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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Aug 18. 2020

소설 읽기와 진정성

최은영 작 <당신의 평화>를 읽고


“그는 어떻게 그렇게 확신했을까. 유진은 생각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자기의 언어를 붙여 나를 설명하려 했을까. 어떻게 그렇게 확신했지. 나를 그 정도로 쉽게 해석할 수 있다고 어떻게 그렇게 자신만만했지.” (66쪽)


“정순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정순은 언제나 자기 행동의 의미를 찾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행동이 옳고 귀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텨왔다. 유진도 그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에게 강요받은 것이 아니라 모두 엄마의 자유의지로, 엄마의 신념대로 살아왔다는 믿음으로 정순이 견뎌왔다는 것을. 그런 엄마가 자신의 삶을 ‘이런 삶’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69쪽)





최은영의 소설 <당신의 평화>의 일부분이다. 설명할 수 없을 타인을 너무나도 쉽게 설명해버리는 사람 앞에서, 자신 역시 너무 쉽게 그렇게 해버릴 수도 있지만 차마 그렇게 하지 못 하는 사람이 있다. 나의 어떤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길지 알기에 고통을 쉽게 전가해버릴 수 없는 그 사람은 참고 참는다. 이 소설에서는 유진이 엄마에게 그러하다. 어느 시절에는 그의 엄마가 유진에게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이 겪어나가는 크고 작은 변곡점들을 따라가다보면 참고 떠안는 사랑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괜찮을까. 괜찮다면 언제까지 괜찮을까. 유진에게는 이미 전적이 있다. 부당함에 저항하지 못했던 연애는 그에겐 자기 자신을 속이고 속인 비겁한 기억으로 남아 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머릿속에서 되풀이된다. 그런 유진이 이제는 엄마의 부당함에 맞서 평생 상처가 될 말을 내뱉는다. 그로 인해 벌어진 거리를 다시는 좁힐 수 없을지라도, 유진 역시 평생 이 일로 슬퍼하게 될지라도 유진은 그렇게 한다. 그가 택한 방식은 엄마가 겪어 온 부당함에 조용히 공감하는 것이 아닌 이제 그만 제발로 걸어나오라는 호소이다. 모녀가 슬픔과 맞바꾼 것이 자유와 해방의 시작이길 소망한다.


 비문학의 명쾌함을 좋아하지만 무엇이 옳다 그르다 정의내리기 어려운 우리의 삶을 층층이 들여다보게 하는 소설들은 좋음을 넘어 소중하게 다가온다. 당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넘겨 받고 나면 이전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게 된다. 풍경의 일부이기만 했던 인물과 이미 박제되어버린 사건들이 잠에서 깨어나 요동하는 것 같다. 요즘 들어 십수년 뒤 기성 세대가 되어 있을 나를 자주 상상하기에, 굳어진 관념이 깨어지는 시간은 안도감으로 다가온다. 오롯이 나의 모습인 채로 당당하게 존재하는 일이 무척이나마 애써야 가능하리하는 상상은 막막하다. 그럴 때면 평소보다 무거워진 몸을 느끼며 소설책을 집어든다.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며 누군가가 애써 길어올려 놓은 일상의 희망과 절망을 발견한다. 이를테면 열심히 살아온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은 순간의 긴장된 자세.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던 영역이 너무 좁아서 틀릴 수도 있음을 알아채고 꺾이어지는 순간의 민망한 얼굴과 안도하는 가슴. 그런 형상들을 상상하면 저 멀리에서 몇 줄기의 빛이 도달하는 것만 같고 그 빛줄기를 따라가다보면 시야가 미묘하게 확장되곤 한다.


그 다음은 어떻냐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흐릿해지면서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이 선명해진다. 자주 통화하지 못한 엄마와 오랜 기억 속의 아버지를 용기 내어 바라본다. 곧 있으면 생일이 다가오는 친구, 매주 만나야 하는 학생들, 밀린 설거지를 돌아본다. 그렇게 소설 속의 인물과 이야기를 바라보던 열렬하고도 투명한 마음을 빌려와 현실 가장 가까이에 존재하는 이들을 바라보다보면 이내 부끄러워지고 만다. 한 사람의 미묘한 삶의 굴곡들을 이해하기엔 내 생각이 너무나도 얕고 무디기에. 자주 그들을 멋대로 이해하고 틀에 가두는 실수를 범해오고 있기에. 결국 스스로가 별로인 사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모호한 걱정이 아니라 이미 실체로 존재하게 된다. 그 걱정이 나를 여기에 접속하게 했다. 지금의 내게 필요한 건 별로인 나의 어떤 부분을 꺼내놓고 들여다보며 오롯이 나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연습. 마음 놓고 그럴 수 있는 공간으로 브런치를 떠올렸다. 지금 못하면 나중에도 못할테니까 더 늦기 전에 솔직하게 글을 쓰는 연습을 해보고 싶어졌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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