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 속 모든 게 낯설어질 때
러닝을 하다 보면 모든 행위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온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데도 느린지, 빠른지 알 수가 없다. 시야가 좁아져 세상은 흐릿해지고 무의식에 의해 몸이 움직인다. 반복적으로 휘젓고 있는 팔과 다리. 아스팔트 위를 내딛는 발바닥에는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럴 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계속해서 달리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제대로 움직이는 게 맞나?
삶도 마찬가지다.
어느 보통의 날, 달리기를 하던 그때처럼 문득 모든 게 낯설어진다. 내게 주어진 쳇바퀴를 한참 돌리다가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른 것이다. 물음표 속 내 삶에 대한 의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제와 같이 또다시 주어진 하루. 내일도 맞이할 하루. 이대로 계속 가면 되는 건지 한숨을 깊게 내쉬어본다. 답이 없는 걸 알면서도 답을 찾는 미로 속에 빠져버린 것이다.
매일 같은 업무 속에 갇혀 있는데도 눈에 보이는 보람은 내 손에 없다. 겨우겨우 연명하며 지나쳐온 내 인생, 무엇이 내 삶에 남았고 내 곁을 떠난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무얼 위해 이 모진 것들을 짊어지고 꾸역꾸역 살아왔을까. 내가 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바라는 장면 한순간을 위해 날마다 쳇바퀴를 돌린다.
평생 기다려온 꿈이 이루어져도 잠시 한순간일 뿐, 곧 과거가 된다. 그 순간에 멈춰 서서 기뻐하고 있자니 곧 뒤처진 사람이 될 것 같다. 겨우 이룬 내 꿈은 단순한 해프닝이 되지 않고 저 멀리까지 갈 수 있을까.
재밌는 건 모든 것이 낯설게 보이는 시기를 지나치고 나면 그 너머에는 새로운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일 걷는 똑같은 산책길에서 새로운 소설 주인공들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누구나 언제든 달리는 행위 그 자체 모든 게 낯설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런데 그 순간을 버티다 보면 언젠가 러너스하이가 온다.
모든 힘을 다 썼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하게 되는 지점. 내가 어떻게 호흡하고 있는지 페이스는 적당한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무아지경의 상태.
그렇게 되면 원래 내 힘으로는 갈 수 없는 저 너머까지 달려 나갈 수 있다.
일상에 권태로움이 찾아와서 모든 의욕을 뺐어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묵묵히 견뎌보자. 어제의 나를 추억하고 내일의 나를 응원하자. 힘들어서 발이 잘 움직여지지 않을 때는 팔이라도 억지로 휘저어보자. 그나마 다리를 휘젓는 게 수월해질 것이다.
매일 지나치는 거리와 마주치는 사람들. 그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될 때 이 모든 게 나를 향한 응원인 걸 알게 되지 않을까. 권태로운 삶 속에서 고군분투 중인 우리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언젠가 우리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게 되면,
매사에 지루해하던 내 삶이 다시 좋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