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있는 한적한 목포에서 이야기를 쓰자며 모인 사람들
나는 바다가 있는 한적한 목포에서 어린 시절부터 지내오고 있다. 난 이곳이 좋다.
서울에서 온 친구가 매번 농담 삼아하는 말이 있다. 서울 노원구로 가라, 네 감성을 알아주는 사람이 더 많을 거야. 그럼 난 이렇게 답한다. 난 그래도 여기가 좋은걸.
한적한 목포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청년은 더더욱 적다. 그중에 나처럼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글쓰기모임을 열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내용을 준비하면서 부담이 컸다.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생각보다 수월하게 사람들이 모였다. 글을 써보겠다는 글동료 8명, 지난주에 첫 모임을 가졌다.
사전에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릴 때 '첫 모임'이라는 말 대신 '첫 만남'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시간을 생각할 때 더 설레고 기대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모인 사람 모두가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갔다. 다들 긴장하다가도 자기 이야기를 써 내려갈 때는 본인 원래 얼굴이 나오는 것 같았다. 나도 글을 쓸 때는 평소와는 다른 얼굴이 될까 상상해 봤다. 글소재를 고민하느라 찌푸려진 미간들, 볼펜 소리, 문장을 적어가는 사람들 머리 위로 몽글한 감정이 떠다녔다. 이미 알던 사람들이지만 다시 보게 됐다.
보통 자기소개를 할 때 직업은 빠지질 않는다. 나를 드러내는 것들 중 가장 비중이 큰 요소니까. 그런데 이번 글모임 첫 시간만큼은 직업을 말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서로를 알아가는데 직업이 필터 역할을 할까 봐 한 제안이었다. 필터 없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길.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떤 종류의 글을 가장 많이 써왔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자기소개서, 업무서류, 편지, 일기 등 다양했다.
당일에 적어 본 글소재들
-잊히지 않게 젊은 날의 나를 기록하고 싶다.
-할머니가 되어서 지금 나의 젊은 날을 회고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사랑을 만나고 이별하고 다시 그 아픔이 행복이 되어가는 과정을 소설로 적어보고 싶다.
-매일 쓰는 읽기를 넘어서서 설득력 있는, 힘이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다른 사람의 글소재를 훔쳐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어느 소설에서 인상 깊게 읽은 장면이 있다.
남자가 노트에 한 문장을 적고난 후, 노트를 여자 앞으로 민다. 여자는 펜을 들어 남자가 쓴 문장 밑에 본인의 말을 적는다. 번갈아가며 노트에 적힌 두 사람의 문장들은 무언가를 질문하거나 대답하는 내용이 아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본인 의식의 흐름대로 떠오르는 말들을 적는다. 각자가 적은 생각의 흐름들은 서로의 문장에 영향을 준다. 서로의 무의식이 뒤엉켜서 이어져나간 글은 함께 쓴 글이 된다.
나도 누군가의 생각의 흐름을 표현해 나가는 문장 속에 함께 뒤엉키는 상상을 한다. 누군가의 글이 완성 돼 가는 여정을 함께 하고 싶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서로의 마음속 어딘가를 보게 될까?
글을 쓰며 밤을 새는 우리는 어떤 이야기와 생각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