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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철 Oct 01. 2024

우린 글이 될 수 있을까

서툴렀던 문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20대에 썼던 글은 사라지고 없다. 힘이 없는 문장들이 그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허공에 흩어져버린 것 같다. 나의 20대를 앨범 삼아 제목을 정하자면 무기력이 가장 걸맞다. 무기력하다는 말 뜻 그대로, 어떠한 일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기운과 힘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한 번씩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할 때마다 의욕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무르팍이 까지도록 넘어졌는데 아물기도 전에 다시 일어나서 자꾸 걸어가야 한다는 강박이 무거웠다.

군대를 전역하기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글을 썼던 것 같다. 군생활하는 동안에도 밤에 침낭 밑에서 라이트펜으로 노트를 비춰가며 글을 썼다. 두 번 정도 공모전에서 떨어진 후로는 그런 노력도 점차 사라졌다. 밤잠 줄여가며 노트가 너덜너덜해지도록 써놓은 내 글은 전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내용조차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에 난 졸업을 코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게 창피했다. 지금에야 글을 써서 책을 내지 않았냐고 하지만 그 당시에 글 쓰는 건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대로 사회에 나가도 되는 걸까. 가장 자괴감이 들었던 건 대학생활 동안 최선을 다 해서 글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대학교에 가면 더 많은 걸 보고 배우며 실력이 늘 줄 알았는데 늘게 된 건 술뿐이었다. 


분명히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대부분의 내 노력들은 아르바이트비로 환산돼서 생활비로 지출 돼버렸다. 단 한 번도 맘 편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던 적도 없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난 내 인생과 진로에 무책임하고 계획 없는 사람이 된 후였다. 다른 친구들처럼 용돈 받으면서 대학교를 다녔으면 달랐을까 생각해 볼 때가 있지만, 결국 그건 아무도 모른다.

20대에 썼던 글은 모두 다 사라졌다. 글을 다 쓴 후에 고치기를 반복하다가 열등감이 원인이 되어 하드를 전부 밀어버렸다. 내 실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했기에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학과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다. 학과 내에서 상품권을 걸고 학생들끼리 글쓰기 실력을 겨루는 자리에서도 상 한번 받아본 적이 없었다. 


밤늦게 알바를 마치고 집에 와서 글을 썼다. 기껏 열심히 노력해서 쓴 글이 다시 읽었을 때 볼품없게 느껴진다면 누가 그 좌절감을 감당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다시 고쳐도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쓴 글이 마음에 들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단 한 문장도 마음에 맞는 게 없었다. 감정만 흘러넘치는 구질구질한 일기 같았다. 누가 이런 이야기를 궁금해할까. 좌절하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점점 글 쓰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무너지면 사람을 찾게 되고, 만나게 된 사람과는 술자리를 갖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부터는 사람은 생략하고 혼자 술을 찾게 된다. 술로 위로받기를 몇 년, 그동안 마음이 몇 번이나 무너졌을까.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때는 몰랐다. 술은 슬픔을 덜어줄 수 없다. 슬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게 내 자세를 흩트려놓기만 한다.


5년 정도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고 혼자 남게 됐을 때 난 섬에 갇힌 것처럼 고립됐었다. 아무도 구하러 와주지 않을 테고 혼자 헤엄쳐 이곳을 벗어나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냥 내가 섬인 것 같기도 하다. 

친구도 만나지 않고 교회도 가지 않았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니 정말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사라졌으니, 이젠 더 이상 아무도 나를 모른다. 지도에도 없는 섬에 혼자 있게 됐다.

우울감에 푹 빠져있던 게 몇 달,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농구공을 들고 집 근처 공원에 갔다.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지만, 골대에 공을 넣는 것만큼은 내 뜻대로 됐다. 잘 들어가지 않을 때는 분노가 올라오기도 했지만 공원에 자주 갈수록 공이 더 잘 들어가게 됐으니 극복할 수 있었다. 

공을 던지는 날이 반복되다가 어느 날 마음이 아물게 됐을까? 마음에 웬 바람이 불어 컴퓨터학원에 등록했다. 몇 가지 자격증을 따고 금방 대학교도 졸업했다. 학원을 다니고 학교를 다니면서도 농구장에 가서 공 던지는 건 거의 매일 반복했다. 오늘 하루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또 일어날 테지만 지금 던지는 공은 내가 바라는 대로 골인된다. 그게 참 위로가 됐다. 화가 나고 괴로웠던 날은 밤에라도 가서 공을 넉넉히 던졌다. 그래야 내일을 버틸 것 같았다.


지금도 나는 마음에 꼭 맞는 문장을 쓸 수 없다. 하지만 행복할 수는 있다. 

최선을 다 하되 마음에는 여유를 가지자.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고 해서 쉽게 포기하지 말자. 도움이 안 되는 일은 사실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굉장한 작품을 만났을 때 더 이상 질투하지 않게 됐다. 오히려 본받기 위해 필사노트 펴서 공부를 한다. 


20대에 써서 지금은 허공에 사라져 버린 그 모든 문장들은 어디에 있을까. 여태 내 곁에 남아있는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내 안 어딘가에 토대로 쌓여서 마음이 더 튼튼하게 됐을까.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노력들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그 전부가 내 주변 어딘가에 든든히 자리 잡고 있다. 열심히 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던 만큼, 의미 없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쌓이고 쌓여서 오늘도 견뎌주고 있다. 그러니 서툴렀던 내 문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도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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