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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Jun 30. 2020

마스크는 역시 검마

참 마스크 쓰는 거 싫어하는 미국 사람들

요 근래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정말 심각합니다. 제가 사는 샌디에이고만 해도, 하루에 백몆명에서 이백 몇 명 정도 확진자가 나오다가 최근에는 거의 하루 500명에 육박하는 신규 확인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교회도 다니지 않고 생활 반경도 아주 좁아서, 주변의 아는 한국 교포들도 그리 많지 않은데 그 와중에도 확진받은 분 이야기도 나오고 하니, 정말로 우리 일상 주변까지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미국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보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종종 있다고 뉴스를 보는데, 미국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가 주변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영상이 가끔 올라오곤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처럼, 막 난동을 부리면서 자기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거나 쓰면 안 되는 사람이라거나 하는 주장을 한다고 하네요.


그런 일부 정신 나간 사람들 말고도, 서양 사람들은 대체로 마스크를 쓰는 것을 꺼려한다고 합니다. 오늘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나온 기사를 보니, 유럽에서 (2월에서 5월 사이에) 설문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유럽 사람들 가운데, 특히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그리고 핀란드가 속한 북유럽 사람들은 10%도 안 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한다고 응답을 했다네요. 미국의 경우에도 지금 난리가 난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카운티에서는, 얼마 전에 보건 국장이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항을 발표했다가, 살해 위협을 받고 본인은 바로 사임을 하고, 그 조항은 의무에서 권고로 바뀐 일이 있었죠.


트럼프 대통령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US Surgeon General (미국 공중 보건국 국장)도 지난 3월에 트위터에 "Seriously people - STOP BUYING MASKS!"라고 올렸습니다. 사람들에게 제발 마스크를 사지 말라고 한 건데, 의료인들 쓸 마스크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건강한 일반인에게는 마스크가 필요 없다고도 했었죠. 그 뒤에 이 내용에 대해서 사과를 하고, 마스크를 쓰는 것을 권장한다고 했습니다. 코로나 사태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파우치 박사도 비슷한 무렵에 같은 이야기를 했었고요. 대통령부터 관련 분야 전문가들까지 나서서 이러고 있으니, 원래도 마스크 쓰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안 쓰고 다니는 계기가 되었죠.


미국에 온 한국 사람들이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미국 문화가 뭐 한두 가지가 아니겠습니다만, 그 가운데 서로 대화를 할 때 꼭 눈을 쳐다보고 대화를 한다거나, 근냥 길다가 마주쳐도 꼭 눈을 보면서 Hi 또는 Hello 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 그리고 무슨 가게 점원이던 보험회사 직원이든 하여튼 어떻게든 대화가 시작되면 서로 통성명을 하고 나서, 이름을 부르면서 대화를 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참 친절하고 상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각각의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누군지 모를 익명의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고, 버라이존 통신 회사의 앨리스가 저를 도와주는 것이고, 옆집의 무슨 무슨 회사를 다니는 톰이 무슨 무슨 사업을 하는 제리와 대화를 하는 와중에 소프트웨어 업무를 하는 타이 킴을 소개해주는 그런 것이죠. 그게 오래 본 사이가 아니고, 수영장에서 수영하다가, 사우나에서 같이 땀 흘리다가, 혹은 골프 치다가 생전 처음 본 사람과도 서로 정체 파악을 하고, 이름을 불러가면서 대화를 하더군요.


정체성은 영어로 아이덴티티 (identity)라고 합니다. 본인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 그중에서도 사진이 있어서 본인 확인이 가능한 신분증을 Photo ID라고 하는데, 여기서 ID도 Identification의 약자이죠. 그래서 UFO가 우리말로 비확인 비행 물체라고 하는 것은 Unidentified Flying Object를 번역한 것인데, 확인이 되지 않는 것을 Unidentified라고 한 것입니다. 이 UFO라는 것도 뭔가 날아다니긴 하는데 식별이 되지 않으니 뭔가 불편하고, 그래서 뭐 정부의 음모론이니 어쩌니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서로 눈을 마주 보고 통성명을 하면서 자신과 상대방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개인대 개인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양 사람들 입장에서는,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마스크라는 것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예의 바른 한국 사람들이, 미국 와서 대화를 할 때, 특히 회사에서 상사와 대화를 할 때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시선을 피하면서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미국 사람들은 이 사람이 뭔가 찔리는 것이 있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러니, 마스크로 얼굴을 반이나 가리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하여튼 매우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 같은 경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양반인데, 마스크를 쓸 경우 약하게 보이는 것이 싫어서, 주면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렇게 끝까지 버티면서 안 쓰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오늘자 기사에도, 런던의 미들섹스 대학과 버클리 수리과학연구소 (MSRI: Mathematical Science Research Institute)의 공동 연구 결과에 보면 여성에 비해서 남성들이, 마스크를 쓰는 것이 더 부끄럽고, 쿨하지 않고,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네요.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연예인들이 본인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으니, 어찌 보면 코로나 사태를 맞이해서 일반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는데 큰 거부감이 없도록 하는데 도움을 준 면이 있단 말이죠. 저는 사실 한국에 살 때도 연예인들이나 젊은 친구들이 멋으로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이 왜색이라고 생각되어서 거부감이 좀 들었거든요. 무슨 근거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고, 하여튼 일본 연예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근데 이번에 검은색과 하얀색 마스크를 번갈아가면서 써 보니까, 역시 검은색이 더 "쿨"해 보인다는 느낌이더라고요. 뭐 그래서 덕분에 저도 검은색 마스크에 대해서 갖고 있던 편견을 벗는 계기가 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빨리 이 사태가 해결돼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얼굴 떳떳이 드러내고 톰하고 제리 하고 침 튀겨가면서 시원하게 맥주 한잔 하는 그런 날이 얼른 다시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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