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 15)
미 대륙 중앙을 가르는 프런티어 스트립에서 캔자스의 위에 있는 주가 네브래스카주입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낯설기만 한 곳인데, 그나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있는 곳이라고 하면 혹시 아하~ 할지 모르겠네요. 미국의 다른 많은 지명처럼 네브래스카라는 이름도 북미 원주민들의 말로 평평한 물 (flat water)라는 뜻에서 왔다고 합니다. 주를 가로지르는 플랫 강 (Platte River)를 부르는 이름이었다고 하죠. 오마하라는 이름도 미대륙 중서부에 사는 원주민 부족의 이름이자 그들이 사용하는 말의 이름이고도 하고요.
네브래스카는 20만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에 2백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는 한적한 곳입니다. 대한민국(10만 제곱킬로미터)의 두배 정도 되는 면적에 충청남도 인구(2백2십만 명)보다도 적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인구 기준으로 38위에 올라있는 작은 주이면서 동시에 미국에서 유일하게 삼겹으로 육지로 둘러싸인 (triply landlocked) 주라고 하네요.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니, 정말로 세 개 이상의 주 (혹은 캐나다)를 거쳐야 바다가 나오는 아주 내륙 깊숙이 있는 주입니다. 이에 좌절하지 않고 네브래스카 대 해군 제독 (Admiral in the Great Navy of the State of Nebraska)라는 명예직을 만들어서 수여하는 유머러스한 전통을 이어오는 꿋꿋함이 있는 주이기도 합니다.
사람보다 소가 4배나 많을 정도로 축산업이 네브래스카 경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주 면적의 90% 이상이 목장과 농장이고, 풍부한 목초지와 옥수수를 이용해서 소를 키운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미국산 소고기의 대부분이 네브래스카에서 온다고 합니다. 그러니 대한민국 국민의 식생활과도 밀접한 주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에서 소고기를 살 때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사육 방식에 따라서:
* Grass-Finished: 주로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으면서 자란 소들을 말하는데, 물론 무조건 풀어놓고 방목만 하는 것은 아니고, 축사에서 건초를 먹기도 하고, 항생제나 성장 촉진 호르몬을 맞을 수도 있답니다. 하지만 끝까지 곡물 사료는 먹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 Grain-Finished: 얘들도 주로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으면서 자라기는 하는데, 마지막 몇 달은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 균형 잡힌 곡물 사료를 먹인답니다. 항생제나 성장 촉진 호르몬을 맞을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고요.
* Certified Organic: 얘네들은 먹는 사료와 상관없이 항생제나 성장 촉진 호르몬을 맞지 않은 소들을 말합니다.
* Naturally Raised: 얘들도 항생제나 호르몬을 맞지 않고 자연스럽게 길렀다는 의미인데, 이건 공식적인 의미보다 마케팅 용어 같네요. 이거 말고도 free-range라는 말도 있는데 드넓은 목초지에서 자유롭게 키웠다는 의미겠죠. 근데 얘들도 밤에 잘 때는 축사에 돌아와서 잘 거고, 이왕 들어온 김에 건초나 저장한 목초도 먹이지 않을까 싶은데...
하여튼 제가 여행 다니면서 본 미국의 농장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에 어마어마한 소들이 있더군요. 다만, 캘리포니아의 농장들은 축사에 좀 복작복작 모여있다는 느낌이고, 아이오와 같은 주를 지날 때 보면 정말 넓은 초원에, 소들이 띄엄띄엄 떨어져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텍사스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축산업이 있는 곳인데 거기는 직접 보지를 못해서 잘 모르겠네요.
