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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철 Oct 08. 2024

나는 매일, 오늘을 문장으로 만난다

모든 장면을 문장으로 기억하는 연습

문학사를 전공했어도 소설을 쓰는 건 항상 어려웠다.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르니 낮은 방지턱에도 이야기가 턱턱 막히며 덜컹거렸다. 소설작법 일타강사는 왜 없는 걸까. 

돌이켜보면 대학교 때 창작론 교수님들도 글 쓰는 과정에 대해서만 알려주실 뿐, 기술에 대해서는 알려주시지 않았다. 소설가이고 시인이었던 교수님들은 영업비밀을 지키고 싶었던 걸까? 학생들이 쓴 글에서 개선되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는 학생들 스스로 생각해 보라 하셨다. 

소설을 쓸 때 도대체 어디까지 묘사해야 하는 걸까? 주인공의 자취방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방 안에 있는 모든 걸 다 알려줘야 하는 걸까. 자취방이니 중저가 침대브랜드에, 침대 사이즈는 슈퍼싱글 정도.. 냉장고는 너무 크면 이상하겠지? 자취방에 수저통도 있으려나? 몇 평짜리 방인지 적을까?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은 이렇다. 텍스트로는 모든 걸 보여줄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는 걸까?

소설은 영화처럼 표현할 수 없다. 텍스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 앵글로 모든 걸 담는 영화감독이 부러웠다. 내가 소설가 지망생이 아니라 영화감독 지망생이면 더 편했을 텐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주인공이 있는 공간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속도감을 표현할 때도 그냥 빠르게 움직이는 대상을 촬영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참 불리하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메라 구도에 대해서 잠깐 공부하게 된 후로 그런 생각은 사라지게 됐다.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것, 카메라앵글 안에 모든 걸 담을 수는 없다. 그러니 그들도 포커스를 어디에 둘 지를 선택해야 한다. 포커스가 향하는 대상은 감독의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그 대상은 배우일 수도 있고, 공간이나 날씨 일 수도 있다. 떨리는 배우의 얼굴이나 손끝을 비춰서 감정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이제는 어디까지 소설에서 표현해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위해 꼭 비춰줘야 하는 대상이 어디일지, 누구일지 고민한다. 

소설 쓰는 동안 마주한 여러 방지턱 중 비중이 컸던 건 어휘력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말을 참 잘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지만, 작가로서는 아닌 것 같다. 이야기를 앞으로 밀고 나가다 보면 비슷한 표현이나 단어가 자꾸 등장하는 게 보인다. 그런 것들을 보게 되면 참, 글을 쓰기가 싫다. 책을 많이 읽어서 어휘력을 기르라고 하지만 난 한국사람이라 성격이 급하다. 당장 오늘 소설을 써야 하는데 언제 그 방법으로 어휘력을 늘릴 수 있을까.

내 상상 속 주인공들은 매력적이고 생기 있다. 기가 막히게 떠오른 아름다운 장면은 내 어휘력에 갇혀서 빛을 잃어간다. 초등학생 때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면 스케치할 때는 예쁘지만 색칠을 할수록 그림을 망치게 돼서 그만 그리고 싶었다. 상상한 것을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없다면 누가 그림을 그리고 싶을까. 종이가 너덜너덜해지고 여러 색이 섞여 칙칙해진 그림을 보고 난 후에도 미술시간을 좋아할 수 있을까. 

포기하면 편하지만 포기하면 모든 게 끝나버린다. 난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본판 위에 종이를 바로 대고 그리는 그림은 훨씬 그리기 쉽다. 글쓰기도 대입해 봤다. 일상을 문장으로 그려보는 연습을 매일 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문장으로 그 순간을 머릿속에 남겼다. 그냥 하늘색은 없다. 그 안에는 붉기도 하고 분홍빛을 내기도 하는 여러 색이 함께 섞여있다. 바람은 어떤 느낌으로 불고 있는지 문장으로 그려본다. 대단한 어휘를 찾을 필요 없이 느낀 대로 떠오른 문장이면 내가 가진 최선의 표현인 것 같다. 그 후로는 장면을 묘사하는 게 두렵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을 찾으면 되니까. 

나는 아직도 글을 잘 쓰는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이번 출간을 준비하면서도 편집장님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 12매였던 글을 40매로 늘리고, 그걸 다시 25매로 줄이는 과정을 통해서 이야기에서 꼭 필요한 문자만 남기는 연습을 하게 됐다. 앞으로는 또 어떤 걸 배우고 연습하게 될까. 지금보다도 훨씬 더 멀리, 지금은 보이지도 않는 저 먼 곳까지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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