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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철 Sep 03. 2024

오늘 이 세계에서
이 노력이 사라진다 해도

오늘 행복했다면 해피엔딩일 테니

다른 사람들은 인생계획을 어디까지 세울까? 나는 MBTI 성향이 반반이다. 즉흥적인 P와 계획적인 J가 반반. 여행중일 때는 즉흥적이지만, 직장에서 업무를 봐야 할 때는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인생을 계획할 때 있어서는 확실히 P인 것 같다.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매달 월급 받는 직장을 다니자. 퇴근하고 나면 글을 쓰는 거야.’ 

퇴근 후에 쓴 글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책을 내는 작가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상상이 언제쯤 이루어질까 했지만 예상보다 그날이 빨리 왔다. 서른한 살에 이루어지다니.

여수 밤바다

내가 계획한 인생은 ‘슈팅라이크쏘니’가 출간되면서 마침표를 찍게 됐다.

친한 형이 함께 저녁 먹다가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바라왔던 순간이 현실로 오게 됐잖아? 요즘 어때?”

요즘 내 심정은 개운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다.

평생 그려온 그림을 완성하고 나니, 이젠 새로 무언가를 그릴 수 있는 종이가 내 앞에 주어졌다. 무얼 그릴까?

유현이랑 갔던 어느 전시회

작가가 되겠다고 자신 있게 아빠에게 말한 적은 없다. 작가가 돼서 돈은 어찌 벌고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니 라는 답변을 들을 것 같아서 굳이 말하지 않았다. 

국문과로 진학할 때만 글 쓰는 걸 배우러 가겠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나도 아빠도 글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부모님 마음이 어땠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직장을 가진 아들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되기 위해 여태 노력해 왔다.

올여름에는 직장에 다니지 않고 염전에 가서 아빠 일을 도왔다. 일주일에 이틀만 가서 도와주면 된다기에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남은 평일 시간에는 글을 썼다. 교회 선배가 알려준 지역문학상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했다. 신문사 다닐 때처럼 지역과 사람들 역사자료들을 조사했다. 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활용했던 것 같다.


“올여름에는 문학상에 한번 참여해 볼게요.”하고 아빠에게 말하니, 염전 다니는 동안 하면 되겠네 하며 잘됐다고 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아빠 생각에도 잘 된 일이라니. 참 잘 됐다.

물질하는 걸 구경하는 아빠

20대에는 언제든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내게 덜 소중한 일에는 체력을 아껴야 할 것 같았다. 

다음번 더 타이밍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는 하지 말자.

직장을 잡고 안정적이 어지면, 그때 열심히 글을 써보자.

지나고 보니 그 생각은 틀렸던 것 같다.

석민이랑 여수 취재 갔던 날

언제 어디서 무얼 하든 열심히 노력하고 나면, 나한테 무언가 남게 된다. 기술, 경험 혹은 성실함일 수도 있다.

몸 버려가며 아르바이트하던 대학생시절.

친구들과 떠들고 놀며 낭만을 찾던 밤들.

언제든 혼자 훌쩍 떠나버리면 여행이 되던 시간들.


무엇이 되든 당장 오늘 해보자.

오늘 이 모든 게 끝나도, 지금 행복하다면 해피엔딩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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