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글을 어떠한 형태로 만들게 된다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해서 좋겠다.’
이어서 자기 이야기도 했다. 가끔 글이 잘 안 읽히거나 말을 조리 있게 못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참 민망하다고.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일까? 아닌 것 같다. 초고를 쓴 후에 몇 번이고 계속해서 고친 글이 이 정도구나 한숨을 쉴 때가 많으니까. 이 정도인 나도 할 수 있으니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 사람에게 우연히 알게 된 시민작가 모집공고 링크를 보내줬다. 열명이 각자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으로 묶는 작가 되기 프로젝트였다. 내가 도와줄 테니 같이 글을 써보자고 제안했다.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끝끝내 지난여름 동안 함께 지지고 볶으며 결국 단편소설 한 편을 완성했다.
글은 작가들 뿐 아니라 쓰기로 결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3달째 목포 청년들과 글모임을 하고 있다. 각자 원고지 100매 내외의 작품을 쓸 것. 형식이나 주제는 자유다.
초고가 나오고 퇴고 중에 있는데 글동료들에게 추억을 선사해주고 싶어 출판물 제작을 준비 중이다.
원고가 완성되면 디자인까지 마무리해서 글동료들은 '내 책'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는 글쓰기를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즐기며 쓸 수 있다. 막힐 때마다 내가 썼던 방법들을 알려줬다. 예를 들면 턱턱 글이 막힐 때는 아무 말이나 허공에 말로 뱉고 그걸 그대로 받아 적으라 했다. 물꼬를 트면 이야기는 술술 나오게 된다. 우리가 대화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출간 작가가 되니 좋은 점이 꽤 있다. 그중 하나는 이제 내 글이 간직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책 말고 또 다른 형태로도 보관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예쁘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그림일기처럼.
내가 20대에 써서 이제는 사라져 버린 글들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달 글모임을 할 때 글동료들의 글을 인쇄해 갔다. 매번 모니터로 읽을 테니 종이로 읽어보자는 의도였다.
그중에 단편 소설 한 편은 종이를 잘 못 넣어서 크래프트종이에 인쇄를 해갔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본인의 글이 더 특별해 보이는 것 같아 좋다는 말에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내가 쓴 글이 인쇄가 되고, 글씨가 올라가는 종이 재질만 바뀌어도 기분이 달라지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그래서 예쁜 편지지를 찾았던 게 아닐까?
책이 비주류인 사회가 되어가는 걸 한강작가 겨우 막아냈다. 어떤 대단한 이야기가 탄생하더라도 영상이 아닌 활자로 된 책이라면 사람들은 거리를 두는 것 같다.
요즘 글동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이제 다른 글은 어떻게 썼는지 궁금해졌어요. 다른 글도 읽어보게 돼요.’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이 소중한 걸 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글도 얼마나 소중하게 갈고닦았을지 느낄 수 있다. 모두가 알게 되면 우리 삶 모든 순간에 책이 항상 함께 있게 되지 않을까.
“오늘 하루도 참 잘했어.”
허공에 혼잣말을 해보고 인쇄해 봤다.
허공에 사라진 내 목소리를 활자로 적으면 글이 된다. 그리고 그 글 안에는 힘이 생겨난다.
우리가 어릴 적 방학숙제로 해왔던 일기, 끄적거리다가 끝까지 채우지 못했던 다이어리, 모든 노트들. 다 어디로 갔을까? 자기 이야기를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는 형태를 모두에게 주는 게 내 목표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어떻게든 조금씩 끄적여보자. 그리고 어떤 모양과 형태로 각자의 이야기를 보관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자.
언젠가는 이야기를 소중하게 간직할 방법을 내가 꼭 찾아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