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갑자기 아무 생각 없이 왔을 때
미국에 와서 산다는 것은 신중하게 오랫동안 준비를 해야 하는 일입니다. 워낙 큰 인생의 결정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미국에 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습니다만,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막연한 꿈에 가까웠고, 그마저도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는 거의 잊어먹고 있었거든요. 꽤 늦은 나이에 갑자기 기회가 생겨서 미국에 오게 된 겁니다.
2016년 여름 무렵에 회사에서 글로벌 매니저 포지션이 오픈되었고, 제가 약간 땜빵 형식으로 그 역할을 몇 달 하다가, 다른 글로벌 매니저들이 모두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데 저만 한국에 있어서 시차와 회의 등 여러 가지로 너무 힘드니 미국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몇 달 만에 승인이 나서 늦가을 무렵에 가족들과 함께 앞으로 살게 될 미국 샌디에이고 탐험 겸 여행을 한번 하고, 1월에 이민 왔으니까 처음 시작에서 이사 오기까지 6개월도 안 걸렸습니다. 그해 늦가을에 LA와 샌디에이고, 그리고 그랜드 캐년을 돌아봤던 여행이 우리 아들 녀석은 생전 처음 미국 방문이었고, 집사람도 신혼 때 뉴욕 잠깐 들렸던 것 말고는 실질적으로 처음 미국 여행이나 마찬가지였죠.
이렇게 오게 되었으니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시간이 없이, 번갯불이 콩 굽듯 일이 진행이 된 겁니다. 다행히 회사에서 신경을 많이 써 줘서, 처음 와서 제대로 된 집 구할 때까지 살 집이나 타고 다닐 차, 심지어 미국의 행정 시스템에 낯선 우리 가족을 위해서 면허증이나 소셜 시큐리티 등록부터 부동산과 세금 신고까지 도와주는 회사를 계약해서, 많이 우왕좌왕하지 않고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들 녀석 학교를 알아보는 것은 온전히 제가 해야 해서 그 부분이 가장 힘들었지만 운이 좋았는지 집 근처 괜찮은 공립학교와 이야기가 잘 되었습니다. 집사람도 근처의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ESL 코스를 등록해서 영어 공부도 하고 친구들도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미국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것이 좀 낯설기는 하지만, 제가 한국에 있을 때부터 같이 일하던 팀들이라서 그나마 부드럽게 한국에서 하던 업무를 미국에 와서 연결해서 하게 되었죠.
겉으로 보기에는 순탄한 미국 생활이었지만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면서 준비가 부족했었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녀석은 오히려 미국 이민이 결정됐을 때 자기는 미국 가지 않겠다고 마지막까지 입이 댓 발 나와있던 것에 비하면 잘 적응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수업 내용을 다 알아듣지는 못한다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학교 성적은 거의 A를 받아와서 참으로 대견했습니다. 여전히 학교에서 한국 친구들과만 어울리는 것도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나라의 ESL (비 영어권) 친구들이 생기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요.
이민 와서 2년쯤인가 지난 후부터 군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군대 갈 나이가 될 거고, 대학교 1학년 정도 마치고 한국 돌아가서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미국 와서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 것이 제 바람이었죠. 제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인생을 살면서 참으로 소중하게 남을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설득을 했습니다. 아들은 처음에는 좀 갈팡질팡 하더니 나중에는 거의 군대를 가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굳힌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기 인생의 소중한 20개월을 그렇게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죠.
지난겨울에 한국에 한 달 가까이 휴가를 다녀오더니 갑자기 이 녀석이 군대를 갈까 하는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왜 마음이 바뀌었나 했더니, 어릴 때는 몰랐는데 20살에 돌아간 대한민국은 너무나 재미있는 곳이었다는 겁니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이나 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들락거리고 싶을 정도로 가고 싶은 나라가 된 겁니다. 방학 때 한국 들어가서 친구들과 놀면서 처음으로 술 마시고 클럽가보고 느낀 일시적인 감정이라고 보기엔, 제가 봐도 이 녀석 미국 생활이 참으로 단조롭습니다. 게임을 좋아해서 맨날 집구석에 있는 것은, 한국에서 살았어도 충분히 그랬을 거라고 상상이 될 정도로 원래 좀 내성적이고 집돌이 스타일이었으니 그럴만하다고 생각됩니다. 온 지 3년 좀 넘었는데 여전히 백인 친구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 좀 안됐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가기 싫다고 하던 군대를 갈까 할 정도로 한국이 재미있었다는 것은, 그 반대로 이 녀석이 미국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재미없는지를 보여 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집사람은 어떨까요? 처음에 와서 ESL 클래스 다니고, 개인 교습까지 받아가면서 의욕을 불태웠던 영어 공부는 일 년 만에 때려치웠습니다. 평생 안 하던 영어 공부가 미국 와서 일 년 반짝한다고 갑자기 되겠습니까? 저희 가족은 교회를 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한국 사람들의 숫자가 매우 적었습니다. 집사람의 친한 친구들은 매일 영어 수업을 같이 듣는 언니나 동생들이었는데, 가장 친한 사람 둘이 1년 후에 동시에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겁니다. 영어가 안되니, 아이 학교에 가서 상담도 못하고 은행 볼일도 못 보고 병원도 혼자는 못 가고, 친한 사람도 몇 명 없는데 그나마 어렵게 만든 친구들도 한국을 돌아간 거죠. 남편이란 인간은 회사일로 정신없어서 맨날 출장에 업무에 바빠서, 집에 개미 생겼다고 방역 업체 불러달라고 해도 차일피일 미루면서 안 도와주고...
