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타이킴 Apr 09. 2020

코로나 사태와 나이롱 뽕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3월 16일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으니 벌써 집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4주째가 되어갑니다. 새로운 회사에 입사해서 사무실에 한 달도 가보지 못하고 집에서 일하는 것도 묘한 기분입니다만, 그나마 저는 사무실에 출근이라도 해 봤죠. 먼저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가 이번 주부터 우리 회사로 옮겼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친구도 저랑 마찬가지로 샌디에이고에 사는데, 출근한 첫 주부터 재택근무네요. 스카이프로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참 묘한 타이밍에 회사 옮기게 되었다고 서로 웃고 말았습니다.


먼저 일하던 회사도 소프트웨어 회사이고 샌디에이고 사무실에 사람도 별로 없는 데다, 워낙 출장도 많고 아침저녁으로 전화 회의도 많아서 사무실에 가지 않는 날도 많았습니다. 재택근무라는 환경에는 꽤나 익숙하고, 은근히 편한 점도 많습니다. 아침부터 면도하고 밥 먹고 옷 차려입고 하는 수고를 피해도 되니, 사실 일하는 시간은 더 많기도 합니다. 그때도 출장이다 뭐다 해서 한참만에 사무실 가면, 동료들과 반갑게 수다를 떨면서 서로 무슨 일 하고 있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더랬죠.


코로나 사태로 4주째 집에서 일하면서 그런 사소한 시간들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전에 일하던 회사는 오랫동안 같이 일한 친구들이라서, 한동안 못 보다가도 다시 보면 할 말도 많고 오랜 친구처럼 편안한 느낌도 있고 그렇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그나마 사무실도 쪼끄매서 몇 명 안되는데 그마저도 한 달이나 겨우 본 사이죠. 디트로이트나 산타클라라 사무실 사람들은 얼굴 본 사람보다 못 본 사람이 더 많고요. 돌아오는 금요일은 부활절 휴일이라 Good Friday라고 해서 회사 공휴일입니다. 이번 말고 다음 금요일에는, 서로 손에 손에 와인이랑 맥주 한잔씩 들고 팀빌딩을 겸한 온라인 화상 회의를 하자고들 합니다. 재미있을 것 같네요.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골프 모임이 있어요. 주말마다 다섯 부부가 모여서 운동 같이하고 식사도 하고, 돌아가면서 집에 모여서 술도 한잔하면서 카드도 하고 화투도 하는, 저희 미국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할만한 모임입니다. 골프장도 문을 닫았고 술집도 닫았으니 4주째 못 모이고 있습니다. 서로 물건 주고받을 일이 있어서 집 앞에서 잠깐씩은 봤습니다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안부만 묻고 물건 주고받고 곧 헤어지죠. 한두 번 정도는 스카이프로 연결해서 각자 술 한잔씩 하면서 한 시간씩 수다를 떨었습니다. 얼굴 보는 것만은 못해도, 그나마 기술의 도움으로 컴퓨터 화면으로라도 얼굴 보면서 한잔씩 하니 좀 갑갑함이 덜 해서, 새삼 마이크로소프트에 고맙게 생각했습니다. 무료로 이런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 주니까요.


