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 21)
미주리 주에서 한 칸 밑으로 내려오면 아칸소 주가 나옵니다. 미 중서부 지역에 살던 Quapaw 원주민을 프랑스어로 Arkansa라고 불렀고, 이의 복수형인 Arkansas를 딴 강의 이름이 나중에 주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맨 마지막의 s를 묵음으로 할 거냐 발음을 할 거냐에 대해서 주 의회에서 논쟁이 있었답니다. 어떤 주 상원 의원은 현재의 발음과 같이 첫음절에 강세가 있는 "아칸소"로 부르자고 했고, 다른 상원 의원은 두 번째 음절에 강세를 두고 "아캔자스"로 부르자고 했는데, 전자의 주장이 이겨서 1881년에 법으로 마지막 s를 묵음으로 하기로 했다네요. 그리고 2007년에는 주의 이름 뒤에 붙는 소유격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으니까 뒤에 s를 붙여서 Arkansas’s로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식 발음이라 외국인들만 헷갈리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자기들도 이렇게 공식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정해줄 정도면.
아칸소는 미국의 인구 조사에서 Region 3인 남부(South)로 들어갑니다. 바로 위의 미주리 주는 Region 2인 중서부(Midwest)에 속하거든요. 아칸소는 북위 36도 30분에서 33도까지 걸쳐있습니다. 미국 지도를 잘 보시면 북위 37도선을 따라서 주의 경계가 만들어진 곳이 많습니다. 아칸소 바로 왼쪽의 오클라호마 주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것이 바로 북위 37도선이고, 오클라호마 주 왼쪽의 팬 핸들을 따라서 나오는 뉴멕시코 주의 네모 반듯한 땅 역시 북위 37도선을 따라서 주의 북쪽 경계가 이루어졌고, 더 왼쪽으로 가서 만나는 애리조나 주 역시 북위 37도선에 주의 북쪽 경계가 만들어집니다. 아칸소의 오른쪽에 있는 납작하게 긴 테네시 주의 북쪽 경계는 36도 41분이고, 그 오른쪽의 또 다른 납작하게 길쭉한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북쪽 경계선 역시 시원하게 좌우로 쭉 뻗은 36도 35분이 됩니다. 한반도에 남북을 가르는 38선이 있다면 미국 대륙에는 비슷하게 남북을 가르는 37선이 있는 거죠.
14만 제곱 킬로미터 정도의 면적이니까 대한민국보다 40% 정도 큰 땅에 3백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70%의 인구가 (히스패닉이 아닌) 순수 백인이고 흑인이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칸소는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지역을 구입할 때 미국의 땅이 되었고, 1836년에 25번째 주로 연방에 가입했습니다. 목화 농장에 경제의 큰 부분을 의지하던 아칸소는 흑인 노예들이 많이 필요했고, 1861년에 연방에서 탈퇴하고 남부 연맹에 가입했습니다. 남북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아칸소는 흑인에 대한 심한 인종 차별이 계속된 남부의 주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남북 전쟁이 끝나고 흑인들은 자유인의 신분과 함께 투표권도 받았지만, 1800년대 후반부터 남부의 예전 노예주들에서는 노예제를 지지하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흑인들을 차별하는 법을 잇달아 통과시키는데 이들을 통틀어 짐 크로(Jim Crow) 법이라고 부릅니다. 짐 크로는 실존 인물의 이름이 아니고 우스꽝스럽게 분장한 흑인 캐렉터의 이름입니다. 어려운 문맹 검사를 통과하고 비싼 세금을 내야만 흑인들이 투표를 할 수 있게 한다거나, 공공장소나 교통수단에서 인종에 따른 분리를 하는 법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입니다. 이런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1960년대까지 계속되었고, 1963년에 일어난 워싱턴 행진에서 그 유명한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이라는 연설이 나옵니다.
이 시절 남부에서의 흑인 차별을 참으로 잘 보여준 영화가 “그린 북(Green Book)”입니다. 1936년에 처음 출간된 “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인종 분리 정책이 공공연히 시행되던 당시 미국 남부의 주들을 여행하는 흑인들이, 어디서 식사하고 어느 곳에서 묵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가이드 북입니다. 유명하고 교양 있는 흑인 피아니스트와, 껄렁한 이탈리아계 백인 운전수가 미국 남부로 공연 여행을 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참으로 맛깔나게 보여줍니다. 1960년대 미국 남부의 인종 차별을 잘 보여주기도 하지만 영화 자체의 스토리, 그리고 두 배우의 연기가 아주 멋집니다.
