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necting the Dots
얼마 전에 친구와 저녁을 먹고 헤어져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이었습니다. 15분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미국의 대부분의 길들처럼 그렇게 밝지 않은 주택가 골목길을 터벅터벅 걷는데 문득 대학교 때 걸었던 구로동의 한 골목길이 떠오르더군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골목길의 모습이 그리 비슷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날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에서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할 아무런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으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골목길이 꽤 어두웠다는 것이 아마도 유일한 연관성 일지 모르겠습니다.
그 시절에는 흔한 말로 정말로 춥고 배고팠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강조했던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에 꽤 충실하게 따르고 있던 시절이죠. 수원의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던 때였는데, 돈이 떨어져서 구로동에 사시던 아버지한테 용돈을 얻으러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추운 거리를 주머니에 버스비만 있는 채로 다시 수원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즐거운 기억은 아니지만, 그 시절의 일기장을 읽어보면 세상에 대한 불만과 스스로에 대한 자조로 가득한 나날들이었죠.
근데 그날 15분 동안 미국 샌디에이고의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는 나 스스로를 보면서, 구로동의 골목길을 걷던 그날에서부터,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신기하고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군대 제대하고 2학년에 복학해서 학교 다닐 시절이니 얼추 30년 전 일인데, 매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고,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를 다니던 것도 아니었고, 뭐 대단한 의지를 불태우면서 인생 역전을 해 보겠다는 독기를 갖고 산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꿈은 있었습니다. 제가 그 당시 하던 공부를 미국 유학 가서 계속해서 그 분야의 유명한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하고 이룰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았던 거의 백일몽 수준이었죠. 유학을 갈 돈 따위는 당연히 없었고, 제가 굉장히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하여튼 그런 생각 덕분인지, 첫 직장을 돈 많이 준다는 외국인 회사의 수원 지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회사라는 것은 그때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하니, 거길 들어가서 얼른 돈을 모아서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었죠. 대학교 동기들은 그때 다들 삼성이나 LG, 대우 등에 입사했고, 일부는 아직도 다니고 있는 친구들도 있으니, 대학 졸업하고 첫 직장의 선택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것은 맞는 듯합니다.
근데 그 첫 직장이 저한테 맞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일은 힘들기만 했고, 재미도 보람도 없었죠. 그래서 입사 6개월 만에 사표를 들고 사수를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양반이 하는 말이, '6개월 일해서 이 회사의 일에 대해서 뭘 안다고 벌써 사표를 던지냐. 그리고 어디를 가든 최소 2년은 일해야 경력이라고 인정을 받는다, 그러니 조금 더 있어봐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2년을 다 채우고, 결국은 사표를 내고 나왔습니다. 2년 동안 일해서 얼마나 벌었겠습니까? 겨우 몇백만 원 정도 손에 쥐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1월부터 출근을 했고 딱 2년 채우고 2월 무렵에 관두었는데, 참으로 무식한 게, 뭔가 다른 직장을 알아본 것이 아니고, 그냥 일이 재미없으니 무턱대고 관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Foolish" 했던 것입니다. 뭔가 계산을 하고 고민을 하고 생각을 했다기보다, 그냥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더 이상 이 일은 하기 싫다,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싶다'에 따라서 우선 사표부터 내고 그다음 일을 고민한 거죠.
근데 뭐 고민해봤자 뭐가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일단 학교 앞에 자취방을 얻고, 당시에 동기가 박사 과정을 하고 있던 대학원 실험실에 책상을 하나 얻어서 거기서 하루 종일 죽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 구직 활동을 했는지 아니면 그냥 공부만 하면서 대학원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아마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학부 때 열심히 했던 동호회 후배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이것 저것 뚝닥거리면서 만들어도 보고, 어쭙잖게 웹사이트 만들면서 프로그래밍도 하고, 대학원 석사 과정을 들어가 볼까 그런 생각도 하면서 거의 한량 생활을 했지 싶습니다. 몇십만 원이면 한 달을 보낼 수 있었으니, 쥐꼬리만 한 퇴직금이랑 조금 모아놓은 돈으로 한동안 버틸 수 있었죠.
그러다가 대학교 동기가 어디 괜찮은 회사에서 사람 뽑으니 가서 지원해보라고 해서, 서울 하고도 삼성동이라는 삐까 번쩍한 빌딩숲에, 수원에서 온 더벅머리 촌놈이 청바지에 샌들 신고 쭈삣 쭈삣 들어가서 면접을 본 것이 덜컥 되는 바람에 8개월간의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외국인 회사로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직장이 외국인 회사였고, 그래서 미국 실리콘 밸리 출장을 몇 번 다녀서, 외국인 회사라는 것에 대해서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우연찮게도, 제가 그렇게 지겨워했던 첫 직장의 업무 가운데, 이 새로운 회사의 운영체제를 쓰는 장비를 다루는 것이 있어서 그것도 약간 도움이 되었겠죠. 마지막으로는, 그때 모교 대학원 실험실에서 빈대 생활을 하면서 제가 제일 많이 했던 것이 소프트웨어 관련 공부였는데, 이 새로운 회사가 소프트웨어를 하는 실리콘 밸리 회사였던 거죠.
그 회사에서 22년을 넘게 다니면서 집사람을 만나고,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한국의 개발팀을 관리하는 자리를 맡게 되고, 결국은 글로벌 개발팀을 관리하는 자리를 맡아서 샌디에이고까지 오게 된 겁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연설 내용에 "Connecting the dots"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게 되는데, 그런 하나하나의 이벤트를 점이라고 한다면, 그 당시에는 그 점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와 닿지 않는데, 먼 훗날 인생을 돌이켜보면, 그 하나하나의 점들이 연결이 되어서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구나라는, 어찌 보면 참으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제 입장에서는 무릎을 치면서 공감을 하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50을 살짝 넘었으니, 아직도 제 앞에는 수많은 점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점들이 지금 시점에서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 것들인지 여전히 예측하기 힘들겠죠. 그래서 주어진 상황들에 대해서 헷갈려하고, 내려야 하는 결정에 확신이 없고, 이미 어떤 결정을 내린 후에도 그게 맞는 것이었는지 의심을 하는 그런 상황이 계속될 겁니다. 특히나, 30년 전의 배고프고 어리석었던 저에 비해서, 50을 넘은 지금의 저는 좀 더 보수적이고 좀 더 속물적인 사람이 되었죠. 그때에 비해서 가진 것이 많고 누리는 것이 많아졌으니, 그때처럼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을 거고요.
하지만 엊그제 샌디에이고 집 근처 어두운 골목길을 15분간 걸으면서, 구로동의 그 춥고 배고프고 참으로 어두웠던 골목길이 오버랩되고, 30년이 지난 후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제가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그 시절에 내렸던 결정과 그 후에 걸어왔던 길들이 모두 최선이었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돌이켜서 그 하나하나의 점들을 연결해보니, 오늘의 저를 있게 한 올바른 판단들이었고, 지금의 제 모습에 꽤 만족을 하는 제 입장에서는 모두들 칭찬해주고 싶은 "점" 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앞으로 제 앞에 나타날 더 많은 "점"들에 대해서도, 지금은 헷갈리고 자신 없고 하지만, 나중에 보면 분명히 의미가 있는 상황이고 결정이었을 거라는 것을 믿고, 나 스스로를 토닥여주어야 하겠습니다. 여태까지 잘 살아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더 잘 살아갈 것이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