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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Apr 05. 2021

부활절 단상

Good Friday & Easter

저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에서 기념하는 날들도 대중적으로 아주 잘 알려진 것들이 아니라면 잘 모르고요. 그래서 부활절이 지닌 의미를 아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2021년 4월 4일 일요일)은 부활절입니다. 영어로 Easter라고 하는데, 브리태니커 사전에 따르면 Easter라는 말의 출처는 확실하지는 않고, 가장 유력한 설이 앵글로 색슨 신화에서 봄과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의 이름 Eostre 혹은 Eostrae에서 왔을 거라고 하네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금요일에서 3일째 되는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기독교 최대의 축일입니다.

 

춘분, 즉 낮과 밤의 길이가 (대략) 12시간으로 같아지는 날로부터 첫 보름달이 뜬 다음에 오는 일요일을 부활절로 정한다고 하네요. 2021년의 춘분은 3월 20일 토요일이었습니다. 다음 날인 3월 21일 일요일이 상현달, 즉 반달이었고 3월 29일이 보름달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후의 첫 일요일인 오늘 (4월 4일)이 부활절이 되는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이 있던 성목요일(Holy Thursday)의 다음 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을 성금요일(Good Friday)이라고 합니다. Good이라고 불릴 날이 아닌 듯한데 그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Good이라는 영어 단어에 지금은 쓰이지 않는, 신앙이 깊고 성스럽다는 뜻이 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다른 글(https://brunch.co.kr/@tystory/66)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미국은 연방 공무원들이 일을 하지 않는 연방 공휴일이 회사 휴무의 큰 기준이 되지만, 그게 법적으로 강제하는 휴일은 아니고, 회사마다 알아서 인정해주는 휴일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많은 회사들이 크리스마스부터 새해 첫날까지를 Winter Shutdown 혹은 December Break이라고 해서 휴일로 지정하고 있거든요. 지금 다니는 회사는 크리스마스부터 시작하는 6일간의 연말 휴무를 포함해서 1년에 총 14개의 지정 휴무일이 있습니다. 2021년 들어서 1월 1일의 정식 공휴일, 그리고 특별히 추가된 MLK (Martin Luther King) 이후로 첫 휴무일이 바로 4월의 Good Friday입니다. 금요일이 휴일이고 마침 아들 녀석 봄방학과도 겹쳐서 4일간 추가 휴가를 내서 일주일을 잘 쉬었네요.


전에 다니던 회사는 일 년에 정해진 휴무일 11개, 그리고 Floating Holiday라고 해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하루를 포함해서 총 12개의 회사 지정 휴일이 있었는데, 설날 이후에 MLK Day와 President's Day는 휴무일인데 Good Friday는 정상 근무일이었습니다. 회사마다 다른 공휴일 규정이야 그때그때 찾아보면 되지만, 그래도 대략 어느 무렵에 어떤 공휴일이 있는지는 미국에 살면 알아야 하는 상식이겠죠.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을 때:


너 여자 친구랑 결혼 날짜 잡혔어?

어 아직 이야기 중인데 어린이날 연휴 근방으로 할까 싶어.

야~ 날씨 좋을 때 하네...


어린이 날이 5월 초이고 날씨가 좋겠다는 대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죠. 근데, 제가 미국에 와서 직장 동료랑 대화를 나눌 때:


너 여자 친구랑 결혼한다며?

응 아직 이야기 중인데 메모리얼 데이 정도쯤 할까 해.

그게 뭔데?


이러면 좀 웃기잖아요. 물론 메모리얼 데이가 언제인지 모를 수 있고, 물어보면 알려주겠죠. 근데 그게 그 친구와 나의 1대 1 대화가 아니고,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우연히 나온 화제라면, 메모리얼 데이가 언제지? 하고 제가 머리를 긁적이는 사이에 이미 대화는 결혼 장소로 넘어가게 되고, 그때쯤에는 그 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날씨 좋은 5월에 결혼식을 한다는 부분은 입력이 된 상태에서 이야기가 진행이 되고 있을 때, 저는 이게 3월인지, 4월인지 아니면 우리나라 현충일처럼 6월 정도인지 헤매고 있을 거고, 따라서 그 이후의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공휴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문화적인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 종교에 관한 것입니다. 유럽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는 부활절 일요일의 다음날을 이스터 먼데이라고 해서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고 하네요.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부활절 연휴가 이어지는 곳들도 있을 정도로, 서구권 국가의 가장 큰 명절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은 기독교의 전통과 영향이 매우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라입니다.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네덜란드에 살던) 영국 사람들이 항해 중인 배 안에서 작성했다고 하는 메이플라워 서약 (Mayflower Compact)은 "IN THE NAME OF GOD, AMEN..."이라고 시작하고, 그 내용에도 하나님의 영광과 기독교 신앙의 부흥이 식민지 건설을 위한 항해의 목적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 때는 왼손을 성경에 올려놓고 취임 선서를 하게 됩니다. 46대인 바이든 대통령과 35대인 케네디 대통령만이 가톨릭 신자이고 나머지 모든 대통령은 개신교도였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영국 성공회의 박해를 피해 신대륙의 식민지로 몰려온 청교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나라임에도, 역대 대통령들의 종교를 보면 성공회 출신들이,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포함해서 11명으로 가장 많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은 건축 초기의 헌법에서부터 최근의 법원 판결까지 일관되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온 나라입니다. 반면에 정치와 법 체제에서 보장된 종교의 자유만큼이나 실제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숫자와 문화가 몇 백 년간 이 나라에 끼친 영향도 분명합니다. 2020년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3퍼센트가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개신교가 42%, 가톨릭이 21%였습니다. 2007년의 조사에서 78%가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답했고, 2014년의 조사에서는 71%였다고 하니, 매년 감소세가 뚜렷하게 보입니다. 특히나 젊은 층에서 이런 경향이 뚜렷해진다고 하네요. 거꾸로 말하면, 1620년에 최초로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미 대륙의 식민지 역사가 시작된 이래 2000년대의 조사에서까지도 미국인 10명 가운데 8명이 기독교인이라고 답할 정도로 아주 뚜렷하게 크리스트교의 영향이 수백 년간 이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 살 때이던 미국에 이민을 온 이후이던 교회를 다녀보지 않은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표현이나 관습 등을 가끔 보게 됩니다. 물론 회사나 사회생활에서 종교는 매우 개인적인 영역에 속해서 그런지 대화의 주제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특정 종교에 편향된 어떤 정책이나 제도 역시 즉시 반발에 부딪힌다고 합니다. 미국인들이 정말로 애지중지하는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가 그 근거가 되지요. 다만, 그와는 상관없이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문화의 경우는 그런 잣대로 보기보다는, 그냥 문화적인 전통으로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문화를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성경도 읽어보고 책도 사서 보고 했는데 역시 종교란 것을 이렇게 피상적으로 책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만 절실하게 느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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