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유철 Sep 17. 2024

바람이 분다, 산책이 좋다

한적한 밤, 산책을 하다가

해가 지고 하루가 끝나갈 때쯤, 혼자 있는 집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적막함이 쓸쓸해서 노래라도 틀어놓으면 하루동안 잠들어 있던 감정도 노랫소리와 함께 올라온다.

외로움인지도 모를 적적함이 찾아오면 이어폰을 챙겨서 집 밖으로 나오게 된다. 차키는 없어도 된다. 집 앞 마트를 지나 자주 가는 가게들을 지나 훌쩍 걷다 보면,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 동네와 멀어진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다른 동네 길을 걷고 있으면 내 마음속 잊고 있던 감정이 다시 기지개를 켜게 된다.

같은 곳을 가더라도 걸어서 가는 것과 차를 타고 가는 건 느낌이 다르다. 경치를 보려면 속도를 줄이라고 했던가. 추억을 보려면 걷는 속도가 적당하다. 자주 가던 동네, 가게들을 지나치고 예전에 자주 듣던 노래도 오랜만에 들어본다. 그곳에는  예전의 내 모습이 있다.

언젠가 자주 갔던 카페에 불이 꺼져 있는 게 보인다. 그 안에는 지나간 옛사랑이 아직도 앉아 있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어릴 적 살았던 동네에 가서는 젊었던 우리 엄마가 보이고, 학교 근처 분식집을 지나칠 때면 함께 떠들며 놀던 옛 친구들이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여기저기서 좋은 소재들을 보게 된다. 밤산책 길도 그렇다. 불 꺼져있는 조용한 밤에 서산동 동네에 가보면 유일하게 혼자 쨍하게 불 켜져 있는 편의점이 있다. 그곳에서는 '내가 바라왔던 색' 속 주인공 수현을 상상하게 됐다. 그리고 목포에서 꽤 인기가 많지만 밤에는 은은하게 조명만 켜져 있는 유달동사진관 안에는 '오늘의 사진' 주인공 정민이 있을 것 같았다. 매일 걷다 보면 더 좋은 글을 쓰게 될까?

나는 폰에 메시지가 와있어도 바로 답장을 하지 않는 편이다. 답장을 보내면 또 답장이 오고, 그 메시지에 또 다른 대답을 해줘야 하는 게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그래서 하루 중에 마음의 여유가 가장 넓은 이 시간에는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해본다. 걷다 보니 생각이 났는데, 요즘에는 별일 없느냐고.

한번 걸으면 보통 한 시간은 넘게 걷는다. 컨디션이 좋으면 두 시간도 걷지만 보통 90분쯤 지나면 발이 아프다.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라고 타이머가 울린 셈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떠오른 생각들을 핸드폰에 메모해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러고 나면 어서 집에 가서 글이 쓰고 싶다.

새로 떠오른 재밌는 상상들은 어떤 소설로 만들 수 있을까. 연락한 사람들에게는 편지를 쓰고 싶다. 아무래도 잘 지내냐는 몇 마디 이야기로는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한 것 같아서다. 해주고 싶은 말을 쓴다는 점에서 소설과 편지는 결이 같은 셈이지 않을까?


여느 산책하고 집에 돌아온 밤에 당신에게 편지를 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 이야기를 쓸지도.


이전 04화 감정과 영감의 움직이는 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