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해 생각해 봤어
‘사랑에 대해 생각해 봤어.’
가장 오래 만났던 사람에게 썼던 편지 속 첫 문장이다.
그 사람과는 23살에 처음 만나 5년 동안 연애했다. 내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해 주던 사람이다.
당시에는 학생회 역할을 맡아서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난 늘 혼자인 듯 고립된 기분이 들었다.
모든 관계들이 그럭저럭 괜찮았고, 알게 된 사람들 누구도 가리지 않고 친하게 지내며 가까워졌다. 그런데 마음의 문은 항상 반틈만 열려 있었던 것 같다.
누가 됐든 내 속을 전부 보여주진 않는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했지만 그 사람에게는 닫아 놓은 나머지 문 마저 다 열고, 안까지 들어오게 했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난 후에는 이 세상에 진짜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했다. 점차 내 삶과 감정은 더욱더 고립되어 갔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알던 사람. 오랜 시간 옆에 있었더니 서로가 서로에게 꼭 맞는 퍼즐이 된 것 같았다. 한번 완성된 퍼즐은 액자에 넣어두고 평생 볼 줄 알았지만, 그 사람은 꼭 맞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갔다.
헤어질 때쯤에는 우리 안에 남은 게 하나도 없었다. 설렘이나 슬픔, 사랑마저도 없는 것처럼 속이 텅 빈 것 같았다. 감정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잠잠했다.
'이제 더 이상 처음처럼 좋아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라는 말을 하고 난 후에야 우린 진짜 이별을 했다.
어떤 상황에도 잠잠했던 내 마음은 혼자 남게 되니 쓰나미가 쳤다. 혼자가 되고 난 후에 상실감과 우울감은 괜찮아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항상 사랑이 무엇 일지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잠잠했던 마음이 왜 헤어지고 나서야 요동쳤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기복 없던 관계는 왜 매듭 지은 후에야 슬프게 될까.
내가 봐 온 사랑의 모양은 설렘이나 기쁨, 혹은 익숙함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새삼 느끼게 된 게 있다. 사랑해도 미워한다. 사랑해도 화가 난다. 부정적인 감정들은 사랑과 반대편에 있는 것이라 생각해 왔는데 아니었다.
사랑은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 저 밑에서 묵묵히 자리 잡고 있다. 모든 감정 밑에는 사랑이 있고 그 위로 여러 감정들이 파생되어 올라오는 상상을 하곤 한다.
얼마 전 드라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보며 간접 이별을 체험했다. 여주인공 최홍이 이별하던 날 준고에게 자신을 제발 혼자두지 말라며 화를 낸다. 최홍이 서운함과 서러움, 분노와 상처를 쏟아내고, 준고는 당황스럽지만 묵묵히 그 감정들을 받아내며 견디고 서있었다. 두 사람의 마음에 사랑이 자리 잡고 있기에 이 모든 감정들이 공존하게 되지 않았을까.
글을 쓰면서 권태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키보드 위에 두 손을 올려둔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한 문장도 써지지 않을 때. 한참을 써 내려가다가 다시 읽어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하며 길을 잃을 때. 글을 쓰고 있는 이 행위가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이렇게까지 내가 매달려야 하는 걸까. 지쳐버리면 참지 못하고 노트북을 덮어버린다.
이별할 때의 마음과 비슷하다. 당신이 없어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을 테고 난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고생하지 말고 서로를 위해 그만하자.
그러다가도 고단한 마음이 조금 괜찮아지면 다시 내 글을 읽는다. 좀 더 다시 써보자.
글 한편은 완성이 되기까지 피곤, 권태, 기쁨, 설렘 등 다양한 내 속내를 지나쳐야 한다. 그럼에도 언젠가 끝끝내 해야 하는 이야기에 마침표는 찍게 된다. 글을 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난 계속 글을 쓰고 싶다.
내 이야기를 적어내는 이 시간이 외롭고 고단하며 지독히도 혼자 있는 시간이지만, 난 매일 이 시간을 기다린다.
힘들게 해도, 미워하더라도 그 자리 밑에는 잠잠히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
난 아직도 사랑을 믿는다. 곧 저물어서 깜깜해질 걸 알지만 계속 아름다울 거라 믿고 싶다.
붉게 물들었다 밤이 된다. 아침이 오고 다시 밤이 오지만 그곳 어딘가에 사랑은 그대로 있었다.
우린 사랑을 어떠한 모양이라고 착각하면서, 내가 기다리는 모양이 되기까지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