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시간을 바꿔서 사람 헷갈리게...
한국에서는 잠깐 하다가 말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서머타임(유럽에서는 Summer Time, 미국에서는 DST: Daylight Saving Time)을 실행합니다. 봄이 되어 일출 시간이 빨라지면 시간을 한 시간 앞으로 당기고, 가을이 되어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 시간을 한 시간 뒤로 늦추는 방식이죠. 3월의 두 번째 일요일의 새벽 2시가 갑자기 새벽 3시가 되고요, 11월의 첫 번째 일요일의 새벽 2시는 갑자기 새벽 1시가 되는 방식입니다.
2021년의 경우 3월 14일이 3월의 두 번째 일요일이니, 그날은 23시간밖에 없는 것이고, 평소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면 한 시간 덜 자는 셈이 됩니다. 반대로 올해 11월 7일이 11월의 첫 번째 일요일이니, 그날 2시가 1시로 "빠꾸"를 하게 되면서, 같은 시간에 일어나게 되면, 한 시간을 더 잘 수 있는 것입니다. 뭔가 대륙적인 스케일의 조삼모사라고나 할까요? ^^
집에 시계가 여러 개 있는데, 자동으로 서머타임을 지원하지 않는 시계가 훨씬 많아서, 일 년에 두 번씩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시계의 시간을 다시 맞춰줘야 합니다. 별로 그렇게 대단한 효과가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유난을 떤다고 생각합니다만 뭐 그러려니 하면서 맞춰서 살고 있습니다만 일하면서 좀 더 현실적인 부분은 타임존(Time Zone)에 관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일할 때도 미국이랑 유럽이랑 일을 항상 해 왔으니까, 국제적인 시차에 대해서는 익숙한 편입니다. 대략 대륙마다 8시간 정도씩 차이가 나는 것으로 생각해서, 해가 뜨는 기준으로 한국이 제일 먼저 해가 뜨고, 8시간 정도 후에 유럽에 해가 뜨고, 거기서 다시 대략 8시간 정도 후에 미국이 해가 뜨고 이렇게 대충 계산합니다. 따라서, 한국에 해가 뜨는 오전이면, 유럽은 한밤중이지만, 미국은 전날 떴던 해가 이제 슬슬 지고 있는 상황이니 오후가 되는 거죠. 그리고, 한국에서 오후가 되면, 이제 유럽에 해가 뜨면서 업무가 시작될 시간이 되고요.
그런데 미국에 와서 일을 하게 되니까, 여기는 국내에도 시차가 있잖아요. 한국에 있을 때는 이보다 더 복잡하게 유럽과 한국과 미국의 업무를 조율하면서 일을 했으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여기는 서부와 동부가 꼴랑 3시간 차이 나는 것뿐이니까요. 뭐 그렇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또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도 아니더군요.
한국에서 일할 때는, 대부분 정해진 미국 사무실의 위치, 혹은 유럽 사무실의 나라에 따라서 반복되는 업무이고, 따라서 어느 정도 패턴이 정해져 있습니다. 근데 미국은 아무래도 국내 업무이다 보니까, 어디서 누가 들어올지를 미리미리 안다기보다, 회의 들어가서 인사하면서 알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니까, 저는 서부의 샌디에이고에 있고, 저쪽은 디트로이트에 있으면 그쪽은 동부 시간대이니 저랑 3시간 차이가 나는 겁니다. 이렇게 친숙한 곳이면 별 문제가 없는데, 잘 모르는 동네면 헷갈리게 되는 거죠.
한 번은, 새로운 친구가 전화로 회의에 들어와서 인사를 하게 됐는데, 인디애나폴리스에 산다고 본인 소개를 하더군요. 저는 그 이름을 듣고, 이게 도시 이름인지 주 이름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인디애나주가 미국 어디에 붙어있는 주인 지도 몰랐죠. 사소한 것 같지만, 이 주가 동부 시간이라면, 서부 시간으로 아침 9시에 시작한 그 회의에서, 그 친구한테 하는 인사말은 Good Morning이 아니고 Good Afternoon이 되는 것이 맞겠죠. 이런 거 틀린다고 경찰이 출동하거나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뭐 미국에 와서 일하는 입장에서 알아야 할 최소한의 교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굿모닝이냐 굿애프터눈이냐와 다르게, 최근에 제가 좀 민망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오후 2시 정도에 시작한 한 시간짜리 회의에서, 여러 가지 논의를 했고, 그 결과로 몇 가지 추가적으로 처리를 해야 할 업무의 리스트가 나왔습니다. 다음날 중요한 임원 회의에서 논의를 해야 할 내용이었기에, 회의 마무리를 하면서 가능하면 오늘 퇴근하기 전까지 정리를 해서 결과를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친구가 웃으면서, 시간 외 근무를 하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냐는 겁니다.
처음에 잠깐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다가, 곧 제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한 사람은 캘리포니아, 한 사람은 위스콘신,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아까 말한 인디애나에서 들어왔는데요, 위스콘신은 중부 시간대이니 그 회의를 마치는 시간이면 이미 5시이고, 인디애나는 동부 시간대이니 6시가 다 된 시간이었거든요. 제가 부탁한 업무는 한두 시간 신경 써서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었고요. 제가 서부에 있고, 회의를 마치는 시간이 3시라서 아직 업무 시간이 좀 남았다고, 순전히 제 입장에서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나름 외국인 회사에서 20년 넘게 글로벌 업무를 맡은 감각도 있고, 미국에 이민 와서 일한 지도 4년을 꽉 채웠는데도 아직 이런 실수를 하는 것을 보면, 머리로 알고 있는 시차와 시간대의 정보가, 몸으로 체득돼서 아무리 정신줄을 놓고 있더라도 자연스럽게 제 일상의 행동에 반영이 되려면 얼마나 걸릴는지, 그게 가능하기는 한 건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