1775년부터 1783년까지 8년간 영국과의 독립 전쟁을 승리하고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 국가로 국제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미국이 내세운 가치는 모든 인간의 평등이었습니다. 미국 독립 선언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그런데 당시에 만연하던 노예제도가 이 평등사상에 위배되고 이에 대한 북부와 남부의 충돌이 전쟁으로 발전한 것이, 1861년에서 1865년까지 벌어진 남북 전쟁으로, 4년간 총 10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해서 가장 많은 미국인이 희생된 전쟁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그 뒤로 많은 세월이 흘러 흑인 대통령까지 배출이 되었지만 여전히 흑백 인종 갈등, 그리고 최근에는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 갈등 사건들까지, 인종 간의 불화는 여전히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아칸소의 주내 총생산액은 119조 달러이고, Walmart나 Tyson Food 등의 본사가 있지만, 개인별 평균 소득이 3만 9천 불로 미국에서 45위에 있는 가난한 주라고 하겠습니다. 닭과 계란, 대두 등이 유명한데, 영화 미나리에도 아칸소의 병아리 감별장 모습이 주요 무대로 여러 번 등장합니다. 살기 빡빡한 캘리포니아를 떠나서, 돈을 벌고자 아칸소의 깡촌으로 온 가족이 이사를 오지만 일은 생각보다 잘 안 풀리고 그런 상황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구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돈이 우리를 구해주냐는 아주 멋진 대사가 나옵니다.
미나리의 이야기는 아칸소가 무대지만 실제 촬영은 오클라호마에서 했다고 하네요. 정이삭 감독이 본인의 고향인 아칸소에서 찍을까 했지만 세금 혜택이나 인프라 때문에 오클라호마의 털사(Tulsa, Oklahoma)에서 촬영을 했답니다. 실제 아칸소의 모습을 보다 잘 보여주는 영화는 머드(Mud)라는 영화입니다. 미시시피강을 배경으로 14살짜리 두 소년이 나온다는 면에서, 마크 트웨인의 소설에 나오는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 같은 느낌도 납니다. 톰 소여의 모험의 무대는 미주리 주이지만, 이 영화 머드는 아칸소에서 실제 촬영을 했고, 이 주에서 촬영된 가장 대작 영화라는 타이틀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2012년에 촬영된 머드의 총촬영비는 천만 달러로 뭐 거의 독립 영화 수준의 저예산이라고 하고요, 실제로 영화를 봐도 뭐 그렇게 대단히 돈이 들 것 같지는 않은 분위기입니다. 오히려 그래서 한적하고 별거 없는 실제 모습을 더 잘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리틀록(Little Rock)이라는 인구 20만 정도의 도시입니다. 프랑스 탐험가들이 강가에 작은 바위들이 줄지어있는 모습에 붙인 이름(Le Petite Roche)이 도시의 이름이 되었답니다. 인구 20만 가운데 백인이 8만 5천 명, 흑인이 8만 명 정도로 거의 반씩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흑인 인구가 많고 범죄율도 꽤 높다고 하죠. 아칸소는 빈부 격차가 아주 심한 주로도 유명한데, 우리가 잘 아는 클린턴 대통령이 바로 아칸소의 주지사 출신으로 대통령까지 했잖아요? 부인도 최근까지 트럼프와 대선에서 대통령 자리를 놓고 박빙의 승부를 벌였으니 클린턴 대통령도 아칸소의 금수저 출신일 것 같지만,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난한 어머니와 폭력적인 의붓아버지 밑에서 불우하게 자란, 보기와는 다르게 불우한 경력을 딛고 일어난 정치인입니다.
2016년 통계로 한인이 3,000명 정도 산다고 나오는데, 얼마나 근거가 있는 자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리틀 록 기준으로 여름에는 34도까지 올라가는 덥고 습한 기후에, 겨울에는 영하 1도까지 최저기온이 나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