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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철 Nov 19. 2024

도망치더라도 포기하지만 말아

일상처럼 평범한 꿈을 꿀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꿈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난 이런 평범한 꿈을 꾼 적이 없다. 항상 감정이 극에 달하는 과격한 꿈을 꾼다. 

악몽의 첫씬은 늘 영문도 모른 채 무언가에 쫓기면서 시작된다. 일단 달리면서 지금 나를 쫓아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상황을 인지한다. 앞뒤 맥락이 뒤바뀐 전개가 우스꽝스럽지만, 정작 꿈속 주인공인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전력질주를 한다. 아무리 도망쳐도 벗어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괴로워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꿈인 걸 알게 된 나는 곧장 높은 건물을 찾아 올라간다. 그리고 악몽에서 깨어나길 바라며 그곳에서 뛰어내린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는 괴로운 상황을 마주해도 뛰어내릴 수가 없다.

글을 쉽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할까?

나는 소설 하나를 쓸 때 모든 생각과 마음을 그 이야기 속에 둔다. 그 이야기를 내 삶으로 가져오는 것이라 설명해도 되겠다. 글 쓰는 시간뿐 아니라 일과를 보낼 때도 소설 속 여러 감정들에 동화된 채로 살아간다는 의미다. 

전개될 이야기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를 고민하며 해결하고 결론짓는다. 이야기를 다 만들고 나면 난 속이 텅 빈 사람이 되는 것 같다. 

허전하다는 것이 아니다. 정말 내 안에 무언가가 없어졌다. 내 속에 있는 감정과 신념들을 떼어내서 소설로 만들었으니 그 이야기는 원래 나와 한 몸이었던 것이다. 사랑했던 소설 속 주인공들을 떠나보내고 나면 울적해진다. 비어있는 내 마음속에 아직도 새로운 이야기가 남아있을까?


소설을 쓰다가 이야기 어딘가부터 엉켜있는 걸 느끼면 한숨부터 나온다. 구성 어딘가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면 모든 개연성이 무너진다. 주인공의 행동부터 납득이 가지 않게 된다. 어딘가 잘못된 부분은 끄집어내서 고쳐야 한다. 그런데 그럴 힘이 남아있지 않을 때가 있다. 여기저기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내서 다시 엮어낸단 말인가. 

난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글만 쓰는 사람은 아니다. 글 말고도 돌봐야 할 것들이 많다. 


해야 할 일, 하지 못한 일, 하기 싫은 일들 앞에서 무력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대신 스스로를 껐다켠다. 

푹 자고 일어난다. 평소보다 몇 시간 먼저 잠자리에 든다던지, 오후에 몇 시간 낮잠을 잔다.

나에게 낮잠이란 날 힘들게 한 모든 일들을 전혀 모르는 척하는 행위다. 

이제 나도 모른다. 어찌 되든 상관없다. 될 대로 돼라.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마음전환이 된다. 포기했음에서 다시 해보겠음으로 마음이 바뀐다는 의미다.

물론 체력이 충전돼서 나아진 것이겠지만 나는 다른 상상을 해본다. 

자고 일어났으니 다음 에피소드가 시작됐다. 이전 에피소드는 어지간히 힘들었다. 이제 개운하게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들도 다시 천천히 살펴본다. 새 이야기가 시작되면 새로운 실마리가 공개된다. 어떤 등장인물이 나타나 도와줄지도 모른다. 주인공인 내가 어떠한 계기를 통해 각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건 늘 설렌다.

요즘도 나는 종종 스스로를 껐다 킨다. 이야기는 항상 이어지기에 문제가 저절로 해결돼 있던 적은 거의 없다. 어차피 그런 이야기는 재미없어서 보고 싶지도 않다. 

올해 상반기에 첫 소설집이 나오고 여름에도 단편 한편을 썼다. 한동안 마음속이 텅 비어있더니 요즘에는 눈 오는 겨울 소설을 쓰고 싶어 졌다. 눈 밟는 발자국소리를 담은 이야기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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