골프야 한동안 못하지만, 그거 말고도 할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같이들 모이면 훌라도 하고, 고스톱도 치고 포커도 하면서 몇 시간을 하하호호 재미있게 보냈었거든요. 얼마 전에 스카이프 모임을 하면서 문득, 우리가 가장 즐겨하던 게임이 생각났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텐데, 나이롱 뽕이라고 화투로 하는 참으로 간단한 규칙의 게임입니다. 물론 스카이프로 그걸 할 방법은 없습니다만, 어차피 온라인으로 만나는 것이니, 혹시 온라인으로 게임을 하면서 술을 한잔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모바일 게임이 있을까 싶어서 구글 마켓을 뒤져봤는데, 전부 고스톱과 블랙잭만 있고, 그것도 어떻게든 자기네 서버에 접속하게 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게임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아는 친구들끼리만 모여서 하는 것은 못 찾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PC 게임도 찾아봤는데, 그쪽은 상황이 더 안 좋더라고요. 온라인 카지노라고 하는 것들은 거의 뉴스에 나올만한 좀 불법성이 다분해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겨우 겨우 훌라라고 하는 게임을 찾긴 했는데 오래전 것이라 잘 되지도 않았고, 친구랑 치는 것이 아니고 컴퓨터랑 하는 것처럼 보여서 바로 접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모임에서 두 번째로 젋은피이고, 유일하게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일하는 제 입장에서는 여간 아쉽지 않았습니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하는 온라인 게임이 이렇게 없나 하는 한탄도 들었고요. 반면에 이해는 갑니다. 게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서버를 운영하면서 판을 벌리고 아이템을 팔고 해야 돈이 될 텐데, 친구들끼리만 모여서 하는 게임을 왜 만들겠습니까. 게다가, 나이롱 뽕은 워낙에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마이너 한 고전 화투 놀이이니, 누군가 관심을 갖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만들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주 전쯤에 그런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나름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20년 넘게 일을 했지만, 개발자로 일한 것은 아니고 필드 엔지니어였으니 쉽지 않은 일이죠. 게다가 제가 일하는 분야는 자율주행 자동차나 철도 제어기 같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라고 하는 분야인데, 게임은 고사하고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기업용 소프트웨어나 윈도우에서 돌아가는 개인용 소프트웨어 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임 개발이라는 주제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어마 어마한 정보가 나오더군요. 근데 제가 이제 와서 화려한 3D 게임을 만들 능력도 안되고 시간도 없잖습니까. 그래서 최대한 검색의 주제를, 초보자도 쉽게 게임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도구를 찾아 헤맨 지 며칠 만에, 괜찮은 소프트웨어를 찾았습니다.


맨날 개발 관리만 하다가 정말로 오래간만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직접 할려니 진도가 무지하게 안 나가더라고요. 하지만 재택근무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주경야독해가면서 공부하고 조금씩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2주 조금 넘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얼기설기 대충 만들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돌아가는 것 같아서 이번 주말에 우리 모임에서 한번 시연을 해 보려고 합니다. 


사람이 뭔가를 한다는 것은 의지와 재능이 합쳐져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들 하죠. 저는 이번에 어설프게 인생 첫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동기부여가 어쩌면 의지나 재능보다 더 앞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굉장한 재능이 있다고 하기도 힘들고, 새로운 회사로 옮긴 지 한 달 만에 코로나 사태를 만났으니, 뭐 얼마나 대단한 의지를 갖고 게임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매주 같이 모여서 놀던 모임 사람들하고, 뭔가 이 상황에서 좀 더 재미있게 온라인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동기 하나를 붙잡고, 좌충우돌 해 가면서 평일 저녁과 주말을 꼬박 투자해서 여기까지 왔네요. 


근데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소박한 이유로 시작했는데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영 헤매면서 생각만큼 진도가 잘 안 나가니까 약간 오기 비슷한 것이 생기고, 그게 결국은 틈만 나면 PC 앞에 앉아서 새벽까지 자판을 두들겨되는 의지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조금씩 익숙해지고, 조금씩 게임이 모양을 갖춰가기 시작하면서 이게 만들어가는 재미도 주기 시작하더라는 거죠. 아직도 재능이라고까지 할만한 것은 없습니다만, 3주 전에 처음 시작할 때에 비하면 제법 익숙해져서, 이제는 진도도 팍팍 빼고 있습니다. 일단 우리 모임 단체 카톡에, 이번 주 금요일 정도에 한번 모여서 해 보자고 질러놨습니다. 오늘은 수요일이니 저녁에 좀 열심히 하고, 내일 목요일 저녁에도 좀 더 하고, 특히 금요일은 휴일이나 오전/오후 열심히 작업해서 잘 돌아가게 만들어야죠. 저녁에 한잔 하면서, 제가 만든 나이롱 뽕 게임으로 같이 즐겁게 놀면 정말 보람 있을 것 같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