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가 소설이 되어가는 과정
소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예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이다. 이제는 주변 지인들이 내게 묻고 있다. 나도 처음 글을 쓸 때는 이게 무지 궁금했다. 도대체 소설은 어떤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만들게 되는 걸까?
사실 돌이켜보면 내가 궁금했던 건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요즘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다. “이야기를 쓸 때 아이디어는 어디서 어떻게 얻어?”
나도 모른다. 모른다기보다는 정확히 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모호한 답변을 들은 상대방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예술의 세계가 있냐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명탐정 코난처럼 머릿속에 핑, 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게 아니라 답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은 소재와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이 각자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감정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시는 감정의 흘러 넘 침을 글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을 대학교 수업 때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소설은 다른 것 같다. 캐릭터에 몰입해서 글을 쓰기는 한다. 하지만 감정의 흘러 넘 침, 그 힘으로 캐릭터 구상부터 자료조사, 결말을 쓰기까지 몰아붙일 수는 없다. 원고량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감정 속에 계속 머물러 있다기보다는 써나가야 하는 이야기들을 묵묵히 앞으로 밀어나간다.
바쁘게 살다가도 문득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가 있다. 만남과 이별을 겪을 때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 수많은 감정들을 듣게 될 때, 지나온 추억들을 마주치게 될 때. 그럴 때, 그 감정들을 기록해 놓는다. 적어놓은 감정과 캐릭터는 메모장 속에 계속해서 누적돼 가고, 언젠가 소설을 쓸 때 상황에 맞게 한 명씩 등장시킨다.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던지, 사진 속 꿈을 꾸고 나면 사진이 망가진다던지, 기발하거나 재밌는 상상들도 떠오를 때마다 메모해 놓는다. 언젠가 사용되기를 기다리는 소재들이다.
얼마 전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봤다. 버려진 부품들이 모아지니 성이 되어 움직이는 걸 보면서 이런 게 소설을 써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지나칠 감정과 상상들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해 두고, 끌어모아서 성을 만드는 것이다.
소설은 어떻게 쓰는 건지 궁금해서 국문과에 입학했다. 결국 목적은 소설창작론인 셈이다. 졸업하던 마지막 학기에 드디어 소설창작론 수업을 들을 수 있었지만 하필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비대면인 것치곤 꽤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교수님은 화상수업 화면에 본인 컴퓨터 화면을 띄워놓고 소설 쓰는 걸 보여주셨다. 한글 프로그램 창에 한 문장씩 더해지고 이어져서 소설이 돼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교수님은 본인 의식의 흐름까지 혼잣말로 들려주시며 글 쓰는 걸 직관시켜 주셨다. 소설가의 작업하는 모니터를 지켜볼 수 있다니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하며 수업 내내 즐거워했다.
수강생들은 소설 쓰는 과정을 보고 난 후 각자 단편소설을 한편씩 써서 품평회를 가졌다. 나도 기한에 맞춰 겨우겨우 단편 하나를 써서 제출했는데, 후에 그 소설은 <오늘의 사진>이 되어 첫 번째 소설집에 담게 됐다.
소설이 되어가는 과정은 어느 정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완성은 언제 되는 걸까. 출간하기 전까지는 노트북 폴더 속에만 존재하던 내 소설들, 읽을 때마다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넘쳐났다. 그런데 어찌 됐든 책으로 이야기를 펴내고 나니 더 이상 그 작품은 내가 손 쓸 수 없게 됐다. 나를 떠나 책을 구매한 독자에게로 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소설이 완성되는 건 독자에게 닿을 때이지 않을까?
소설창작론 마지막 수업 날, 교수님은 정유철학생은 아이디어가 좋다며 언젠가는 좋은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 거라 말해주셨다. 다른 사람이 아닌 소설가 교수님이 해준 칭찬이라 아직까지 마음에 남아있다.