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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Jun 21. 2020

Juneteenth 공휴일

미국 노예해방의 역사와 정치 및 기술의 정의롭지 않음에 대한 뒤늦은 단상

어제 업무를 하기 위해서 아웃룩 프로그램을 켰는데 Juneteenth Day라고 나오더군요. 무슨 날인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미국의 노예해방과 관련된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일 관계가 대한민국의 역사와 국민 정서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지식이듯이, 미국에서의 흑백 관계, 더 크게 봐서 인종문제는 미국의 역사와 국민 정서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되는 듯합니다. 미국 역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지만, 이번에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계기로 불붙은 흑인 인권운동 (BLM: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은 소중하다), 그리고 뿌리 깊은 미국의 인종문제에 대해서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다시 준틴스(Juneteenth) 데이로 돌아가면, 이 이름은 6월 (June)과 19일 (Nineteenth)의 합성어로, 6월 19일을 줄여서 부른 이름이라고 하네요. 1865년 6월 19일 텍사스주에 연방 군인이 들어와서 흑인 노예들이 자유의 몸임을 선언한 기념일이라고 하네요. 지금으로부터 150년 정도 전의 이야기입니다. 실제 미국의 노예해방 선언은 그 2년 반전인 1863년 1월 1일에 이루어졌는데, 그때는 한참 남북전쟁의 중간이어서 혼란스럽다가 1865년 4월에 남부군이 항복을 하면서 종전이 되었고, 원래의 노예해방 선언으로부터 30개월이나 지난 후에 남부의 텍사스주까지 실효를 발휘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서로 다른 경제구조와 문화를 갖고 있는 다른 지역 사이에, 정치적인 견해의 차이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차이가 틀림이 아니고 다름임을 인정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교류를 하고 타협을 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면 좋을 텐데, 국가의 권력에 대한 정치의 욕심이 개입하면 다름이 틀림이 되면서 상황이 폭력적으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미국의 북부와 남부의 갈등도 이런 지역 갈등에, 연방의 권력과 정치가 개입하면서 전쟁으로 비화한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유명한 고전 영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요 배경이 되는 농장이 목화 농장입니다. 남부의 평화로운 농장 분위기에서 사이좋게 지내는 농장주와 흑인 노예들의 모습을 그려서, 노예제도를 미화했다는 논란이 최근 들어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목화 열매의 안에 씨를 싸고 있는 솜털을 수확해서 솜과 면직물을 만들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때 들어가는 노동력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그럴 것 같긴 합니다. 일단 목화를 하나하나 따내는 것에서, 목화솜에 붙어있는 목화씨를 발라내는 일까지 전부 수작업으로 해야 하니까요.


이에 얽힌 아이러니한 일화도 있습니다. 재배 조건도 까다롭지 않고 생장기간도 짧은 육지면이라는 품종은, 끈적한 씨를 목화솜에서 분리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흑인 노예 한 사람이 하루에 130kg 정도의 목화를 딸 수 있는데 반해, 씨를 분리하는 작업이 어려워서 하루 처리량이 1kg도 안되었다고 하니, 수십 명이 달라붙어서 일을 해야 했고, 따라서 생산성이 그리 좋지 않으니 큰돈을 벌기가 힘들었겠죠. 근데 당시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엘리 휘트니 (Eli Whitney)라는 사람이 조면기 (Cotton Gin)라는 기계를 발명한 겁니다. 수십 명이 둘러앉아서 하던 목화솜의 씨 분리 작업을 이 기계를 이용하면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순진하게 생각하면, 이렇게 사람의 일손을 덜어주는 기계가 발명되면 고생스럽게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의 형편이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이 기계의 발명으로 목화 농장의 생산성이 수백 배로 뛰어 농장주들이 큰돈을 벌게 되었고, 그래서 더 많은 노예들을 고용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목화 농장이 큰돈이 되지 않을 때는, 인간적인 감정으로 노예제도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어마어마한 돈이 걸리게 되니까 생각이 달라졌을 거고, 남부는 점점 흑인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가지게 되었고, 이는 남북 전쟁의 발단이 된 것이죠. 엘리 휘트니 본인이 고생하는 노동자의 삶을 생각해서 이런 발명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 뒤에 제품 특허 소송도 벌이고 한 것을 보면 그저 돈을 벌려는 목적이었겠죠. 특허에 대한 소송에서 패하면서 막상 본인은 이 발명으로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고 합니다만.


미국의 남북 전쟁과 흑인 노예 해방에 관해 자료를 찾아보다가 링컨 대통령에 대해서도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아마도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들 가운데 한 명이고, 노예 해방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이 양반은 노예 해방에 그렇게 큰 사명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하네요. 물론 원칙적으로 노예제도에 반대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통령 선출 과정에서도 온건적인 노선을 표명했고,  1863년 1월 1일에 발표한 노예해방 선언도 남부의 주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논란이 되는 것은, 이미 1861년에 남부의 사우스 캐롤라이나주를 필두로 총 7개 주가 연방 탈퇴를 선언했고, 이를 계기로 남북전쟁이 시작되었거든요. 근데 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새해 첫날, 그 당시 "반란 상태에 있는 주들"의 노예들이 그날부터 자유인임을 연방 정부가 보장해주겠다는 거거든요. 근데 이미 연방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반란 생태에 있는 주들이 그 법을 인정할리 없고, 막상 연방에 남아있는 주들의 노예들에게는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이니,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하다고 여겨지는 거고, 실제로도 이 선언으로 남부의 30만 명 가까운 노예들이 탈출을 해서 남부 연합에 큰 타격을 주었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정치 유세를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의 한 복판에서 이런 큰 군중 집회를 여는 것에 대해서 우려와 비판의 시각이 많습니다만, 워낙 마이웨이 아니면 하이웨이 스타일의 대통령이라, 그러거나 말거나 강행을 한다고 합니다. 지난 5월에 링컨 기념관에서 열린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을 링컨 대통령과 비교해서 구설수에 올랐었죠. 링컨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푸대접을 받은 미국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자기는 그것보다도 더한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도 했고요. 2019년 영국 방문 중에는, 가장 최근의 여론 조사에서 자기가 링컨을 뛰어넘는 공화당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사람으로 나왔다고도 했습니다. 1860년대에 무슨 여론 조사 결과를 했길래 그렇게 이야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원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양반이니 본인이 그렇게 믿는 거야 말릴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미국 남북 전쟁의 역사와 노예 해방에 얽힌 이야기를 짧게나마 찾아보면서, 정치라는 것은 제가 바라는 것처럼 정의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고, 대의로 포장된 권력 투쟁의 역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은 정치의 그런 단면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거죠. 갑자기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입니다. 그나저나 지금 이 글 쓰면서 CNN에서 털사의 트럼프 유세 상황 보도를 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 저녁에 입맛 쓴 사람들 많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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