네브래스카는 또한 쿨 에이드 (Kool-Aid)의 발상지로도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음료를 분말 형태로 만들어서, 물과 설탕을 타서 마시는 저렴한 제품인데, 네브래스카에서 1927년에 발명됐습니다. 처음에는 과일 농축 음료를 만들다가, 운송비를 줄이려고 농축액에서 수분을 제거해서 분말 형태로 만든 것이 쿨 에이드가 된 거라고 하네요. 음료로서도 많이 팔리는 모양이지만, 영어 표현의 "Drinking the Kool-aid"라는 표현은 아주 유명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어떤 집단 (혹은 리더)의 주장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데, 미국에서 911 테러 이전에,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918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존스타운 학살사건에서, 사이비 교주가 사람들에게 청산가리가 든 쿨 에이드 음료를 마시고 자살하게 한 것에서 비롯된, 슬픈 역사가 담긴 표현입니다. 하지만 영어에서 이 표현을 쓸 때는 오히려 좀 가볍게 빈정대는 정도의 뉘앙스로 많이 쓰더군요.
네브래스카가 그렇게 화젯거리가 많이 않은 곳이라 그런지, 이곳의 작은 마을인 Leigh("리"라고 발음합니다)에서 1800년대에 만들어진, 도넛의 가운데 구멍을 불법으로 규정한 법이, 미국의 이상한 법들을 이야기할 때 꼭 나옵니다. 지금도 작은 마을이지만, 이 마을의 설립을 주도한 양반들이, 구멍 뚫린 도넛을 불량품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판매를 금지한 것이라는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유명무실한 법이기는 했지만 이것이 라디오 방송을 타고 유명해진 1997년에야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고 합니다.
네브래스카는 또한 미국의 주 중에서 유일하게 단원제 의회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의 다른 모든 주들은, 연방 의회와 마찬가지로 상원과 하원의 양원제 의회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방 상원 의원, 연방 하원 의원이 있는 것처럼 각 주에도 주 상원 의원과 주 하원 의원이 별도로 있지요. 하지만 네브래스카는 1934년 주 헌법 개정을 통해서 단원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가지 특이한 점은 미국 대통령 선거의 선거인단 제도에서 대부분의 주가 승자독식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선은 간접선거로 치러집니다. 주마다 선거인단을 뽑고, 그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형식이지요. 미국의 선거인단은 각 주별로 상원 의원수 + 하원 의원수만큼 배정됩니다. 상원의원은 미국의 50개 주에서 주마다 2명씩이니 100명으로 정해져 있고요, 하원은 435명이 인구비례에 따라서 주별로 배분이 되어있거든요.
예를 들어서 2020년의 대선에서 바이튼 대통령이 30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서 23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여유 있게 이겼잖아요? 각 주에서의 선거 결과에 따라서 선거인단이 뽑히는데, 캘리포니아의 경우 천백만 명이 바이든 후보 측에, 6백만 명이 트럼프 후보 측에 표를 줬거든요. 따라서 캘리포니아에 배정된 55명의 선거인단 모두를 바이든 후보가 확보한 거죠. 텍사스의 경우 트럼프 후보가 5백9십만 표를, 바이든 후보가 5백3십만 표를 확보해서 트럼프 후보가 38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거고요.
네브래스카는 전체 5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2명을 주 전체의 투표 결과에 따라 배분하고, 3명을 하원 의원 선거구의 결과대로 배정합니다. 2020년 대선의 경우, 트럼프 후보가 주 전체 및 3구와 1구에서 승리했고 바이든 후보는 오마하가 포함된 하원 2구의 선거인단 한 명을 확보하는데 그쳤습니다. 네브래스카는 전통적으로 공화당 텃밭이지만 중도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네요. 하원 3구 가운데 주의 최대 도시인 오마하가 포함된 2구가 민주당이 가끔 이기는 곳인데, 2012년에도 오바마 후보가 네브래스카에서 확보한 1명의 선거인단이 2구에서 나왔습니다. 반면에 2016년의 대선에서는 트럼프 후보가 2구를 아슬아슬한 차이 (2.24% = 6,534표)로 이겼습니다. 같은 해 선거에서,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에 대한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전국의 5개 카운티를 보면 텍사스가 4곳이고, 나머지 한 곳이 바로 네브래스카 (Hayes County, 91.83%)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는 곳입니다.
정확한 자료를 찾지 못했는데, 대략 네브래스카의 한인 인구가 2,000명 정도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은 아니지만 평화롭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겨울이 좀 길고 춥지만 사계절이 뚜렷한 그런 미대륙 한가운데 있는 대 평원 지역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