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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Dec 14. 2020

미국에 살아도 영어 안 늘어요

제대로 맘먹고 노력하지 않으면...  

얼마 전에 한국의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문득 그 친구가 '요새는 브런치 안 하세요?'라고 묻길래 회사 일이 좀 바빠져서 뜸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비록 소수의 독자라도 내 글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의 게으름을 반성하면서 다시금 미국에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의 소소함이라도 글로 남겨야 하겠다는 의욕을 얻게 되었습니다. (크리스, 보고 있나?   ^^;)


미국 와서 살게 된지 벌써 4년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갔나 싶을 정도로 어리바리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첫 3년은 그냥 다니던 회사에서 보내줘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왔고, 업무도 하던 일 연장이고 사람도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라서 너무 대충대충 보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년 전에 회사를 옮기게 되면서 여러 가지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새로운 회사로 와서, 그동안 하던 일과 어느 정도 연관이 돼(니까 뽑아줬겠)지만, 그동안 익숙하던 아시아 쪽 회사들과의 비즈니스가 아닌, 순수하게 미국 고객들과 업무를 하면서 많이 헤매었습니다. 영어를 하는 것도 훨씬 어려워졌고, 일하는 문화나 의사소통의 방식도 달라서 적응을 해야 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이 과정에서 도움이 된 건지 일을 더 힘들게 한 건지는 좀 헷갈리네요. 모든 업무가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니까, 제가 약간 시간을 들여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실시간 소통의 어려움에서 오는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는 면에서는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사람이 사람과 일을 할 때 얼굴을 보고 밥도 같이 먹고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야 제대로 된 관계가 형성이 된다고 믿는 제 입장에서는, 온라인 회의와 이메일 그리고 업무 시스템의 아이콘으로만 보이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뭔가 좀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새로운 회사에서의 업무 때문에도 그렇고, 또 가끔씩 연락이 오는 인터뷰나 아르바이트 기회 등을 보면, 지난 4년의 시간을 아깝게 보냈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가 미국 오기 전에 했던 착각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영어를 꽤 잘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현지인들 만큼은 못하겠지만, 미국에서 한 번도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이 이 정도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이 정도 영어면 현지에서 업무를 하는데도 통할 것이라는 것이 그 첫 번째 착각이었습니다. 물론 기존의 회사에서, 비슷한 업무를 하면서 사무실만 서울에서 샌디에이고로 옮겼을 때는 그 착각이 어느 정도 통했지만, 새로운 회사로 옮기면서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바닥으로 추락을 했었습니다. 


두 번째 착각은, 미국에 오면 영어가 저절로 늘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가끔 했던 말이, '내가 미국에서 한번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영어를 하니, 내가 미국에만 가면 다 주거쓰~'였습니다. 근데 막상 미국에 살아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미국에 살아도 영어 절~대 늘지 않습니다. 물론 영어가 좀 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못 알아듣던 인사말이 들리고, 식당에서 주문을 하는데 좀 편해지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할 때 혀 막 굴리면서 현지 사람들처럼 하고, 한국에서는 절대 안 쓰던 말을 일상처럼 쓰게 되면서요. (오케이와 올롸잇: https://brunch.co.kr/@tystory/26 참고) 


하지만 그게 착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그건 말하자면 잔기술이 는 거고 이쪽 관례에 익숙해진 것이지, 영어가 늘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주말판 Wall Street Journal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작권에 걸릴까 싶어서 일부러 해상도를 낮게 사진을 찍어서 내용을 읽기는 힘드실 겁니다. 온라인판에도 있긴 한데 아마도 유료 구독자만 전문을 볼 수 있게 해 놓은 것 같네요. (https://www.wsj.com/articles/steven-soderbergh-on-let-them-all-talk-and-the-future-of-movie-theaters-11607630833)


이렇게 보면 글자가 많아 보이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렇게 긴 내용은 아닙니다. 하여튼, 무슨 대단한 경제 분석 기사도 아니고, 약간 신변잡기 같은 이 기사를 읽는데 제가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니까 이렇게 나오네요:

1. auteur: 개성파 영화감독이랍니다. 이런 단어 모르는 것은 오케이.

