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가 처음 출장 온 날의 단상
인터뷰할 때 본 이후에 처음으로 제가 리포트를 하게 될 보스를 어제 다시 만났습니다. 아직 공사 중인 사무실에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도 있고, 제가 입사한 지 일주일 되었고 어느 정도 기본적인 교육 (On boarding)이 끝났으니 저랑 얼굴 보고 앞으로의 업무 할당이나 현재 회사 상황 등을 공유해주려고 온 것이죠. 디트로이트에서 왔으니 샌디에이고에 월요일 저녁 늦게 도착했고 저랑은 화요일 오전에 사무실에서 만났죠.
처음에 와서 한동안 어수선한 사무실 정리를 한 후에, 같이 앉아서 몇 시간 동안 제가 하게 될 역할이나 곧 시작할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사무실에 도착한 이케아 가구를 조립한다고 같이 앉아서 또 한참 일을 했고요. 면접 때 한번 봤고, 이번이 두 번째 보는 것인데, 제 보스이니 잘 지내야 하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같이 사무실 정리를 하면서 막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는 것을 보니까 소탈한 성격이 드러나기도 했고, 회의할 때는 약간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들을 했는데, 원론적인 답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서 솔직하게 자기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상황을 이야기해주는 것을 보고는 믿어도 될만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문제는, 거의 6시가 다 되어서 사무실 정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였습니다. 제 보스랑 HR 책임자랑 둘이서 디트로이트에서 출장을 왔고, 나머지 사람들은 당연히 샌디에이고에 사는 사람들인데, 6시가 되니까 한 사람 두 사람씩 일어나서 "Goog night"하면서 퇴근을 하는 겁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살짝 고민을 했는데, 저도 "See you guys tomorrow"하고는 퇴근했습니다. 제가 고민을 한 이유는, 우선 한국적인 정서상 멀리에서 손님이 왔고 심지어 그 손님이 내 윗사람인데, 그런 사람과 같이 저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걸려서였죠.
제가 한국 지사에서 근무할 때도,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그 손님이 하룻밤을 한국에서 보내던, 일주일을 지내던,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혼자 저녁을 먹도록 두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와서 식당에서 주문을 하는 것이 좀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손님에 대한 대접이라는 면이 더 컸죠. 근데 웃기는 건, 막상 저희가 미국에 출장을 오면, 예외적으로 전체 회식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저녁을 출장자들끼리 먹었다는 겁니다. 현지에 사는 본사 사람들은 당연히 집에 가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요. 이런 면을 보면 미국의 가족 중심 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고민을 했던 두 번째 이유는, 좀 현실적인 이유였습니다.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사람인데, 서로 좀 잘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죠. 인터뷰 때야 그런 것을 살필 겨를이 없었고, 어제 처음 제대로 본 건데 하루 동안 회의도 하고 가구 조립도 하고 하면서 이 사람의 성향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고, 거기에 저녁 같이 하면서 술 한잔 하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접은 것은, 앞으로 같이 일할 시간이 많을 테니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도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화가 났을 때 영어가 잘 안 되는 것에 대한 제 글 (https://brunch.co.kr/@tystory/14)에서 한 친구가 했던 말, 즉 "우리가 직장에 일하러 왔지 친구 만들러 온 거 아니잖아"라는 그 말이 떠오르더군요. 내 젊은 날을 다 바쳐서 불꽃같이 일했던 전 직장을 관두게 되고 나니, 직장 생활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예전처럼 오버해서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하고, 오버해서 과도하게 잘하려고 하는 일은 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 일은 회사 안에서, 월급 받는 것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잘하고, 보스와의 관계 역시 업무가 원활하게 되는데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서로 쿨하게 유지하고, 남는 시간에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직장생활 외의 Plan B도 준비하고, 이러면서 보내는 것이 보다 건강한 생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