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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철 Oct 22. 2024

밤을 새는 우리

나와 함께 밤을 지새워준 친구들

퇴근 후에 집에 돌아와 지쳐 쓰러져도 쉽게 잠들지 않는 날이 있다. 유난히도 바빴던 날은 하루종일 집에 가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내가 바라는 상상 속 나의 집에선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아무도 없는 우리 집을 기다린다. 내 방 한편, 조명 하나만 켜도 따뜻해지는 공간. 조명은 내 시야만 밝히면 된다. 그 방 한편에 들어갈 때, 그제야 집에 온 것 같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고1 때 이사 온 곳이다. 서른 하나가 됐으니 꽤 오랜 시간 동안 살고 있다. 부모님은 당시에 고향으로 가신 후라 혼자 이 집에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집에 있는 세 개의 방 중에 난 현관과 가장 가까운 방을 골랐다. 싱글침대 하나와 책상을 두면 딱 맞는 방. 2층 우리 집에서는 베란다 창문 너머로 키 큰 소나무가 보인다. 밤에는 도로를 지나는 차들의 불빛이 아파트 담장 너머로 번쩍인다. 


처음 이곳에 이사를 왔을 때는 잠이 잘 안 왔다. 열일곱에 낯선 집에서 혼자 지내던 걸 생각하니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겠지 싶다.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에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잔잔한 빗소리에 귀가 즐거웠다. 그런 날에는 잠도 자지 않고 영화를 보거나 노래를 들었다. 

비 오는 날 습도 안에 울리던 라디오 노랫소리.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소리. 창문 틈으로 불던 바람소리. 젖은 도로 위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 가만히 듣고 있으면 무엇이라도 글로 남겨야 할 것처럼 감정이 뭉클거렸다.

브런치 글 쓰러 자주 가는 카페, 베르시

우리 집은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지 않았다. 사실 아지트로 만들어줄 단짝 친구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창 시절에 가장 가까웠던 친구를 꼽으라면 바로 대답을 하던데.. 난 아지트를 만드는 대신 매일 밤을 온갖 이야기들과 친구 하며 지냈다. 소설, 영화, 만화, 드라마, 라디오 속 사연들.

단짝 친구는 아니더라도 함께 밤을 지새우던 친구들이 있다. 꿈으로 가득 찬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펜팔 친구들. 인터넷카페에서 함께 글을 쓰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사람들. 이름 모를 사람들과 보냈던 내 10대 시절은 일탈 없이 무탈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가 기특할 정도로 말썽 없이 지냈다. 어렸을 때는 모난 성격 때문에 언제든 삐뚤어질만한 타이밍이 많았는데 그러지 않고 묵묵히 혼자 있는 시간을 지나왔다.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글을 쓰던 시간이 내 10대 시절 가장 빛나는 추억이다. 앨범으로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기억들. 하지만 사진은 없어서 당시에 기록한 블로그를 그대로 남겨놨다. 한 번씩 그 블로그에 들어가 내가 썼던 이야기들을 다시 읽어본다. 혼자 있고 외로웠을 적에 남겼던 일기들. 지금 보면 터무니없는 소박한 소설들. 라디오를 듣다가 받아 적어 놓은 마음을 울리는 말들. 

밤을 새는 우리, 자기소개 질문지

그래서 다시 글친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요즘은 글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지인들에게 글쓰기 모임을 만들자고 했다. 나까지 8명이 모이게 됐고 곧 첫 만남을 갖는다. 

나는 누구든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을 거라 생각한다. 꼭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건 아니더라도 자기 이야기는 누구에게든 소중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나만 볼 일기를 매일 기록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함께 글을 쓰면 참 즐거울 것 같다. 공들여 적은 오늘의 감정은 평생 읽게 될 일기가 될 것이고, 소박하지만 즐거운 나만의 이야기를 적다 보면 그 안에서 나도 몰랐던 나를 만나게 되겠지.

정리되지 않고 소화할 수 없는 생각과 모든 감정들은 글을 쓰고 난 후, 되돌아볼 수 있는 모양으로 바뀌게 된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사진으로 남길 수 있으니 내 이야기는 글로 굳이 적어야 하지 않을까. 내 이야기를 적은 후에 다시 읽어보면 그 안에 진짜 내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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