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 (부끄러워서 다시는 읽지 못할 편지)
곧 만 30세가 된다. 인생의 한 분기점을 지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문득 이 시기의 자신에게 한 마디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써보기로 했다. 나에게 보내는 생일 축하편지.
생각만 해도 오글거리고 부끄럽다. 그래도 브런치에서는 최대한 솔직해지기로 했으니 써보련다.
몇 시간 후면 30살이 되는 ty에게,
마침내 30살이 되는구나! 진심으로 축하해.
우리가 원래 워낙 오글거리는 걸 못하고 자기 객관적으로만 보려고 하고 시니컬하잖아? (그런 너를 옳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생일인 오늘만큼은 다르게 행동해보려고 해. 우리 오늘은 나르시시스트가 되어 생일을 더 다르게 맞이해 보자!
생각해 보니 인생에서 처음으로 직업 없이 맞는 생일이구나. 20대 초반까지는 학생으로, 20대 중반 이후로는 직장인으로 역할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놈의 백수"잖아. 백수로 지난 8개월을 진짜 잘 즐기고 열심히 살았다, 그치? 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보고 시도해 보고. 지금까지 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남들은 학생 때 고민할 자아/자신에 대한 고민들을 우리는 거의 서른이 되어서야 해본 것 같아. 뭐 나에 대한 답도 못 찾았고 이뤄낸 것도 없지만 그래도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 앞으로도 직업적인 면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고 분석하면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계속 찾아나가자.
이 시기를 잘 즐기는 척해도 마음 어딘가 불안함이 있다는 거 알고 있어. "어떻게든 잘 되겠지, 나를 믿는 마음"의 자신감과 "도태되고 있는 것 아닐까? 게을러서 더 좋은 선택지를 보지 못한 거 아닐까" 하는 불안감의 충돌. 그런데 진짜 미안한데, 넌 항상 자신감보다 불안감이 더 클 거야. 네 기준에 충족할 만큼 노력할 수 없을 것이고, 네가 만족하는 선택은 없을 거야. 우리 그냥 인정하자. 우리는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 만족을 못하는 사람이란 걸 아니, 뭐든지 그러려니 하자. 너 자신이 별로로 느껴져, 그러려니 하자. 남들이 네 맘만큼 안 해, 그러려니 하자. 네가 기준을 너무 높게 정한 거야. 만족이 안된다면 내 기준이 높다고 생각하고 그러려니 하자. 우리가 고능해서 피곤한 거라고 정신승리하면서 살자!
우리는 참 양면적인 사람이야. 추구미는 다정하고 밝은 사람인데, 원래는 그렇지 못하잖아. 무기력하고, 무심하고, 날카롭고. 낯선 사람들에게는 밝은 척 친절한 척 잘만 하면서, 친한 사람에게는 우리의 본성이 나와서 후회한 적도 많지?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우리를 받아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넓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우리 정말 인복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당연시해서는 안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감사하고, 귀하게 여겨서 그 사람들 평생 함께할수록 있게 노력하자. 우리 추구미를 주변 사람들에게 발휘하자고!
그리고 우리 계속 운동하고, 자신에게 투자하는 건 멈추지 말자. 그게 건강이 됐든, 외모가 됐든, 자기 계발이 됐든! 이런 거에 돈 쓰고 시간 쓰는 거 좋아하는 거 이번에 완전히 깨달았잖아! 우리가 직업이 필요한 이유도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나를 위한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인 것 같아. 그리고 이런 투자는 미래의 나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니깐, 바쁘고 힘들어도 나를 위한 건강한 투자는 무조건 무조건 이어가자. 미래의 내가 10살 연하의 애인을 만나도, 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을 만큼 안으로도, 밖으로도 관리 열심히 하자!
생일 축하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회고와 반성문이 된 것 같네? 그래도 이렇게 또다시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어! 생일맞이로 좀 센티해진 것 같긴 해서 나중에 읽으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다. 앞으로 이 글을 다시 읽을 일이 없겠구나ㅋㅋㅋㅋㅋㅋ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린 지금까지 좋은 선택을 해왔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서,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릴 거야. 거기에다가 사주도 좋잖아~ 우리 잘 살 거야!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앞으로는 더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자, 우리!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2024.6.6
만 30살 되기 직전의 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