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 25)
테네시 위에 또 다른 길쭉하게 옆으로 퍼져서 여러 주와 주의 경계를 맞대고 있는 주가 켄터키입니다. 왼쪽 끝은 뾰족하고 오른쪽으로 가면서 커지는데 좌우 길이는 대략 테네시 주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면적이 10만 5천 제곱킬로미터로 미국의 주들 가운데 대한민국의 영토 넓이 (10만 413제곱킬로미터)와 가장 비슷합니다. 4백5십만 정도의 인구로 80% 정도가 백인이고 8% 정도가 흑인 인구로 나왔습니다. 이 주의 모토가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이라고 하는데, 우리말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영어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최근의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62%가 넘는 득표를 한 전통적인 공화당 강세주인데, 특히 공화당 원내대표로 TV에 항상 등장하는 바로 그 미치 매코널(Addison Mitchell McConnell Jr.) 연방 상원의원이 켄터키에서 1984년에 당선되어 2020년까지 7선째 계속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연방 상원의원 임기가 6년이고 7선에 성공했으니 42년 동안 상원의원의 임기를 채우게 되는 거죠. 이 양반은 42년생으로 올해 79세인데, 현재 미국 상원에서 가장 연세가 많이 드신 분은 캘리포니아의 다이앤 페인스타인(Dianne Goldman Berman Feinstein)으로 1933년생입니다. 나이 말고 재임 기간으로도 매코널 의원은 겨우(?) 19위에 올랐습니다. 1등은 51년의 로버트 버드(Robert byrd), 2등은 49년의 다니엘 이노우에(Daniel Inouye), 3등은 47년의 스트롬 써몬드(Strom Thurmond) 의원 등의 순위입니다. 매코넬 의원이 2026년까지 해서 42년을 다 채우면 6위권의 성적이 됩니다.
매코넬 의원은 마이크 펜스와 함께 공화당에서도 매우 보수적인 성향의 인물로, 2007년부터 원내대표를 지내고 있으며 2008년에 당선된 오바마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강하게 세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자서전에 매코넬 의원에 대한 평가를 보면 “단신이며 엄숙하고 스무스한 켄터키 억양을 갖고 있으며 친밀감을 나타내는 어떤 언변이나 제스처에도 관심이 없고, 정치권에 친한 사람도 없으며, 정치 자금 개혁에 대한 강력한 반대 외에는 어떤 정치적인 신념도 찾아보기 힘든, 공화당의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것이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인물이었다”라고 나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오바마케어 폐지를 시도했다가 상원 통과에 실패해서 체면을 구겼고, 임기 1년여를 남긴 오바마가 지명한 대법관 후보의 인준 자체를 거부했는데, 그때 이유로 든 것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트럼프가 대선 2개월 전에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을 지명하자 바로 청문 절차를 진행해서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행태를 보여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켄터키는 우리에게 KFC(Kentucky Fried Chicken)으로도 유명합니다. 1930년대에 켄터키의 샌더스 대령(Colonel Sanders)이 창업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양반은 실제 군에서의 대령 계급이 아니고 당시 친구였던 켄터키 주지사가 명예 대령 계급을 준 것이라고 하죠. 인생의 노년기에 연금으로 궁핍하게 살다가 자신만의 닭 요리법을 가지고 프랜차이즈 창업에 성공해서 대박이 난 것이 바로 KFC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한때 은퇴한 창업자들이 가장 많이 시도하는 아이템이 치킨이라고 하는데, 재미난 우연인지 필연인지 잘 모르겠네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영화 그린북(Green book)에 보면 이동 중에 차에서 KFC 치킨에 관련한 장면이 나옵니다. 토니가 치킨을 먹는 방법을 셜리에게 가르쳐주면서 둘이 친분을 쌓는 장면이 코믹하게 잘 그려졌는데요(https://youtu.be/JCT1 VtaBpqg), 이 영화에서의 연기로 셜리 역을 맡은 마허샬라 알리가 91회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탔지요.
KFC의 본사가 있는 루이빌(Louisville)은 인구 62만 명으로 켄터키 최대의 도시입니다. 미국 독립전쟁에서 미국을 지원한 프랑스의 왕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권투선수로 알려져 있는 무하마드 알리가 1924년에 루이빌에서 태어나서 12살 때 복싱을 시작했습니다. 18살 때인 1960년 로마 올림픽 라이트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식당에서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서빙을 거부하자 금메달을 강에 집어던졌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1961년에 무슬림으로 개종했고, 1966년에, “내 고향인 루이빌에서 흑인들이 개처럼 대접을 받으면서 기본적인 인권이 무시되는 상황에서, 왜 내가 기독교인 백인들의 전쟁인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갈색 피부의 베트콩들에게 폭탄을 투하하고 총을 쏘는 전쟁에 참여하겠는가?”라며 징병 거부를 선언했고, 1967년에 휴스턴에서 이루어진 징병 심사를 거부하면서 체포됐고, 같은 날 권투 선수 자격이 박탈됩니다.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 판결이 나는 1971년까지, 25세에서 29세의 황금기에 권투를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 후 1974년에 전설이 된 조지 포먼과의 경기에서 극적인 8라운드 종료와 동시에 KO를 얻어내서 건재함을 증명했고, 이후 조 프레이저와의 헤비급 타이틀 방어전을 모두 승리하면서 전성기를 이어가다가 1981년 은퇴했습니다.
