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만 면접하냐? 나도 면접한다...
어제 미디엄에서 본 재미난 글(https://levelup.gitconnected.com/the-programming-interview-question-that-made-me-nope-out-immediately-e02e88d7864e) 이 있어서 공유를 합니다. 참고로, 미디엄은 브런치와 아주 비슷한 느낌이 들길래 가끔 영어로 글을 올리려고 가입했는데, 올리는 글은 거의 없고 다른 사람들이 쓴 좋은 글들 따라가기에도 헉헉거리고 있네요.
이 글이 왜 제 눈에 띄었냐면, 부제목에 있는 "Any issues working with women?"이라는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가끔 한국 뉴스를 보면 대한민국에서도 여권 신장 운동과 페미니즘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면서 점점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자리를 잡는 모양입니다. 논의의 과정에서 많은 진통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다름은 틀림이 아님을 서로 인정하고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는 디딤돌로 삼았으면 합니다.
미국에서도 양성평등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주제입니다. 물론 현재는 인종 문제가 최근 몇 년간 너무나 크게 두드러져서 온통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있습니다만, 그건 상대적으로 인종 관련된 뿌리 깊은 불평등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보이고, 관련된 사건 사고도 많고 해서 그렇게 된 거고, 여성의 사회적 인권은 미국에서도 여전히 진행형인 이슈가 맞습니다.
제가 예전에 직원 10만 명 정도의 미국 대기업의 자회사에서 10년 정도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 회사는 내외부적으로 흑인이나 여성의 임원 비율을 공개하고, 이를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리는 데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장애인 고용비율에 관한 의무조항이 있고 이를 맞추지 못할 시 불이익을 주는 제도가 있다고 하더군요. 한참 전에 미국에도 소수인종이나 여성의 고용에 대한 어떤 장려 프로그램이 있다고 얼핏 들은 것도 같은데 더 찾아보지는 않았네요.
며칠 전에 고객과 회의를 할 때 고객사 쪽에서 여성 임원을 몇 명 차례대로 소개하자 우리 쪽에서도 여성 임원이 참여했다고 웃으면서, 중국계 여성인 우리 쪽 엔지니어링 부사장을 소개해주면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유도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여성의 사회진출 비율이 훨씬 높은 미국이지만, 여전히 우스갯소리로라도 여성 임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아직도 그것이 사회적 이슈라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저는 위에서 언급한 기사가 직장에서 여성 동료 혹은 상사와 일하는 개발자의 고충에 관련한 것이려니 지레짐작했습니다. 한데 직접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면접하는 과정에서 문득 나온 이 질문 "Any issues working with women? (여성이랑 같이 근무하는데 무슨 문제 있어요?"에 대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나름 의미 있는 추론을 하는 과정이 흥미로운 기사라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프로그래머인데, 새로운 직장을 찾느라 여러 회사에 인터뷰를 하는 과정이었나 봅니다. 이 회사의 경우도 다른 회사와 비슷한 과정으로 인터뷰가 흘러가면서 그럭저럭 인터뷰 매뉴얼에 따라서 잘 대응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의 표현을 따오면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But then the interviewer suddenly, seemingly out of nowhere hit me with a left hook of asking me “do you have any issues working with women?”
영어 표현이 재미있죠? "Out of nowhere" 혹은 "Out of the blue"라는 표현은 저도 즐겨 쓰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어떤 일이 난데없이 벌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레프트 훅을 맞았다고 나오는데 이건 저도 처음 보는 표현입니다. 보통 대답하기 난처한 문제나 상황 혹은 질문을 하는 것을 두고 "throw a curveball"이라고 합니다. 야구에서 커브볼이 각도가 심하게 꺾이면서 타자의 대처를 어렵게 만드는 것을 빗대어 나온 표현이겠죠. Left hook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른손잡이인데 갑자기 왼손으로 강력한 훅이 턱으로 들어오면 대처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의미에서 온 표현이라고 짐작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매우 많은 미국 직장인들은, 어느 정도의 경력이 쌓이면 여성 동료는 물론이고 여성 보스와 일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까 미국 회사에서 여성 임원의 비율을 관리한다고 했는데, 직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게 되면 한 번쯤은 여성 보스에게 리포트를 하는 상황이 올 겁니다. 이 친구도 그래서 여전히 모범 답안에 따라서 "여성 동료와 일한 적도 있고 여성 보스 밑에서 일한 적도 있는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라고 답을 한 후에 인터뷰가 계속 진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나한테 난데없이 이런 질문이 들어왔을까?"라는 생각이 이 친구 머리에서 계속 맴돌아서 나머지 인터뷰 과정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고 하네요. 한 시간 정도인 인터뷰의 중간 과정이었으니 그 전의 짧은 대화를 돌이켜봐도, 대부분 전 직장에서 본인이 경험했던 기술적인 이야기들이라서 뭔가 문제가 될 발언을 할 소지가 없어서 더욱 그랬다는군요. 이 친구가 잠깐 생각해보고 도출한 가능성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입니다:
지금 인터뷰를 하는 이 포지션의 전임자가 뭔가 여성 동료와의 말썽으로 인해서 회사를 짤렸다.
