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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Feb 06. 2022

미국에 남고 싶은 이유

계속 미국에서 살 것인가

우리 부부는 양쪽 집을 통틀어서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해외에 이민을 나온 경우이다. 처가도 그렇고 우리 집도 그렇고 장성한 자식들이 각각 셋씩이나 있지만 모두 한국에서 잘 지내고 있다. 집사람의 경우에는 한국의 친정과 통화를 자주 하는 편이고 나는 대부분 아들들처럼 좀 무심한 편이라서 자주 통화를 하지는 않는다. 가끔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 전화도 하고, 명절 때면 한국의 친척 어른들께도 전화를 드린다. 어머님도 여기저기 편찮은 곳이 있어서 걱정되기는 하지만 다행히 동생들이 있어서 병원이나 이런저런 문제들을 챙기고 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아직 젊으신 편이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을 때 처남들이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5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후에 한국에 출장은 여러분 갔었지만, 개인적으로 휴가를 내고 다녀온 것은 한두 번 정도나 될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은 생활이 단순해졌다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서 온종일 열심히 일하고 오후에 퇴근해서 간단하게 볼일을 보거나 집에서 쉬다가 저녁을 먹는다. 아들 녀석이 여기서 학교를 다닐 때는 세 식구였고, 지금은 집사람이랑 나랑 둘이서 오붓하게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고 TV나 영화를 좀 보거나 책을 보다가 일찍 잠자리에 든다.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회사에 출근하는 일을 일주일간 반복한다. 아주 가끔 주변의 지인들과 부부 동반으로 외식하는 일도 있다. 더 드물게는 회사 사람들과 퇴근 후에 저녁을 먹고 들어올 때도 있지만 많아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일 것이다. 주말에는 동네의 골프클럽에서 한국 사람들과 함께 골프를 하고 저녁을 먹기도 한다. 예전에는 부부 동반 모임이라서 끝나고 돌아가면서 집에 모여서 술도 한잔하고 카드도 치고 했는데, 요새는 그렇게 노는 모임은 없어져서 부부가 여자 따로 남자 따로 골프를 치고, 클럽하우스에서 저녁을 먹거나 아니면 집에 돌아와서 우리끼리 식사한다. 일요일은 골프를 칠 때도 있고 아니면 밀린 장을 보거나 쇼핑하러 근처 아웃렛을 다녀오기도 한다. 이렇게 일주일이 흘러가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거의 매일 저녁 회식이 있었다. 회사 직원들과의 회식이 제일 많았다. 회식을 하게 되면 일차에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보통은 2차로 맥주 한 잔 더 하거나 당구장을 가거나, 뭔가 느낌이 온 날은 노래방에 우르르 몰려가는 경우도 많았다. 고객과의 저녁 자리도 많았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여러 개 있었고, 대부분은 프로젝트가 아무 문제없이 순조롭게 흘러가기보다는 항상 무언가 이슈가 있을 경우가 많았고, 실무에서 잘 안 되는 부분은 그쪽 임원이나 매니저와 만나서 소주 한잔하면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만난 선후배들과도 저녁을 자주 했다. 다들 비슷한 업계에 있다 보니 모여서 서로가 하는 일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고 아니면 그냥 친구들처럼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학교 친구들이나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서로 다들 사는데 바빠서 자주는 못 보지만 가끔 모임도 있었고, 특히 나이가 들어서는 서로들 경조사를 챙기느라 한 해에 몇 번씩은 꼭 보게 된다. 주말에는 비즈니스 혹은 순수한 친목 모임의 골프가 많았다. 한국의 주말 골프 모임은 새벽에 출발해서 한밤중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일요일은 양가 가족들 모임이 있거나 아니면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운이 좋다면 아무 일 없이 쉴 수도 있었다.


