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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철 Aug 27. 2024

글만 쓰면
돈은 누가 벌어?

퇴근해야 원고 쓸 시간이 생긴다. 치열했던 네 달간의 사투.

작년 9월, 오디션이 끝나고 나서야 제대로 된 휴식기를 가질 수 있었다. 한 달을 집에서 쉬고 10월이 시작될 때쯤 아는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본인 직장에 단기 3개월짜리 공고가 떴는데 지원해 보라는 것이었다. 위탁가정들을 사례관리하는 사회복지센터였다. 

원고를 써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원고 제출기한이 몇 달 남았고 단편 한편만 제출하면 되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퇴근하면 원고를 쓰는 건 예전부터 바라왔던 일이다. 결국 선배가 알려준 공고에 지원하고 면접을 거쳐 다시 직장을 얻게 됐다.

퇴근하고나면 보이던 목포 밤바다

'3개월 단기니까 홍보업무 정도만 맡게 될 거야.'

선배가 입사 지원하기 전에 해준 말이다. 현실은 달랐다. 홍보업무부터 사례관리, 출장까지 맡게 됐다. 상사가 시키면 해야지, 내가 할 일이니 그냥 하면 되지만 입사 전에 들었던 말과는 달라서 꽤 당황스러웠다. 

입사 후 한동안은 업무에 적응하느라 글을 못 썼다. 그러다 출판 담당자에게 연락을 받았다. 원래는 세 명의 단편소설을 하나씩 묶어서 한 권으로 출판하려 했으나, 각자 한 권씩 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나에게 소설을 세 편을 보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여기서 안된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가능하다고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생긴 고질병이다.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일단 알겠다고 한 후에 방법을 모색한다. 이번에도 당연히 가능하다고 우선 말한 후 어떻게 해야 소설 세 편을 정해진 기한까지 제출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완도 바닷길

어느 직장이나 그렇겠지만 근로계약서에 적힌 근무시간과 실제 근무시간에는 차이가 있다. 센터에 행사가 있거나 출장을 가는 날엔 눈치껏 일찍 출근해야 하고, 야근 하는 날이 많았다. 함께 일했던 윗분들은 기본급이 적은 나를 걱정해 주셔서 초과근무를 하라며 몇 가지 업무를  더 챙겨주셨다. 

입사한지 한달이 됐을 땐 야근하는 날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퇴근하고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았다. 사무직인 줄 알았지만 완도로 가야 하는 출장이 잦았으니 운전직이나 다름없었고, 여섯시 퇴근을 위해서 날이 선채로  업무에 에너지를 쏟았다. 그러니 집에 오면 책상에 앉아 있을 힘이 남아있으리가 없다.

직장을 다니면서 밤에는 글을 쓰고 언젠가는 작가가 돼야지 했던 지난날의 내 희망 사항에 적신호가 떴다. 꽤 많은 날을 아무 것도 못한채 지쳐쓰러져서 잠에 들었다.

1월 말, 마침내 퇴사가 다가왔을 때 좀 더 같이 일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난 2월 말까지 원고를 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어서 거절했다. 퇴사하고 나니 마감 기한이 딱 한달 남았었다. 날마다 아침 일찍 카페 문 여는 시간에 가서 밤이 될 때까지 글을 썼다.

하루 종일 글만 쓴다는 건 난생처음 겪는 신선한 고통이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왔던 출판의 순간이 다가왔는데 아직 원고가 준비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양의 원고를 써본 적이 없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 할 시간도 아깝다. 얼른 한자라도 더 쓰자. 

항상 바라왔던 꿈이 이루어지기 직전인데도 너무 괴로웠다. 글이 안 써지면 걱정이 돼서 깊게 잠들 수도 없었다. 새벽까지 날을 새우며 글을 쓰다가 새벽예배를 갔던 날, 예배 후에 집에 가서 잠들면 너무 오래 자버릴까 봐 차에서 쪽잠을 자고 다시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나를 쥐어짜면 짤수록 글이 나왔다.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함께 나오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괜찮았다. 글이 한 방울 한 방울 조금씩 나와서 조급할 때도 있지만, 그러다가 한 번에 이야기가 쭉쭉 나오기 시작하면 기뻐하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밥 먹고 축구만 하면 나도 저만큼 하겠다라며 훈수를 뒀던 지난 날의 내가 떠올랐다. 

밥 먹고 글만 썼는데도 이 정도구나. 

<내가 바라왔던 색> 말고 두편을 더 써야했다. 한편은 대학생 때 소설창작론 수업 과제로 제출했던 <오늘의 사진>으로 결정했다. 당시 수업을 들을 때 같이 수강중인 학생들의 피드백 내용대로 소설을 고쳐야 했는데, 그래서 내 의도와는 많이 다른 결말을 맞이했던 소설이다. 

마지막 세 번째 소설은 소재가 나오기 전까지 고민이 가장 많았던 글이다. 가장 나다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에 포커스를 두고 이야기를 짰다.

대학생, 청춘들의 파이팅을 담자. 불리하고 지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향해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소설을 구상했다. 그렇게 나온게 <슈팅라이크쏘니>다. 

내가 아끼는 이야기 중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슬램덩크다. 슬램덩크 속 자신을 천재라고 믿는 강백호가 참 부러웠다. 천진난만한 백호도 지고있거나 지칠 때는 '내가 천재가 아닌 건가.'하며 괴로워했지만 결국에는 그 생각들을 부정했다. 이젠 나도 내가 천재라는 자기암시를 매일 해주고 있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믿어줄까.


내가 왜 불리한지, 내게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보지 말자. 

내 곁에  있는 작은 것들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해보자. 

그렇게 했을 때, 결과가 어떻든 

가장 아름다운 정점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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