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 19)
미네소타에서 한 칸 밑으로 내려오면 아이오와주입니다. 미국 전체 지도에서 보면 중간보다도 오른쪽에 있지만 여기도 미국의 중서부 지역으로 칩니다. 다른 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미국 개척이 시작된 동부의 주들 기준으로 왼쪽은 전부 서부라고 하는 묘한 동부 부심이랄까, 그런 게 보입니다. ^^
18세기와 19세기 유럽의 개척자들에 의해서 개척된 것은 다른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지역과 마찬가지고, 그래서 주의 가장 큰 도시 이름도 디모인(Des Moines)입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강의 이름인 디모인 강(Des Moines River)에서 따 온 것입니다. 프랑스어로 수도자의 강(River of Monks)라고 하고, 프랑스식 발음은 뒤의 s 두 개 모두 묵음으로 “데모안”에 가깝지만 영어로 “드모인” 정도로 발음합니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 기준으로는 디모인이라고 하네요.
아이오와는 인구 3백2십만 명으로 미국에서 50개 주 가운데 인구 순위로 31등이고, 면적은 14만 6천 제곱킬로미터로 대한민국의 10만 제곱킬로미터보다 큽니다. 통계로 보면 주 경제의 21%를 차지하는 산업이 제조업이라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식품 가공업이 가장 큽니다. 미국의 곡창이라고도 하고 세계의 식량 수도(The Food Capital of the World)라고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옥수수로 유명합니다. 미국 옥수수의 거의 20% 정도를 공급한다고 나옵니다. 그 외에도 콩과 돼지 그리고 계란을 어마어마하게 생산한다고 하죠.
메이저리그 프로팀도 없고 인구도 많지 않은 아이오와는 매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전국의 뜨거운 관심을 받습니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와 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후보 경선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이고, 또 그 방식이 전통적인 코커스라는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미국의 선거 제도에 익숙하지 않아서 저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각 주의 정당에서는 대통령 선거 후보를 어떻게 결정할지 정할 수 있는데, 대부분은 전통적인 투표 방식의 예비 선거(Presidential Primary)를 치루지만 몇몇 주는 코커스(Caucus)라는 당원 대회에서 공개 토론과 공개 투표를 통해서 선거의 후보를 선택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매 4년마다 11월의 첫 화요일에 각 주의 대의원 투표로 결정이 되지요. 하지만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은 그 전해 4월쯤에 합니다. 사실상 그때부터 1년 반의 길고 고통스러운 대선 여정이 시작되는데, 대선 캠페인의 첫 성적표를 받는 곳이 바로 대통령 선거 해의 1월에 있는 아이오와의 코커스입니다. 여기서의 투표 결과가 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이 되는 데 있어서 남은 여정에 꽤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 대선에서 주목을 받는 것이고 그래서 대통령이 등장하는 미국 정치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항상 나옵니다.
제가 한때 매우 즐겨봤던 미드 가운데 웨스트윙(The West Wing)이 있었습니다. 대사가 워낙 많고 말도 빨라서 그냥 말 자체를 듣는 것도 힘든데, 특히 미국의 문화나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막으로 영어를 읽어봐도 뭐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아주 극악의 리스닝 난이도를 자랑하는 미드로 유명합니다. 극 초반에 우리가 모두 좋아하는 바틀렛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으로 재임 중인 것으로 나오지만, 시즌 6의 차기 대통령 선거 관련 에피소드에 아이오와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피소드 제목이 King Corn인데, 민주당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아이오와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과정에서 대체 연료인 에탄올에 대한 의견이 다릅니다. 옥수수를 주원료로 만드는 에탄올에 대한 정부 지원금에 대한 의견이 아이오와에서 지지를 얻기 위해서 중요한데, 매튜 산토스 후보가 바이오 에탄올이 환경에도 유해하고 기업화된 농장주와 관계자들의 이익만 된다는 소신을 들면서 반대 입장을 내겠다고 하고, 이 때문에 선거 캠페인을 맡고 있는 조쉬와 계속 충돌하는 것이 에피소드의 주요 플롯입니다.
산토스 후보는 연단에 올라서 연설 원고가 올라오는 프롬프터의 에탄올 관련 내용을 보고 잠시 고민하지만, 결국은 거기 쓰여있는 대로 대체연료로서 에탄올의 사용을 지지하고 대통령이 되면 관련 정책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입니다. 소신이고 나발이고 일단은 대통령이 되어야 뭘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근데 반면에, 미국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할 대통령 후보를 뽑는 선거 과정에서 아이오와가 가장 먼저 결과를 보여준다는 이유로, 자기네 주의 이익이 걸린 옥수수나 에탄올 관련한 소신 발언을 하는 후보를 걸러버린다면 그것도 문제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특히 이민자 비중이 점점 늘고 있는 미국에서, 주민의 대부분이 보수 성향의 백인인 아이오와의 양 정당 후보 선출 결과가 미국 대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는 듯합니다.
