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이킴 Mar 05. 2020

코코넛과 복숭아

혹은 멜론?

얼마 전에 같이 일하는 회사 동료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시아 사람들은 코코넛 같고 미국 사람들은 복숭아 같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예전에 일본 사람들과 하루 종일 미팅을 하면서 어떤 내용을 열심히 설명했는데, 그 미팅 자리에서는 계속 고개를 끄떡이면서 (그 사람 생각에는) 동의를 표시했고, 나중에 질문이나 의견이 있냐고 했을 때도 별 이야기가 없길래, 모든 면에서 서로 합의가 잘 되면서 미팅이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그 내용에 대해서 일본 측 파트너로부터 수많은 질문과 다른 의견이 들어와서 당황했었다고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동양 사람들은 껍질이 단단한 코코넛 같아서, 실제 진심에 다가가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일단 그 단단한 껍질을 벗기고 들어가면 그 후에는 아주 부드럽게 일이 진행되는 것 같다는 거죠. 반면에 미국 사람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다정 다감해서 부드러운 복숭아 같지만, 실제로 그건 어느 정도까지고, 그 안에는 매우 단단한 씨앗이 있어서 더 파고들어서 깊은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일면 그럴듯해 보이는 비유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살아보니까, 여기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도 꼭 눈을 마주치고 Hi~ 하고 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더군요. 그리고,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전화로 처음 통화를 하는 상담원들도 반드시 본인 이름을 밝히고, 제 이름을 물어본 후에, 그다음부터는 서로 이름을 불러가면서 대화를 하죠. 반면에 우리는 서로 고객님과 저기요로 상대방을 호칭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고, 어떤 의미 있는 관계가 이루어져야만 통성명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김춘수 님의 유명한 시에 나오는 것처럼,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꽤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출장을 자주 다녀서, 공항이나 호텔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혼자서 조용히 테이블을 잡아서 휴대폰을 벗 삼아 혼밥을 즐기고 나온단 말이죠.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그럴 경우, 테이블에 앉지 않고 바에 앉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 식당에는 테이블도 있지만 많은 경우 바텐더가 있는 바에 앉아서 술도 한잔 하고 식사도 주문할 수 있거든요. 그건 꼭 공항이나 호텔만 그런 것이 아니고, 동네에도 흔히 있는 스포츠 바에서도 그런데요, 거기에도 혼자 온 사람들은 테이블보다는 바에 앉아서 TV로 중계되는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 바텐더와 대화를 나누면서 술도 한잔하고 안주나 가벼운 식사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보기 쉽지 않은 광경이 자주 보입니다. 그날 그 바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사람이랑,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웃고 떠들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술집에 혼자 가능 경우도 거의 없을뿐더러, 혹시라도 분위기 잡고 싶어서 카페나 바에 가서 혼술을 하더라도, 기껏해야 바텐더와 가끔 몇 마디 하는 경우가 전부이지, 거기서 옆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사람과 시시콜콜 농담하고 웃고 떠들면서 노는 경우는 거의 못 봤습니다. 


사실 이런 광경은,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 가운데 하나인 파티장에서도 그대로 보입니다. 학교의 어떤 행사에서 학부모 모임을 하던, 회사의 행사와 연관된 파티이던, 아니면 그냥 아는 사람이 초대한 소규모 파티라도, 미국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처음 보는 사람들과 통성명을 하고 시시콜콜 개인사를 이야기하던, 아니면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던, 뭔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맺는 과정이 너무나 편하고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파티 문화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만, 하여튼 뭔가 모임이 있다고 하면, 일단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밀린 회포를 풀다가, 혹시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있다면, 또 그 사람을 아는 다른 사람의 소개를 통해서 서로 인사를 하고 안면을 트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죠.


일본이나 중국 같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지 않으니, 그쪽 나라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쌓는 방식이 얼마나 우리와 비슷하거나 다른지 이야기를 할 입장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유교적인 전통과 우리말의 구조, 이렇게 두 가지 문화적인 바탕에서 이렇게 신중한 방식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흔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절대로 그 사람의 이름만 부를 수는 없습니다. 업무 관계로 만난 사이라면 꼭 그 사람의 직책을 알아야 호칭을 정할 수가 있고, 사적으로 만난 사이라면, 그것도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고 난 후에야 형님이나 누나 혹은 동생 관계가 정해지죠. 업무 관계로 만난 것이 아니고 사적으로 만났는데, 형 동생 할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면 서로 호칭을 정하지 못하는 곤란한 관계가 되고, 그러면 서로 부를 이름이 없으니 당연히 의미 있는 관계를 쌓기도 힘들어지죠.


반면에 미국에서는, 처음 만나는 가게 점원이던 맨날 만나는 회사의 상사이던 이름만 부르면 되니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확실히 편한 면이 있습니다. 요새는 한국에서도 영어 이름을 지어주거나, 혹은 모두들 무슨 무슨 님이라고 호칭을 통일해서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시도하는 회사가 많다고들 합니다. 저도 한국에서 일할 때, 제가 매니저로 있던 조직에서, 모두들 영어 이름을 갖도록 강력히(?) 권고를 했는데, 이게 그리 쉽지가 않더군요. 외국인 회사이니 외국 사람들이 발음하고 기억하기 쉽게 영어 닉네임을 하나씩 만들자고 이야기를 한 건데요, 우선 멀쩡한 한국 이름을 놔두고 외국 이름을 새로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뭐 이거야 충분히 이해를 할 수도 있는 부분이죠. 근데 영어 이름을 만들어도, 결국은 그 뒤에 한국어 직책을 붙이게 되는 것을 보면, 그렇게 간단히 해결되는 문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당연히 한국에서 쭉 살다가 이제 미국에 와서 몇 년 살았으니, 한국적인 관계 맺기가 당연히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처음 만나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사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근데 반면에, 이왕 미국에 와서 직장 생활하고 비즈니스 하면서 지낼 거라면, 어떻게든 여기 사람들처럼 편하게 관계를 맺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하거든요. 50년 가까이 입고 지내던 편한 옷 말고, 꽉 끼고 불편하지만 좀 더 트렌디한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해서 시대와 장소에 뒤처지지 않고 멋쟁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고 싶다면 말이죠. 혹은 코코넛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멜론 정도는 된다는 인상을 줄려면요...  ^^ 

작가의 이전글 뒤돌아 봤을 때야 보이는 의미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