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이킴 Mar 11. 2020

음식 주문하기 힘들어요

저는 그냥 1번 메뉴 주세요

미국에 와서 낯설고 힘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만,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내공이 필요합니다. 우선 음식이나 재료 이름들이 낯설고, 조리하는 방법도 낯설고, 식사하는 동안 종업원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도 많이 다르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메뉴에 있는 내용을 주문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김치찌개던 짜장면이던, 메뉴에 있는 음식 종류를 말하면 그걸로 끝이죠. 김치찌개를 주문하는데, 김치는 많이 익은 신김치를 써 주시고요, 새우는 넣지 마시고, 두부는 살짝만 익혀서 넣어주시고, 뭐 이런 식으로 주문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미국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는 뭘 그렇게 이것저것 물어봐서 사람을 곤란하게 한답니다. 


얼마 전에 출장 간 샌프란시스코의 호텔 식당에서 항상 아침을 먹었습니다. 호텔의 아침 메뉴가 뭐 대단한 것이 있겠습니까? 팬케익이나 오믈렛 혹은 그냥 그 호텔의 가장 기본적인 아침 메뉴 정도이겠죠. 그런데, 그 간단한 아침을 시키는 데도 계란을 어느 정도로 익힐 건지, 베이컨을 먹을 건지 소시지를 먹을 건지, 빵은 어떤 종류로 할 거고, 야채는 어떻게 할 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실 것은 뭘로 할 건지, 참으로 다양한 선택을 줍니다. 식당 메뉴는 물론이고, 웬만한 햄버거 체인점에 가도 역시 햄버거에 넣을 내용물과 더불어 추가로 먹을 감자튀김이나 양파튀김, 그리고 음료의 사이즈까지 골라야 할 것이 많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재미있게 여러 번 본 미국 영화가 있습니다. 멕 라이언과 빌리 크리스털이 주연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라는 영화입니다. 멕 라이언의 가장 청순했던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고, 그냥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느낌이 좋아서 아직도 가끔 생각나면 보는 영화입니다. 거기에 보면 둘이 처음 만나서, 시카고에서 뉴욕까지 카풀을 해서 오는 중간에 식당에 들려서 주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문을 받는 웨이트리스가 오자마자 해리는 "I'll have number 3."라고 간단히 주문을 마칩니다. 딱 제 스타일이죠.  ^^


반면에 샐리는, 음식 주문하는데 한참 걸립니다. 혹시 여러분의 리스닝 실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으시면 유튜브에 관련 비디오가 많으니 한번 찾아서 들어보시면 재미있을 듯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nlm2e3EN78) 잘 들리시는 분들은 축하드립니다. 미국 레스토랑에서 음식 주문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실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위해서 그 부분의 샐리 대사를 보여드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Sally: I'd like the chef salad please with the oil and vinegar on the side and the apple pie a la mode. 

Waitress: Chef and apple a la mode.

Sally: But I'd like the pie heated and I don't want the ice cream on top, I want it on the side, and I'd like strawberry instead of vanilla if you have it, if not then no ice cream just whipped cream but only if it's real; if it's out of the can then nothing. 

Waitress: Not even the pie? 

Sally: No, I want the pie, but then not heated."


이 내용을 다 설명드리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하여튼 샐리는 뭐든 on the side를 좋아합니다. 아마 이다음 장면이 해리가 그에 대해서 한마디 하는 것일 겁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날의 특선 샐러드와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애플파이를 주문하는데요, Chef salad는 들어본 적은 없지만 대충 짐작으로 주방장이 정한 그날의 샐러드 정도라는 것을 알겠죠. 이 영화에 나오는 식당은 허름한 곳이라서 그런지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는데요, 웬만한 미국 식당을 가면 주문에 앞서서 서버가 그날의 특선 요리를 설명해줍니다. 생선 요리일 때도 있고 스테이크일 수도 있고 뭐 그때그때 좋은 재료가 있다 싶으면 주방장이 내놓는, 메뉴에는 없는 요리를 쭉 설명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10번 정도 들으면 한두 번 알아들을 정도입니다. 뭐라고 하는지 도통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그다음에 애플파이를 주문하는데, Apple pie a la mode라고 합니다. 혹시 한국에서도 이 말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파이 종류를 이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저는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같이 곁들여 나오는 아이스크림을 바닐라 대신에 딸기 아이스크림으로 해 줄 수 있는지, 혹시 아이스크림이 없다면 휘핑크림을 넣어주되, 깡통에 들어있는 제품 말고 직접 만든 것일 경우에만 달라고 하는 등, 참으로 현란한 스킬이 막 나옵니다. 부럽다고 해야 할지 유난스럽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미국 식당에서 제대로 요리 주문해서 비싼 돈 내고 밥을 먹으려면 공부를 따로 해야 할 듯합니다.   ^^

작가의 이전글 코코넛과 복숭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