일주일이라는 주어진 시간은 같은데, 한국에서의 일주일과 미국에서의 일주일은 다른 세상의 삶이다. 결혼하고 한국에서 16년간 집사람과 같이 먹은 저녁보다 미국에 와서 5년 동안 같이 먹은 저녁이 훨씬 많을 것이다. 한국에서 우리 부부의 삶이란 전쟁을 치르는 군인들 같았다.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떠서 일요일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하루가 빡빡한 일정들의 연속이었고,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형태의 전투가 벌어졌다. 밤늦게 집에 들어오면 배터리 떨어진 인형처럼 픽 쓰러졌고, 아침까지 급속 충전해서 다시 다음날의 전투를 준비하는 비장한 각오로 출근했다. 미국에서의 회사 생활도 전투의 연속이다. 보통 7시 정도면 출근하는데, 그때부터 4시 정도에 퇴근할 때까지 화장실이랑 가끔 커피 가지러 갔다 오는 것 말고는 정말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 집중해서 일한다.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는 고객들은 드물지만 그렇다고 대충대충 넘어가 주는 고객도 거의 없다. 열정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팀원들도 있지만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고 하는 진상도 항상 있게 마련이다. 회사에서 혹은 보스가 시키는 어려운 일도 많고 동료들 간의 경쟁이나 알력도 있다. 4시 정도에 업무를 마치고 나면 파김치가 돼서 더는 머리가 안 돌아간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사무실에서 집까지 대략 20마일 (30킬로미터) 정도의 거리가 된다. 길이 하나도 안 막히면 30분이면 집에 오지만 퇴근할 때 차들이 몰리면 조금 더 걸리기도 한다. 퇴근하는 차에서 그날 업무를 정리하기도 하고 다음에 할 업무를 생각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국 가요를 크게 들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들으며 퇴근한다. 집에 와서 씻고 인터넷을 하거나 TV를 좀 보다가 집사람이랑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를 한잔하면 식사 후에 일찍 곯아떨어진다. 이렇게 9시 전에 자면 보통 다음 날 새벽에 깨게 된다. 그러면 새벽에 남는 몇 시간 동안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혹은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검색하면서 공부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6시가 되면 샤워하고 아침 식사하고 출근해서 그날의 전투를 준비한다. 군인은 같은 군인인데 출퇴근이 정해져 있어서 굳이 비교하자면 옛날에 있던 방위병 같은 느낌이다. 치열한 전투가 매일 벌어지긴 하지만 퇴근 시간이 돼서 컴퓨터 전원이 꺼지면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시작하는 참으로 점잖은 전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콩국수를 참 좋아한다. 한국에 있을 때 여름에 콩국수 철이 돌아오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챙겨 먹었다. 내가 콩국수를 먹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소금을 넣지 않고 먹으면 싱겁지 않냐고 물어본다. 근데 나는 소금을 치지 않고, 그냥 원래 그대로의 담백한 콩 국물의 그 깊은 고소한 맛을 좋아한다.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해보면 미국의 하루하루는 참으로 심심하기가 소금 안 넣은 콩국수 못지않다. 하지만 그래서 정말로 인생에 뭣이 중헌지 생각해볼 여유가 생긴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읽은 책 가운데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라는 영어책이 있었다. (번역된 책은 아니라서 한국어 제목을 맘대로 붙여 봤다)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던 저자가, 그분들의 마지막 몇 달을 함께하면서 들었던, 인생의 마지막에서 후회되는 일 중 다섯 가지를 꼽아서 정리한 책이다. 그 다섯 가지 후회는 다음과 같다:


● 남들이 기대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았더라면 하는 후회.

●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

● 내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하는 후회.

● 친구들과 관계를 잘 유지했어야 했다는 후회.

● 나 스스로가 더 행복하게 지내도록 해야 했다는 후회.


호주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우리와는 문화나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사람이 태어나서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서 돌아가게 되는 것이 보편적인 삶의 형태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은 찾아보면 많이 있을 것이고 그 내용도 그렇게 매우 다르지 않을 거라고 짐작한다. 문제는 이런 책을 백 권을 읽어도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생활양식에서 크게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렇게 단조롭고 드라마가 없는 미국에서의 삶은, 인생에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지를 더욱더 진지하게 성찰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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