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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Mar 15. 2020

애쓴다~

이런거 영어로 딱 떨어지게 말하고 싶은데, 가능할런지...

한국에 살 때도 가끔 그럴 때가 있었는데 미국 와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는 영어 한마디를 듣고,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띠용~하는 느낌이 들면서, '과연 나도 저렇게 영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순간입니다. 어제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샌디에이고답지 않게 비가 꽤 내렸습니다. 아침에 회사에 도착해서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한대 맛있게 꼬시르고 들어가는 것이 일종의 출근 의식입니다. 비가 온다고 그걸 생략할 수는 없지요.


비가 퍼 붇는 와중에 사무실 건물 앞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사무실에서 제 앞자리에 앉는 동료도 마침 그때 출근을 하면서 마주쳤습니다. 굿모닝 하고 인사를 하고, 가방을 메고, 우산을 쓰고, 한 손에는 커피를 담은 텀블러를 들고 사무실 앞 휴식 공간으로 걸어가는 저를 보더니 그 친구가 'Where the hell are you going?' 이렇게 물어보더군요. 저희 회사는 정문 앞에 바로 주차자리가 있어서 차문 열고 바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면 되거든요. 근데 제가 바리바리 싸 들고, 우산까지 쓰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니까 궁금해서 한 질문입니다. 


여기서 그냥 평범하게 'Where are you going?' 이렇게 물어봐도 되지만, '도대체 어디 가는 거야?'라는 그 도대체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 hell이라고 하나 붙여준 거죠. 여기서 좀 더 험하게 하려면 우리가 잘 아는 그 f로 시작하는 단어를 붙여주면 되고요. 하지만 그 정도는 저도 합니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지만, 자꾸 써 보면 어떤 상황에서 이 hell을 붙여주면 맛깔난 표현이 되는지 그리 어렵지 않게 익혀지더라고요. 예를 들어 'What's going on?"이러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이런 느낌인데 'What the hell is going on?' 이러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런 거죠. 몇 번만 해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뒤통수를 맞은 것은 그다음에 이 친구가 썩소와 함께 날린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담배 한 대 피우러 간다고 했을 때 들은 딱 한마디죠. 그냥 그대로 번역을 하면 전혀 맛이 살지 않습니다. 영어와 한국어가 백 퍼센트 같을 수 없으니 가장 비슷한 느낌의 표현을 찾자면, '애쓴다~' 이 정도 뉘앙스랄까? 근데 저로서는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단어 하나로 그 상황을 표현하더군요. 그 단어는 저도 물론 잘 아는 단어입니다. 다만 그렇게 활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 못한 거지요.


비슷한 상황에서 저라면 뭐라고 했을까요? 그 사람과의 관계나 분위기에 따라서 다르게 말을 했겠지만, 아마도 'You are going through so much trouble for smoking a cigarette!' (담배 한 대 피우려고 참 고생 많이 한다) 뭐 이런 정도였지 싶습니다. 정확하게 이 표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trouble이나 effort 등의 단어를 써서 고생을 무릅쓴다는 점을 표현했을 것 같습니다. 그 친구는 이 상황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It's a dedication~'


참으로 점잖고 시의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에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아침에 들은 그 한마디에,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더군요. 과연 나도 언젠가 저렇게 상황에 딱 맞는 말을 저렇게 멋지게 할 수 있을까? 구질구질하게 trouble이니 effort니 이런 단어를 써서 복잡한 문장을 만들지 않고 저렇게 단순 명료하게 문장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최근에 회사 옮기고 나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데 약간 더 주눅이 들게 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Dedicate라는 단어가 얼마나 어려운 수준의 단어인지 저는 가늠이 잘 되지 않습니다. 언젠가부터 알고 있던 단어이고, 회사 업무를 하면서도 자주 쓰는 단어라서 제게는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객관적으로 어느 수준의 단어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마침 그런 사이트가 있더군요. Word Frequency Data (https://www.wordfrequency.info/free.asp?s=y)라고 현대 미국 영어에서 사용되는 단어의 빈도수를 보여주는 웹사이트입니다. 여기서 찾아보니 3837위에 올라있는 단어네요. 


신영준 박사의 Big Voca라는 책의 서문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 성인이 평균 4만 개의 단어를 알고 있다고 보면, 파레토 법칙에 따라서 우리는 그중의 20%, 즉 8,000개 정도의 단어를 익히면 외국인으로서 충분히 많이 단어를 아는 거라고요. 저는 첫 번째 "Core" 편만 사서 봤습니다. 그나마도 다 보지 못했습니다. 절반 정도 보다가 말았는데, 가끔 모르는 단어가 나오긴 하지만 대체로 아는 단어더군요. 이 편은 빈도수 높은 4,000개 단어가 나옵니다. 아마 두 번째의 4,000개 단어가 나오면 좀 상황이 다를 것 같습니다.


Dedicate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로 '헌신하다', '바치다', '전념하다' 이런 의미입니다. 따라서 Dedication이라는 명사형은 '헌신', '노력', '전념', '희생' 이런 정도의 의미가 됩니다. 자 그러면, 앞의 에피소드를 알고, 이 단어의 뜻을 알게 되면, 'It's a dedication'이라는 말이 '노력한다'라는 말이 될 수 있고, 상황에 적절하게 쓰면 바로 '애쓴다' 이런 뉘앙스가 된다고 유추할 수 있을 듯합니다.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웠을 때, 그 방법을 알고 난 사람들이 별거 아닌 듯이 이야기한 거와 같은 원리죠.


제가 궁금한 것은 이겁니다. 제가 4,000 단어던 8,000 단어던, 통계적인 기준에서 영어를 충분히 유창하게 할 수 있을 수준의 단어를 알고 있다고 해서 정말로 미국 사람들 말하듯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힘들다면 왜 힘들고, 혹시 그 노력과 시간을 단축할 방법은 없을까? 아니면 이미 나이를 먹고 영어를 제2외국어로 공부한 사람이, 나이 50 다 돼서 미국 와서 생활을 하는 정도로는, 절대 이렇게 원어민처럼 세련된 영어를 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일까? 그러니, 차라리 헛된 꿈은 포기하고, 오히려 미국 사람처럼 말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악센트가 있고 단어의 사용이 어색해도, 어쨌거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 집중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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