2. collage: 우리가 미술시간에 배운 그 콜라주 기법의 작품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뭐 짐작은 했지만 확실치 않아서...

3. spook: 섬뜩하게 하다는 뜻이랍니다. 전혀 처음 보는 단어.

4. "Unsane" and "Highflying Bird"라고 나와서 뭔가 했는데, 이 감독의 영화 작품이더군요. 이런 거 물론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면서 현지인들하고 일하면, 영어 실력이 그냥 단순하게 언어로서의 영어가 아니라, 문화에 대한 이해까지를 포함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요새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5. dolly: 이동식 촬영 기대랍니다. 업계 용어네요.

6. celluloid: 이거는 아마도 우리가 아는 그 필름 형태의 셀룰로이드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전 찾아보면 영화라는 뜻도 있고요. 근데 원문에 이 단어가 사용되는 부분을 보면 'I might shoot it on celluloid again.' 이렇게 나옵니다. 그니까 단어 뜻만으로는 해석이 잘 안되고, 아마도 디지털 방식 말고, 어떤 효과를 위해서 아날로그 필름으로 찍는 것을 의미하기 위해서 쓴 단어로 해석했습니다.

7. bling: 얘는 제가 갖고 있는 전자사전에는 나오지도 않는 단어입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니, 뭔가 비싸고 화려해 보이는 의상이나 보석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그 '블링 블링'하다고 할 때 그 단어인가 봅니다.

8. shake out: 미국 현지에서 영어를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동사구입니다. 단어 자체는 모를게 하나도 없죠. 근데 합쳐놓으면 '뭐래는 거야?' 이런 조합이 참 많습니다. 사전에 찾아보면 (1) 먼지를 털어내다 (2) 흔들어 펼치다 뭐 이런 정도의 뜻이 나옵니다. 그 정도까지는 왠지 느낌적인 느낌으로 때려 맞출 수도 있다고 해도, 막상 문장을 읽어보면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요렇게 쓰였습니다:


'I ultimately decided to let it shake out.'


여러분들은 이 문장이 해석이 되시나요? 이 문장 하나면 보고 문장이 해석이 되신다면 분명히 저보다 영어를 잘하시는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문장만 봐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 앞의 내용을 보고 대충 짐작을 했거든요. 이 감독이 13인치 맥북 프로로 편집을 하는데, 새로운 신형 맥북을 보고 고민을 했다는 겁니다. 살지 말지. 지금 있는 것도 충분히 괜찮아서요. 그리고 마지막에 똭 저 문장이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뭐 아무래도 사지 않기로 했다는 의미여야 문맥의 흐름상 맞아떨어지잖아요.


근데 그렇게 해도, 사실 이게 왜 신형 맥북을 사지 않기로 했다는 의미가 되는지 한 번에 와 닿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메리암-웹스터의 인터넷 사전을 펼쳐 보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가 오더군요 (https://www.merriam-webster.com/dictionary/shakeout). 그 설명에 따르면 shake out에는 'to prove to be in the end'라는 의미가 있는데, 그 의미와 함께 그 아래의 예문을 보면 바로 와 닿습니다: 'wait to see how things shake out.' 즉, 일이 어떻게 풀릴지 한번 두고 보겠다. 이런 의미죠. 그래서 그 신형 맥북도, 일단 당장 사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갖고있는 맥북을 계속 쓰면서 상태를 봐서 결정하기로 했다는 해석이 나와야 제대로 이해를 한 것입니다.


미국에 그냥 "사는" 것만으로는 영어가 늘지 않습니다. 신문을 보고 단어를 찾아보던, 미국 뉴스와 드라마를 보면서 듣기 연습을 하던, 본인의 말을 녹음해서 들어보면서 발음이 어색한 부분을 찾아서 연습을 하던,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영어가 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지금 잘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드네요. 근데, 지난 일 년간 제대로 미국에서 취직해서 미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하루하루 점점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경험이 풍부하고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있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인한 의사소통의 제약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참으로 억울하겠다는 생각이죠. 조만간에 관련 주제로 유튜브 채널도 하나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저 스스로에게도 자극이 되고, 혹시 다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제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요. Stay tun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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