혹은, 전임자가 여성 보스 혹은 동료와 일하는 것이 힘들어서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관뒀다.
혹은, 전반적인 회사 내의 남녀평등에 관한 정치적인 이슈가 업무에 영향을 줄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이 친구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세 가지 상황 모두 본인에게 좋을 일이 하나도 없더랍니다. 전임자가 그런 문제로 해고당했다면, 그 자리에 새로 뽑은 자기를 보는 시각에 분명히 어떤 색깔이 씌워질 수 있으니 정말 사소한 실수라도 하지 않도록 몇 배로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거죠. 사실 자기의 전 직장도, 전임 개발자의 근무 태도가 문제가 돼서 내보내지고, 자기가 그 자리에 들어간 건데, 사람들의 의혹 어린 눈초리를 이겨내고 본인은 다르다는 것을 완전히 인정받는데 한참 걸렸다고 합니다.
그게 아니고 두 번째나 세 번째 상황이라면 그건 더욱 좋지 않은 상황이지요. 호랑이 굴로 자처해서 들어가는 거니까요.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고자 인터뷰 중간에 이런저런 식으로 돌려가면서 질문을 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는 답은 하나도 얻지 못했고, 결국은 이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 글의 요점입니다.
저는 저 스스로 생각하기에 사람 보는 눈이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일할 때나 혹은 몇 년 전에 미국에 와서도, 제가 맡은 팀에 제가 결정을 내리거나 혹은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력히 주장해서 뽑은 사람들은 모두 기대했던 것 이상의 좋은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비결이, 그 사람의 경력과 전문성만큼이나, 같이 일하게 될 사람의 인성과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한두 시간 면접 시간에 한 사람의 인성과 태도가 다 보이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HR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저는 면접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유력한 후보자의 경우 꼭 디너 인터뷰, 즉 저녁을 같이 하면서 대화를 해 보는 것을 고집했습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고, 어떤 경우에는 얼굴도 보지 못하고 전화로만 면접을 해서 사람을 뽑은 경우도 많은데, 그 경우에도 기술적인 질문보다는 그 사람의 일하는 태도를 물어보는 질문을 했고, 그 답변에 따라서 제 의견을 정했었지요.
저도 직장인으로서 물론 인터뷰 경험이 있습니다. 학교 졸업하고 첫 직장 들어갈 때 멋모르고 했던 인터뷰, 거기서 2년 만에 관두고 학교 돌아가서 대학원 실험실에서 빈둥거리다가 돈 떨어져서 들어가게 된 두 번째 직장 인터뷰, 그리고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합류한 직원 50명짜리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한국 지사장이 되기 위해서 치렀던 인터뷰, 미국에 와서 지금의 회사로 옮기게 되면서 했던 인터뷰 등,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지만, 제가 여태까지 직장에 들어가는 기준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고, 인터뷰는 그 과정에 거치는 시험이었을 뿐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냥 돈이 필요해서 지원을 했고, 입사 후에 맡겨진 일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짧게, 적성에 맞고 재미가 있으면 길게 다녔었네요. 물론 스타트업의 경우처럼 일은 재미있었는데 비즈니스가 안돼서 접은 경우도 있지만, 하여튼 직장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화적인 요소는 고려대상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이 친구의 글이 신선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원한 회사의 면접 과정에서 면접관이 무심코 던진 (혹은 매우 계산된) 질문하나, 그리고 왜 그런 질문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유추하고, 그 배경을 알기 위해서 본인이 던진 여러 가지 질문들에 대해서 그 회사에서 의미 있는 답변을 주지 않는 과정을 거치면서, 회사만 지원자를 면접하는 것이 아니고, 지원자로서 이 회사가 내가 일할만한 회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태도를 보고, 제가 여태까지 했던 직장을 선택하는 자세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