적극적으로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내 의견이나 질문이 이렇게 모든 사람이 들어온 회의에서 물어볼 만큼 중요한가를 고민해서, 확신이 있을 때만 말을 하는 편이었기에 회의에서 많이 나서지 않는 편이었다. 특히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그랬다. 하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사소하고 가끔은 좀 초점이 맞지 않는 질문이나 의견도 모두 환영한다. 침묵하고 가만히 있으면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질문이나 의견을 하는 것 자체가 그 주제에 관심이 있다는 표현이다.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날카로운 질문을 할 수 있으면 제일 좋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자기 스스로 검열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보면서 의견 개진을 미루는 것은 미국 회사 생활에서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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