아이오와의 정당별 대선 후보 결과가 항상 맞는 것은 아닙니다. 1972년 이후로, 아이오와의 대선 후보 투표 결과가 실제로 양 정당의 최종 후보 결과와 일치한 것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민주당 55%, 공화당 43%) 최근의 결과를 몇 개 보면, 2004년에는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아이오와에서 이겼고 결국 민주당 후보가 됐지만 조지 부시에게 대선에서 패했습니다. 2008년에는 오바마가 아이오와에서 이겼고, 결국은 대선에서도 승리해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제가 요새 오바마의 자서전(A Promised Land)을 열심히 읽고 있었는데, 앞부분에 보면 정치 경력이 그리 많지 않은 자기가 어떻게 베테랑 힐러리 클린턴 후보(및 존 에드워드 후보)에게 아이오와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그 기세를 몰아서 바로 이어진 뉴 햄프셔의 대선 후보 선거(Primary)에서도 압도적으로 이기기를 기대했지만 그러지 못해서 정신을 차리고, 결국은 나머지 선거 과정을 보다 겸손하게 하지만 적극적으로 치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나옵니다. 참고로 2004년에 방영된 웨스트윙 시즌 6에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매튜 산토스 후보가 오바마 대통령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때는 오바마가 일리노이주의 주 상원의원 겨우 마치고 연방 상원의원 선거운동을 시작할 때이니 굉장한 선견지명이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물론 오바마도 아이오와의 예비 선거에서 에탄올을 이용한 대체 연료에 적극적인 지지 선언을 했었습니다.
2016년에는 잘 아시다시피 힐러리 클린턴이 버니 샌더스를 누르고 아이오와에서 승리하고 최종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었지만 트럼프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한 해입니다. 제가 바로 이 대선 직후인 2017년 1월에 미국에 이민을 왔거든요. 그전까지 웨스트윙을 비롯한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 미국 정치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는데, 그 환상이 보기 좋게 깨진 해이고, 우리나라 정치와 비교해서 미국도 뭐 그렇게 나을 게 없구나라는 생각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이민자 신분에 위협을 느껴서 빨리 영주권을 신청하게 되었고, 그 결과 본의 아니게 회사를 옮기게 되었을 때 큰 문제가 없었으니 새옹지마라고나 할까요.
최근의 2020년도 아이오와 코커스 역시 드라마틱하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선거 결과를 집계하는 소프트웨어의 오류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것은 애피타이저 정도였습니다. 작년의 아이오와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 투표 1등을 먹은 사람은, 이름을 발음하기도 힘든 피터 부티지지(Peter Buttigieg)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1982년생으로 인디애나주의 사우스밴드라는 인구 10만 명짜리 도시의 시장이었습니다. 남유럽의 몰타에서 흔한 성씨라고 하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은 2015년에 공개적으로 게이임을 커밍아웃한 사람입니다. 당시 인디애나 주지사인 마이크 펜스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법안을 밀어붙이자, 이에 대한 반발이었던 것이죠.
2011년 29세의 나이에 75%의 득표율로 사우스밴드 시장에 당선되었고, 4년 뒤 2015년에는 80%의 득표율로 시장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2019년 4월에 2020년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고, 결국 2020년의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버니 샌더스와 조 바이튼 후보를 누르고 1등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 후 뉴햄프셔에서도 버니 샌더스에게 아슬아슬하게 뒤진 2위였지만, 결국 3월에 경선 후보에서 사퇴하게 되는데요, 그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Mayor Pete)를 아마존 프라임에서 봤습니다. 웨스트윙이나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미국의 대통령 관련 정치 드라마와는 다르게 너무 이상주의로 포장하지도 않았고 막장을 달리지도 않지만, 나름대로 드라마틱하고 재미있게 봤습니다. 대선 후보가 나오는 정치 다큐멘터리인데, 남성 배우자인 체스턴의 시각도 매우 비중 있게 나옵니다. 트럼프 같은 사람도 있는 반면에 이런 사람도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는 나라, 그리고 이 사람이 자기 소신을 밝히고 정치를 하는 과정, 그리고 심지어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리를 하면서 유력한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오는 과정을 보면, 확실히 우리나라에 비해서 정치의 품격이 아직은 훨씬 앞서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아이오와에는 한인 인구도 만명도 안된다고 최근의 인구조사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 관련된 자료는 별로 찾지 못했습니다. 별로 알아볼 것이 많지 않은 주라서 정치 이야기만 잔뜩 했는데, 덕분에 오랜만에 추억의 미드를 소환할 기회가 돼서 좋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