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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Mar 28. 2022

버지니아 (Virginia: VA)

(미국의 주: 36)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한 칸 더 위로 올라가면 버지니아가 나옵니다. 버지니아의 정식 이름은 “Commonwealth of Virginia”인데,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4개의 주가 State라는 이름 대신에 주의 정식 이름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켄터키, 매사추세츠, 펜실베이니아 그리고 버지니아인데, 영국 식민지 시절의 영향을 받아서, 영연방 국가들에서 아직까지도 국가나 연방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커먼웰스(Commonwealth)라는 이름을 사용합니다. 우리말로 공화국이라고 번역되는 리퍼블릭(Republic)의 어원이 공공 재산인데, 그것과 같은 의미로, ‘공공의 재산을 위해서 모두가 함께 다스린다’는 정도의 의미로 번역을 할 수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대서양을 마주하고 있으며, 덕분에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개척 시도가 가장 먼저 시작된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버지니아주의 모양을 삼각형이라고 할 때, 삼각형의 바닥은 북위 36도 3분으로 테네시와 노스캐롤라이나와의 경계를 이루는 직선입니다. 왼쪽 변은 블루리지 마운틴(Blue Ridge Mountains)을 경계로 웨스트버지니아와 분리되어있고, 오른쪽은 체사피크(Chesapeake) 만을 통해서 대서양과 붙어있습니다. 

16세기에 스페인의 탐험대가 체사피크 만을 통해서 버지니아 지역을 개척하자,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북아메리카 대륙의 대서양 연안의 개척을 지시했고 이를 기려서 그 지역을 버지니아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국가와 결혼했다”는 말로 유명한 처녀 여왕으로, 여왕으로 즉위 후 69세에 사망할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버지니아는, 애팔래치아 산맥 동쪽의 미국 평야지대 전체를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북쪽의 산악지대를 뉴잉글랜드, 남쪽의 평야지대를 버지니아, 이렇게 간단히 구분한 거죠. 1584년의 첫 개척에서 남자 85명과 여자 17명이 이 지역에 정착했는데, 몇 년 뒤에 돌아와 보니 풍토병으로 모두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 후에 1607년에 영국의 무역회사 (Virginia Company of London)를 통해서 다시 사람들을 보냈고, 2년 후에 500여 명의 정착민을 보내면서 본격적인 식민지 개척이 이루어집니다. 체사피크만에 있는 정착지를, 새로운 왕의 이름을 따서 제임스타운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것이 북미 대륙에서 최초의 영구적인 정착지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버지니아주는 면적 11만 제곱킬로미터로 대한민국과 비슷한 크기에 8백6십만 명정도의 인구가 사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60% 정도가 백인이고, 흑인이 20% 정도, 히스패닉이 10%에 아시안도 7%나 될 정도로 많이 사는 것으로 나왔네요. 86%의 인구가 집에서 쓰는 언어로 영어를 꼽았는데, 나머지 언어로 스페인어가 6.4%가 나온 것 외에 한국어도 0.8%로 2010년 조사에서 밝혀졌습니다. 인구로는 5만 6천 명 정도가 집에서 한국어를 쓴다고 답을 했네요.

  

2021년 말에 외교부에서 조사한 미국 내 한인 인구가 263만 명 정도로 나왔는데, 한국 재외공관(대사관, 총영사관, 등) 관할 지역별로 조사를 한 자료이긴 합니다만, LA 지역이 66만 명 정도로 1위, 뉴욕과 시카고가 대략 36만 명 정도로 2,3위, 애틀랜타가 24만 명 정도로 4위를 차지했고, 그 외에는 워싱턴 지역이 19만 명, 시애틀과 휴스턴이 18만 명정도로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워싱턴 지역 관할 가운데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한인이 대략 11만 명, 메릴랜드 7만 명, 워싱턴 DC에 5천 명 그리고 웨스트 버지니아에 2천 명 정도라고 하네요.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Blacksburg)라는 인구 4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에 유명한 학교가 하나 있습니다.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Virginia Polytechnic Institute and State University)라는 정식 명칭을 갖고 있고, 줄여서 버지니아 텍 (Virginia Tech:VT)이라고 부르는 버지니아 공대로, 2022년 US News의 공대 순위에서 13위에 올라있는 명문 대학교입니다만, 미국에서는 2007년에 벌어진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32명이 살해당하고 29명이 부상당한 이 사건 직후 현장에서 자살한 범인 조승희는 9살 때 미국으로 이민 와서, 내성적인 성격과 서툰 영어에 학교에서의 심한 괴롭힘을 지속적으로 겪다가 정신적인 문제를 겪으면서 저지른 사건이라고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반면에 버지니아 공대는 데니스 홍 교수가 로멜라(RoMeLa:Robotics & Mechanisms Laboratory)를 시작한 곳이기도 합니다. 빠른 71년생으로 고려대 기계공학과 89학번이던 홍원서는 학교를 중퇴한 후에 위스콘신 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퍼듀대 기계공학과에서 석, 박사를 합니다. 그리고 졸업하자마자 부임한 곳이 버지니아 공대였고, 그곳에서 로멜라 연구소장을 지내다가 2014년에 UCLA로 옮겨서 활발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톡톡 튀는 언행과 활발한 대외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 하고 싶었던 일을, 제가 오고 싶었던 나라에 와서 마음껏 활약을 하고 있는 동년배 후배의 모습이 부러워서 가끔 기사 날 때마다 관심 있게 보고 있어서 기억을 하고 있지요. 


