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걸린 고독과 자발적인 고독의 시너지
최근에 읽은 책 (박홍규, 박지원,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사이드웨이, 2020)에 두 가지 다른 종류의 고독에 대한 의미 있는 정의가 나와있어서 그 부분을 옮겨봅니다.
'앞에서 말한 loneliness는 비 자발적이고, 공간적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 자신이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속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solitude는 다릅니다. solitude는 이 개념을 깊이 파고든 말라르메와 니체의 작품에서 잘 표현되듯 모든 것을 불신하고 깨뜨리며 오직 자신을 신뢰하는 적극적이고 강인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미국에 이민을 와서 산지 이제 3년 반 정도 되었습니다. 최근의 COVID-19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모습이나 인종 차별의 실태, 그리고 우리나라 못지않은 혹은 한참 뛰어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를 보면서 미국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졌습니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자발적인 고독의 실마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홍규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서양에서 loneliness의 개념은 17세기에 존 밀턴이 쓴 '실낙원'에 처음 등장하는데, 그때는 거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외로움을 나타내는 표현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낭만주의 시대로 들어오면서 자발적인 고독을 강조하는 solitude의 개념이 생겨났다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부터 미국에 사는 것을 꿈꾸었던 것은 아마도 그리 넉넉하고 평탄하지 않는 현실에서의 도피, 혹은 도약을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팍팍하고 가진 것이 별로 없으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어서 인생의 판을 한번 바꿔보고 싶다는 의미였겠죠. 근데 그에 따르는 노력과 의지가 부족해서 잘 되지 않았고, 오히려 생각지도 않게 나이 50이 돼서야 미국에 올 기회가 생겼습니다. 우연과 행운이 겹쳐서 미국에 올 기회가 생긴 것이니 순수하게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보기가 쉽지 않지만, 하여튼 그 기회를 잡은 것은 저의 의지였으니 반 자발적이라고 봐도 좋겠습니다.
미국에 와서 첫 일 년 동안 자리를 잡으면서, 좌충우돌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습니다만, 한국에 살던 것에 비해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거의 단절 수준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순해졌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지도 않았고, 회사에 한국 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니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관계를 쌓는 것이 쉽지 않았고, 회사의 미국 동료 직원들과는 업무야 서로 잘 하지만 개인적인 관계를 쌓는 문화는 아니었으니까요. 한참 전에 한국에서 같이 일하다가 먼저 샌디에이고에 와서 살고 있던 후배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전부 새로운 만남이었으니, 우리 가족의 대인 관계는 3년 반전에 미국에 오면서 리셋되고 재부팅된 거죠.
아들은 여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근처 사는 한국 녀석들을 비롯해서 친구가 몇 명 생긴 듯합니다. 집사람도 저와 같이 골프랑 합창단 활동하면서 생긴 친분들이 늘었지만 친하다고 할만한 사람들은 두 손으로 다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아는 사람들이 좀 있긴 하지만 가끔 만나서 밥 먹고 술 한잔 하는 사이지, 친한 친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의 문화 자체가 워낙 개인과 가족 중심이라서 한국처럼 온갖 혈연, 학연, 지연으로 얽히고설킨 그런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단순해진 인간관계 덕에 저희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한국에 비할 수 없이 많아졌습니다. 아들 녀석이야 워낙 학교 생활과 게임의 세계에 빠져있으니 우리와 뭔가를 일부러 많이 하지는 않지만, 하여튼 공간적으로 같이 있고 매일 얼굴 보고 대화하면서 지내고 있지요. 저도 코로나 사태 이후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더욱 외부 활동이 없어졌지만, 그전에 출퇴근을 할 때도 회사에서의 회식이라던가 업무 외의 인간관계의 의한 활동은 거의 없었습니다. 출장이 좀 많아서 집을 비울 때가 있었지만, 그 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죠.
앞에서 언급한 박홍규 선생은, 보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고독, 사회와 정치 등 각종 집단에 휩쓸리지 않는 주관을 지닌 힘 있는 고독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우리 가족의 이민 생활은 외부에서 주어진 공간적인 의미에서의 고독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하지만 비 자발적이고 공간적인 고독 덕분에 좀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고독을 실천할 기회가 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로 특수한 상황이라서 거의 모든 외부활동이 중단되었으니 더 그렇지만, 언젠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물론 약간 더 사회생활을 하고 각종 관계에 의한 모임에 나가고 하겠지만, 그런 횟수가 그리 많지도 않을뿐더러, 혹시 원치 않을 경우 언제든 중단하는 것이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경우에도, 미국에 온 이후에 책도 많이 읽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글도 쓰고, 하고 싶었던 프로그래밍도 다시 시작하는 등, 외부와의 관계에 힘을 쏟기보다는 스스로를 위한 시간들을 더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바깥의 눈치만 보면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집중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내키지 않는 일을 줄이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서 살게 되더라도 그렇게 예전만큼 각종 관계에 휘둘리면서 사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