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될 거라는 말 대신에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
직장 생활할 때나 인간관계를 대할 때 항상 마음속에 되뇌는 말이다. 감정은 넘실거리다가 결국 쏟아지게 된다. 밀려들어오는 감정에 내 삶의 통제권을 주지 않으려 항상 애를 쓴다. 기분은 언제든 변하니까. 예를 들면 어느 날 하루종일 일진이 안 좋아서 예민해져 있다가도 별거 아닌 것 하나에 마음이 풀린다. 말 한마디로도 바꿀 수 있다.
세상살이 서러워질 때마다 내 감정을 바꿔주는 말 버튼이 있다.
‘포기하지 마.’
무얼 포기하지 말란 건지도 모르고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혼나면서도 계속 버튼을 눌렀다. 슬램덩크 속 정대만처럼 포기를 모르는 남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웃긴 건 지나고 보니 그럼에도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포기했던 게 뭐가 있나 말로 다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곳에서 수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불가능할걸. 나는 못해. 안 될 거야. 안될 테니 그만 노력하자. 다른 일에 힘을 쏟자.
내가 전역 후 복학했을 때 유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하의초등학교 풋살팀에 있던 유현이가 고민을 털어놨다. 신안군 풋살 대회를 나가는데 다른 학교들은 다 6학년들이 나오는데 본인 학교만 자기처럼 4학년들이 나온다고. 학생이 몇 명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4학년들이 나가서 이기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 했더니, 그 마저도 다른 친구들은 공을 차본적도 별로 없어서 제일 공을 잘 차는 유현이가 골키퍼를 맡았다고 한다.
그런 결정을 내린 체육선생님 작전을 알 것 같았다. 최대한 실점을 줄이며 패배하겠다는 뜻.
혼자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 유현이를 데리고 집 앞 운동장에 갔다.
골키퍼여도 넌 킥파워가 세고 풋살장은 멀리서 슛을 해도 괜찮을 거야. 상대편 골키퍼도 멀리서 오는 공은 한 번에 잡기 어려워서 공이 떨어지면 다른 친구들한테도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내 말을 들은 유현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게 우린 시간이 날 때마다 집 앞 운동장에서 유현이의 장거리슛 연습을 했다.
당일 경기 때 장거리 슛을 몇 차례 시도한 유현이는 결국 졌다. 하지만 최선을 다 한 패배를 처음 겪어본 유현이의 얼굴은 홀가분해 보였다. 한계지점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온 후에는 어떻게 됐을까? 하의초 풋살팀은 유현이가 6학년이 된 해에 신안군 대회를 우승하고 전라남도 풋살대회까지 참가했다.
한계라는 걸 명확하게 두 눈으로 확인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두 눈으로 한계를 확인하고 나서 패배를 인정하는 건 괴로운 일일까? 아닐 것 같다.
글모임하는 친구들에게 첫 모임 때 말해줬다. 다들 원고지 100매가 되는 작품을 쓰게 될 거라고.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나는 자신 있게 다시 덧붙였다.
시간을 들이면 누구든지 쓸 수 있다. 넉넉히 할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잘 따라오라 말했다.
직장일이 바빠서 중도 하차한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글동료들은 자신의 작품을 완성했다.
가능한지 확신할 수 없는데 누가 대체 노력하고 싶을까. 사는 게 그런 것 같다.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도 노력한다면 될지도 모른다.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는가. 시도해 봤는가. 최선을 다 해봤는가.
부끄럽게도 나는 30대가 되기까지 최선을 다 해본 게 몇 번인지 손으로 꼽을 수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게 두려웠다. 불가능한 일에 내 시간과 노력을 쓰고 싶지 않았다. 확실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에만 몰두하고 싶어서 요리조리 고단한 것들은 피해 다녔다.
얼마 전에 엄마한테서 카톡이 왔다. ‘슈팅라이크쏘니’ 책에 중꺾마가 써진 게 좋으셨나 보다.
엄마는 오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 걸 알았는데 너는 벌써 알게 됐구나 하며 좋아하셨다.
누군가가 알려줬다면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예전에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이리저리 마음이 휘둘리곤 했다. 잘하다가도 그걸로 정말 괜찮겠느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기가 죽어서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이제는 그런 일이 별로 없다. 해보지 않은 건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 해봤을지라도 내 노력을 가늠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에게 무조건 잘 될 거라고 응원해 주는 게 쉽지 않다. 노력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건 당사자의 몫이니까. 그래도 나한테 만큼은 칭찬 겸 허풍을 떨어도 되지 않을까.
잘할 수 있어. 이제까지 노력해 온 것들을 봐. 뜻대로 안 되더라도 한계를 확인해 보자.
난 안될 거라는 말 대신에, 끝까지 나를 일으켜주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