루이빌은 또한 켄터키 더비(Kentucky Derby)라는, 매년 5월 첫째 토요일에 열리는 경마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메리웨더 루이스 클락 주니어(Meriwether Lewis Clarsk Jr.)에 의해서 1875년부터 시작된 경마 대회로 메릴랜드의 프리크니스 스테익스(Preakness Stakes) 그리고 뉴욕의 벨몬트 스테익스(Belmont Stakes)와 더불어 트리플 크라운을 이루는 경마 대회입니다. 매우 오래된 스포츠 종목인 경마는, 마권을 판매하는 특성상 도박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에서도 주인공이 경마에 빠져서 돈을 탕진한 것으로 나오죠.
워낙 오래된 스포츠이다 보니 여기서 사용된 용어가 정치인의 선거에도 많이 나옵니다. 19세기 초반부터 경마(Horse race)가 정치에서의 선거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우리말로도 출마(出馬)라는 용어로 번역되는 선거에 입후보한다는 말을 영어로 “run for office”라고 합니다.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를 지명할 때 “running mate”라고 하고요, 선두 주자를 “front runner”라고 합니다. 경마는 흙바닥에서 말들이 달리는데, 비가 오거나 해서 흙이 젖으면 말들이 속도를 내기가 힘들지만 바짝 마르면 빨리 달릴 수 있는데 이를 “fast track”이라고 합니다. 정치에서 누군가 빨리 치고 나갈 때 “on a fast track”이라고 하지요. 우리말로 막상 막하인, 혹은 박빙의 승부를 영어로 말하면 “running neck and neck”이라고 하는데 말들이 거의 비슷하게 달리는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익숙한 단어인 다크호스(dark horse) 같은 말도 있고, 그렇게 친숙하지 않은 용어인 “hands down”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경주에서 승리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경마의 마지막 부분에서 기수가 고삐의 힘을 늦추고 손을 내리는 것에서 나온 말로, 예를 들어서 “In the 1980 presidential election, Ronald Reagan beat Jimmy Carter hands down (1980년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지미 카터를 큰 격차로 이겼다)” 이런 표현에서도 쓰이고, 실제로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쓰입니다. 참고로 우리 회사 사장님께 제가 얼마 전에 들었던 표현 가운데 하나를 빌리면 “When it comets to business acumen, hands down, you’re much better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라는 면에서 보면 자네가 훨씬 낫네)” 이렇게도 씁니다. 저랑 라이벌 관계(?)에 있는 다른 임원과 저의 장단점을 비교하면서 한 이야기입니다. (자랑 아닙니다, 이거 말고 제가 뒤떨어지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 경마에서 유래한 선거 관련 용어에 관심 있는 분은 이 자료에 보다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http://www.politicalmetaphors.com/2014/11/02/election-metaphors-horse-racing/)
켄터키주는 또한 전 세계에 팔리는 버번(Bourbon) 위스키의 95%가 만들어지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미국 독립 전쟁을 도와준 프랑스의 왕조인 부르봉(Bourbon) 왕가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켄터키 주의 버번 카운티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원래 스코틀랜드에서 싹을 틔운 보리(맥아:malt)를 증류해서 만든 술을 위스키라고 하는데, 옥수수가 51% 이상 들어간 원액을 사용해서 만들어서 아메리칸 위스키라고도 부릅니다. 덥고 습기가 많은 켄터키의 기후 탓에 오랜 시간 숙성을 하면 술이 증발을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고급 버번도 10년 이상 숙성시키기 힘들다고 하네요.
버번은 또한 푸르프(Proof)라는 미국의 독자적인 주류 도수를 사용한 최초의 양주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영국에서 유래한 푸르프는 화약에 떨어뜨려 불이 붙는 최소 도수를 100 프루프로 했는데 현재 기준으로 대략 57도쯤 된답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그냥 상온(15.6도)에서 주류의 총 용량 중에 에탄올의 비중을 의미하며, 농도 50%를 100 프루프로 정했다고 하죠. 즉 미국의 푸르프를 반으로 나누면 한국의 도수와 같아집니다. 산토리 계열의 짐빔이 유명하고, 텍사스 싸나이 매튜 매커너히가 너무 사랑해서 제품 기획에도 참여하고 홍보 대사로도 활동하는 와일드 터키도 유명한 버번위스키입니다. 참고로 매커너히가 참여한 제품은 롱 브랜치(Long Branch)로 텍사스의 메스키트 나무 숯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86 프루프이니 딱 정확하게 우리가 익숙한 43도 위스키가 되겠습니다.
켄터키의 기후는, 덥고 습하며 비가 많이 오는 여름에 30도에서 32도 정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에는 영하 3도에서 7도까지 떨어진다고 합니다. 켄터키 한인 인구는 만 명 정도 된다는 예전 자료가 있는데 최신 자료는 찾지 못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