어느 날 저를 붙잡고 정말 서럽게 펑펑 울더군요. 제가 안 도와줘서 미안하다고 싹싹 빌어서 넘어가긴 했습니다만, 미국 생활이 참으로 외롭고 고단했나 봅니다. 그 후에는 동네 컨트리클럽에 가입해서 한국 사람들끼리 부부 동반으로 골프를 치는 모임에도 나가고, 거기서 만난 형님 언니 부부들과 친해져서 나름 즐겁게 한주 한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영어 공부는 하지 않더군요. 완전히 포기했냐고 물어보니까, 더 이상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다고 하길래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회사 옮기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그때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만 집사람이 미국에 와서 자존감이 정말 많이 떨어졌더군요. 오히려 그러니까 제가 계속 제 주장을 고집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저는 잘 지내고 있나 생각해봅니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것은 저도 못지않습니다. 평생 이 회사를 다닐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관두면 제 발로 관두지, 이렇게 정리해고를 당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어요. 그나마 영주권 받고 나서 이 일이 벌어졌으니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바리바리 짐 싸들고 3년 만에 초라하게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전에 모시던 보스가 불러줘서 바로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긴 했습니다만, 한번 무너진 자존심을 다시 살리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쓴맛을 한번 봤으니, 미국 직장 생활의 비정함을 알게 되었죠. 마치 전 애인에게 심하게 차인 사람이 새로운 애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처럼, 새로 옮긴 회사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가늠이 잘 되지 않습니다.
영어도 그렇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국에서 영어 잘한다고 칭찬 많이 듣고 우쭐했는데, 미국 와보니 제가 어떤 자리에서 던 제일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영어 때문에 미국 온 게 아니고 업무 능력을 보고 나를 미국까지 불러준 거라고 자위를 해왔지만, 얼마 전의 정리해고로 그것도 내세울 것이 없어졌습니다. 새로운 직장에서는, 한국에서의 검증된 내 능력을 보고 뽑은 것이 아닙니다. 순수하게 미국 직장인으로서의 업무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거죠. 제가 한국에서 이민 온 지 3년밖에 안됐고, 그래서 영어가 유창하지 않다는 것은 아무런 변명이 되지 않는 겁니다. 이제 새로운 회사 출근한 지 한 달도 안되었는데, 전 회사에서 알게 모르게 받던 배려들, 한국이나 아시아권 고객들을 주로 담당하던 것들,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과 느끼는 편안함과 보이지 않는 지원들이 참으로 많았었구나를 느낍니다. 그런 거 하나 없이 이제 맨몸으로 미국 고객들만 상대하면서, 어찌 보면 미국 온 지 3년 넘어서 이제야 제대로 미국 회사를 다닌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스트레스가 많이 심해서, 그 핑계로 오랫동안 끊었던 담배도 다시 시작했지요. 이곳 캘리포니아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정말 적어서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한대 태우면서 오늘 하루도 잘 보내보자라고 결심하고, 중간중간에 한숨 돌리려고 나와서 파란 하늘을 보면서 한 대씩 꼬시르고, 집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수고한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한 대씩 피우는 맛이 제법 위안이 되더군요.
여전히 미국은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에 비해서 큰 물에서 놀면서 많은 경험을 하고, 인간으로서도 직장인으로서도 성장을 했습니다. 아들 녀석도 분명히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으면 많이 힘들어했을 겁니다. 그 덕분에 집에 항상 먹구름이 껴 있었을 거고, 그 와중에도 이런저런 모임과 회식에 항상 제 귀가시간은 한밤중이었을 거고, 우리 부부 사이도 이렇게 화목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집사람이 외롭고 힘들어할 때도 많습니다만, 반면에 가족 간의 사이가 더 돈독해졌으니 그리 밑지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나중에 한번 진지하게 물어봐야 하겠습니다. 준비를 좀 더 오래, 신중하게 잘하고 왔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