샬러츠빌(Charlottesville)은 인구 4만 7천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이를 중심으로 한 메트로폴리탄 지역에는 22만 명 정도의 사람이 살아서 버지니아에서 6번째의 인구 밀집 지역입니다. 2017년 5월에 샬러츠빌에서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장군이었던 로버트 리의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반발한 백인 우월주의자 집단이 횃불 시위를 시작했고, 또 이에 반발하는 시위대가 촛불을 들고 맞시위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KKK 단까지 시위에 참여했고, 계속 갈등이 고조되다가 두 시위대간 충돌이 발생했고, 이때 20살의 극우주의 청년이 반대 시위대를 향해 차를 몰고 돌진해서 한 명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동영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경약을 했는데, 이 청년은 결국 2019년에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입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양쪽 모두에 잘못이 있다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었죠.


리치먼드(Richmond)는 인구 23만 명이 살고 있는 버지니아의 주도입니다. 영국 식민지 개척시대인 1609년부터도 제임스타운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유서 깊은 동네이지만 정식으로 시가 설립된 것은 1737년입니다. 이 도시는 1775년에 버지니아 주 헌법을 제정하기 위해서 열린 회의에서 패트릭 헨리가 그 유명한 “나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라고 발언하며 영국에 대항하기 위한 민병대 창설을 주장한 곳입니다. 결국 패트릭 헨리는 버지니아 초대 주지사가 됩니다. 리치먼드는 또한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국의 수도이기도 했을 정도로, 전통적인 남부의 색채가 강한 곳이기도 합니다.


버지니아주의 삼각형 모양에서 꼭짓점에 해당하는 카운티 몇 개를 모아서 노던 버지니아 혹은 줄여서 NOVA라고 부르는데, 워싱턴 DC에서 가깝기도 하고, 2020년 조사에서 3백2십만 명의 인구가 이 지역에 사는 것으로 나와서 버지니아 전체 인구의 37퍼센트가 모여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이테크 기업들도 많이 모여있고, 특히 라우던 카운티(Loudoun County)는 60여 곳이 넘는 대형 데이터센터가 자리 잡고 있어서, 미국 내 인터넷 트래픽의 최대 70%까지도 이곳을 거쳐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아마존과 구글도 이곳에 투자를 연이어 발표하고 있고요.


젊은 시절에 미국에 출장 왔다가 마침 추수감사절 휴일을 미국에서 맞게 되었습니다. 그때 초대받은 동료 직원의 가족들과 함께한 추수감사절 저녁 자리에서, 그 친구의 할머니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이 할머니가 버지니아 출신이었습니다. 동양에서 온 손자의 직장 동료이고, (미국) 최대의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타향에서 쓸쓸하게 보내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저녁시간 내내 나를 붙잡고 뭐라고 말씀을 계속하셨는데, 너무나 심하게 늘어지는 남부 사투리 때문에 절반도 못 알아듣고 헤매던 풋풋한 추억이 있네요. 25년 전 이야기이고, 그때보다 영어도 많이 늘었으니 지금은 미국 남부 사투리를 들으면 좀 더 잘 알아듣겠지만, 영화에서 남부 사투리가 나오는 장면은 여전히 쉽게 알아듣기 힘든 부분이 많더군요.


1967년에 있었던 러빙 대 버지니아 (Loving v. Virginia)라는 재판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있습니다. 밀드레드 러빙(Mildred Loving)이라는 흑인 여성과 리처드 러빙(Richard Loving)이라는 백인 남성이 버지니아의 캐롤라인 카운티에 있는 센트럴 포인트라는 곳의 한 고등학교에서 만나서 사랑에 빠졌습니다. 밀프레드가 임신을 했고, 이에 둘은 워싱턴 DC로 가서 결혼을 했습니다. 버지니아는 당시 다른 많은 남부의 주들과 같이 여전히 짐 크로우(Jim Crow) 법에 따라서 엄한 인종 분리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고, 백인과 유색인종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었거든요. 


그들이 버지니아로 돌아온 지 몇 주 되지 않아서 새벽에 급습한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습니다. 인종 간의 결혼을 금지한 주법을 어겨서 주의 평화와 존엄을 손상시켰다(“against the peace and dignity of the Commonwealth”)라는 이유로 1958년에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유죄를 인정하고 25년 동안 버지니아주에 부부가 함께 들어오지 못한다는 조건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습니다. 워싱턴 DC로 이사한 이 부부는 나중에 이 판결이 부당하다며 주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패소했고, 결국 연방 대법원에 상고를 해서 이 주법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얻어냅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내 결혼 관련된 인종 차별적인 법들이 모두 폐지되었고요. 


제가 미국의 여러 주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 중의 하나는 미국의 인종 차별은, 이 넓고 아름다운 신대륙이 유럽 사람들에 의해서 개척되면서 생긴 원죄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땅에 원래부터 잘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죽이고 쫓아내면서, 그리고 또 다른 대륙에서 잘 살고 있는 검은 피부의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와서 노예로 부려먹으면서 생긴 업이죠. 수백 년 동안 쌓인 업에 의해서 여전히 사람들이 오로지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미워하고, 차별하고 테러를 가하는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일 민족으로 살아온 우리나라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지만,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라는 미국에서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더 안전하고 조화롭게 발전하는데 여전히 걸림돌이 되고 있지요. 


분위기가 좀 무거워졌습니다만, 위의 영화는 러빙(Loving)이라는 제프 니콜스(Jeff Nichols) 감독의 2016년 영화입니다. 두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에 아주 잔잔한 영화라서 좀 지루할 수도 있지만 저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마지막에 영화 끝나면서 나오는 자막의 내용이 좀 슬프지만 그건 직접 보실 분들을 위해서 남겨놓고요,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혹시 이 영화가 너무 심심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제가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던 그린 북(Green Book)이라는 2018년 영화도 좋습니다. 역시 인종 차별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훨씬 드라마틱하고 코믹한 요소가 많아서, 2시간이라는 러닝 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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